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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엄중에 부엄

김성국 목사

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백두산서 자란 범은 백두호라고/ 부엄중에 부엄으로 불리우느니라/ 너희들은 오산에서 자라났으니/ 어디를 가든지 오산이로다" 남강 이승훈 장로님이 세운 오산학교 교가이다. 오산학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도 이 짧은 교가에 큰 울림을 갖는다. 백두산에서 자란 범은 다른 곳에서 자란 범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부엄"은 "범" 의 사투리이다. 그렇다. 부엄이라고 다같은 부엄이 아니다. 자라난 곳에 따라 그 용모와 용맹이 다르다. 온 세상에 도자기가 많다. 모든 도자기마다 흙으로 빚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그것을 굽는 가마가 어디냐에 따라 결, 모양, 빛, 가치는 크게 달라진다. 그 빛이 신비하고 영롱한 고려청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졌다는 것이 그 특징의 전부가 아니다. 그 시대에 특정 지역의 가마에서 지금까지 빛나는 청자를 구어낸 것이다. 모든 것을 한칼에 가르는 멋진 칼이 어찌 어설픈 대장간에서 만들어지겠는가. 그것은 극히 경륜 깊은 대장간에서만 잘 두둘겨 만들어진다. 콩나물과 콩나무 조차도 그 자라난 곳이 다르다. 전자는 온실에서 크고 후자는  야생에서 성장한다. 하루 아침에 뽑혀나갈 콩나물보다 오래동안 자기가 자란 자리를 지키는 콩나무가 늠름하다. 

인류 역사에 나타났던 위대한 문명들은 그 발생지역과 아무런 연관없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곳에서 나타날 문명이 나타났을 뿐이다. 아무데서나 등장할 수 있는 것이 문명이라면 왜 인류는 긴 역사 속에 몇몇 문명만을 만났겠는가. 둘러 살펴보니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놀라운 통찰력으로 간파했듯이 일정 지역이 다른 지역을 지배할 수 있었던 총과 균과 쇠도 그것을 가질 수 있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이 선명히 구분되어 있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났다. 예수님의 영광스런 족보 속에 우리가 있다. 우리는 홀로 피었다지는 들풀 같은 존재가 아니다. 하늘 아버지가 약속한 불변의 언약과 하늘 아버지가 주시는 유업 안에서 자라고 사는 자들이다. 땅의 것을 악착같이 내 손으로 끌어 모아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우스꽝스런 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유혹에 흔들리며 속임에 넘어지는 자들일 수 없다. 우리는 자신을 보며 실망하고 누구와 비교하며 좌절하는 자들이 아니다. 아름다운 장미는 가시 속에서 피는 것을 알고 뾰족한 가시같은 환경에 눈물짓는 것이 아니라 여유있는 미소를 띄는 자들이다.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기대하시는 진짜 "나" 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 아버지의 엄청난 능력과 한없는 은혜라는 자원을 마음껏 누리며 살기에 하루하루를 조바심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평생을 담대하게 산다.

부엄 중에 다른 부엄이 있듯이 세상 모든 사람 중에 우리는 분명히 다른 종족, 다른 사람이다.

11.11.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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