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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이요!

김성국 목사

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회의(會議)가 길어지면 회의(懷疑)가 깃든다는 말은 거의 명언(名言)에 가깝다. 모든 목회자와 지도자들이 경험하듯이 필자도 수많은 회의에 참석하였고 그에 못지않게 회의를 인도하기도 하였다. 회의가 주특기인 것처럼 지구력이 강해 보이는 분들을 가끔 뵙지만, 대부분의 회의 참석자들은 회의가 길어질수록 입은 좀 나오고 이마는 지푸려진다. 그런 회의 가운데 고마운 것은 어떤 의미있는 안건에 동의와 재청이 이어지면서 잘 통과될 때이다. 다음 방식이 언제나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필자가 한국에서나 미국에서 담임으로 섬길 때 당회, 제직회, 공동의회에서 다수결로 안건을 처리해 본적이 없다. 당회에서 의견이 나뉠 것 같으면 그 안건을 아예 기각하거나, 당회원들이 각각 더 기도와 생각의 시간을 갖고 다시 모이는데 그때도 계속 만장일치가 아니면 완전히 포기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제직회나 공동의회에 상정된 안건들은 큰 어려움 없이 동의와 재청을 받아 가부를 물어 시행하게 된다. 노회와 총회에서는 또 다른 안건 통과 방법이 있다. 동의와 재청의 방법보다 아주 단순하나 사뭇 무게가 있는 방식인데 안건에 따라 회의 석상에서 누군가 "허락이요!" 하면 끝나는 방식이다. 다소 아쉬운 "허락"도 있지만 재론이 필요없는 얼마나 깔끔한 방식인가. 회의(會議)를 회의(懷疑)에서 건져주는 좋은 외침, "허락이요!"

 

아내와 필자는 CC커플이다. 교회에서 만나 교제하고 결혼한 case이다. 필자는 훗날 아내가 된 일년 후배를 중등부 때 눈여겨 보았다. "봉사 정신이 강하군." 정도의 생각만 했을 뿐이지 중학생 때부터 복잡한 스토리를 만들지는 않았다. 때가 되어 그 동일한 자매에게 프로포즈를 했고, 한 번의 고배를 마신 후 두번째에 승락을 받았다. 결혼으로 가는 길에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어머님이 허락해 주시지 않았다. 사귀는 자매는 너무 좋아하고 사랑하셨으나 나의 상황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재정이 넉넉지 않은 신학생이 공부와 함께 아내 그리고 장차 태어날 아기까지 먹여야 하는 결혼생활을 어떻게 원활히 할 수 있겠냐며 조금 미루라고 하셨다. 어느 날, 밤새 쓴 어머니께 드리는 편지를 아침식사를 마친 밥상 위에 올려놓고 학교로 갔다. "어머님 전상서----"로 시작되는 편지는 어려운 상황에 어떻게 결혼생활을 할 것인지에 대한 결연한 의지와 방법론이 이어졌다. 필자는 확신했다. 어머니가 눈물없이 읽으실수 없을 것이라고. 그날 저녁에 나의 확신이 입증되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날 저녁에 어머니의 이런 말씀이 가능했겠는가. "결혼, 허락한다!"

 

역경의 상황에서 야베스는 문제만 바라보지 않았다. "내 인생은 여기서 끝이야." 하면서 포기와 절망의 구슬픈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그의 인생 앞에 펼쳐진 문제 앞에 그가 선택한 것은 비관적인 것이 아니였다. 그는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선택했다.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하나님은 문제와 현실을 초월한 야베스의 담대하고 당당한 기도에 "허락하노라"로 멋지게 응답하셨다. 노회나 총회에서도 아무리 힘들어도 "허락이요!"가 취소되지 않는다. 하물며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 취소될 리가 있겠는가. 

 

누구나 그러시지만 필자와 섬기는 교회도 신년벽두부터 여러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다. 또 많은 기도를 드릴 것이다. 올해의 걸음을 가로막으려는 세력이 만만치 않겠으나 이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길 우뢰와 같은 음성을 말씀 읽다가 들었다. "허락하노라!" 

01.13.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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