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아주 오래 전에 던졌던 함석헌 옹(翁)의 질문은 누구나 대답해야할 숙제와도 같다. “만 리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 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만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탓 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 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하나 있으니’ 하며/ 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이런 그 사람을 가졌다면 그는 다른 것이 없어도 행복한 인생이요 성공한 사람일 것이다. 그 사람이 이미 있다면 진심으로 크게 축하할 일이다. 아직 그 사람이 없는 사람은 흐르는 세월 속에 그 사람도 함께 흘려보내며 그 사람 찾는 것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리라.
다윗은 그 사람을 가졌다. 요나단은 왕이 될 왕자였다. 자기 생명보다 다윗을 더 사랑했던 요나단. “사울이 그의 아들 요나단과 그의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 말하였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좋아하므로” (삼상 19:1) 사실 다윗은 요나단이 왕이 되는데 최대의 걸림돌이었다, 정치적으로 다윗이 죽는다면 요나단에게 그 얼마나 속 시원한 일이 되겠는가. 그러나 다윗을 사랑했던 요나단은 다윗을 죽이라는 아버지 사울의 부당한 명령을 목숨 걸고 거부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 (삼상 18:1b) 그렇다. 참된 사랑, 진정한 우정은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 대상을 내 생명같이 여기는 것이다. 다윗과 요나단이 보여준 것같이. 다윗이 죽지 않고 왕이 되는 데는 요나단의 마음을 다한 우정을 빼놓을 수 없다. 우정을 의리로 갚은 사람, 다윗. 그는 자기에게 쏟아 부어준 요나단의 우정을 그가 죽고 난 다음에도 잊지 않고 그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평생 갚으며 살았다.
요나단 같은 그 사람을 찾기가 힘든가? 힘들게 그 사람을 계속 찾으려만 하지 말고, 누군가에게 지금 내가 그 사람의 요나단이 되는 것은 어떻겠는가. 김재준 시인의 다짐처럼 말이다. “어느 날 네가 메마른 들꽃으로 피어 흔들리고 있다면 소리 없이 구르는 개울 되어 네 곁에 흐르리라/ 저물 녘 들판에 혼자 서서 네가 말없이 어둠을 맞이하고 있다면 작지만 꺼지지 않은 모닥불 되어 네 곁에 타오르리라----” 메마른 들꽃 같은 이의 옆에서 구르는 개울이 되어 그를 적셔 주고, 어둠 속에 홀로 있는 이의 앞에서 꺼지지 않는 모닥불이 되어 그를 밝혀주는 그 사람이 된다면 그 삶이 얼마나 풍요로우며 아름답겠는가.
저기, 메마른 사람이 있다. 여기, 외로운 사람도 있다. 그들은 아직도 그 사람을 갖지 못해 당혹스런 적막감에 깊이 빠져 있다. 그들을 그대로 두면 안 된다. 하나님은 사람을 어느 누구도 메마르게 살라, 외롭게 살라고 만들지 않으셨다. 내가 그 사람의 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처자를 내게 맡겨다오. 나는 죽어도 좋으니 너 만은 살아다오” 라고 하긴 쉽지 않겠지만, 소리 없이 구르는 개울이 되어주고 꺼지지 않는 작은 모닥불이 되어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게는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질문 보다 “그 사람이 되겠는가?” 가 더 요긴한 숙제이다.
02.03.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