뉴욕베이사이드장로교회 담임, 리폼드 D. Min 수료
한국말로 기독교인의 뜻을 우리는 그 한문 글자를 보면 명확히 알게 된다. 기독의 ‘기’자는 ‘터’를 의미하고 ‘독’ 자는 맏아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고전 3장10,11절은 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우리의 삶의 기초인 터가 되신다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기독교의 기는 기초를 의미하는데 그 기초는 바로 예수님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의 ‘독’을 의미하는 맏아들이란 단어는 로마서 8:29절에 근거하고 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에서 맏아들은 예수님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의 의미는 “맏아들 되신 예수님의 터 위에 삶을 건설하는 자”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예수님의 터 위에 삶을 건설하게 되는 것일까? 헨리 나우엔은 마가복음 14장 22절에서 나오는 말씀에서 그 길을 찾았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 말씀에는 네 개의 동사가 나오는데 그 동사는 다음과 같다. 예수께서 떡을 1) 가지사(take) 2) 축복하시고(bless) 3) 떼어(break) 4) 주셨다(give)라는 동사이다. 헨리 나우웬은 주장하기를 그 네 동사 안에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하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그리스도인의 삶의 지침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헨리 나우엔은 가지사(take)라는 동사를 해석하기를 “주님께서 많은 떡 가운데 성찬의 떡을 택하듯, 많은 사람 가운데 우리를 주님의 몸, 주님의 가족으로 선택하셨다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이란 많은 사람 가운데 선택을 받았다는 감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인생은 한번은 죽는데 그것으로 끝난다면 너무나 허무한 일이다. 그러나 믿는 자는 창세 전에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구원받은 백성이 되어 영생하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감격스러운 사실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 짧은 인생을 살아갈 때 이 감격을 가지고 항상 소망 중에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인 것이다
두 번째로 헨리나우엔은 마가복음 14장22절의 두 번째 동사인 ‘축복하다’는 동사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 임을 증명하는 것에는 자신은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데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모든 믿는 자의 삶을 선하게 인도하신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은 가는 곳마다 축복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가르치시기를 너희는 어디를 가든지 그 집을 위해 평안을 빌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축복권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축복하고 또 축복할 때에 그리스도인 것이 증명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축복대로 그곳이 바뀌는 역사가 얼어나는 것을 보게 된다.
이제 마가복음 14장22절에 나오는 세 번째 동사인 ‘떼어’라는 break라는 동사를 살펴보겠다. 헨리나우엔은 ‘떼어(break)’라는 단어를 희생이란 말로 해석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몸을 떼어내듯 희생적인 삶을 살 때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으로 알게 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삶이 희생적인 삶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볼 때 이 시대에 왜 믿는 자들이 줄어드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에 희생이란 단어가 사라졌기 때문이고 헌신이라는 단어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기독교 안에 희생이 없으니 예수님이 안 보이는 것이다. 교회도 성도도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없이 자기의 유익만을 구한다. 그러니 사람들은 실망하고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희생이 요구될 때 감당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증명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성찬 시 나오는 네 번째 동사는 ‘주다’라는 give라는 동사다. 그 뜻은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생명 되신 그리스도를 전하며 귀한 것을 나누어 줄 때 우리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주는 일을 주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33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 발견한 귀중한 진리 중 하나는 줄 때 열매가 있고 그 영역이 점점 더 넓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헨리나우엔의 말처럼 우리 믿는 성도들은 이 험한 세상을 살 때 항상 자기가 택함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하며, 축복하고, 희생하고, 주는 삶을 살아 그리스도인이라 불림 받으며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속에 살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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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7.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