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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선택이

김성국 목사

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모(某)라면 회사의 광고도 만만치 않았다. 아이스크림을 광고하던 “12시에 만나요, 브라보콘”의 광고 노래의 인기는 또 얼마나 대단했던가. 그러나 역대(歷代) 어느 광고도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라는 TV 광고의 영향력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후자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에게 각인되어 있고 삶에서도 필요한 지혜를 담고 있었다. 선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이민 생활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모두 미국에 이민 왔지만 살 곳의 선택, 직업의 선택, 학교의 선택, 미혼자로 왔던 사람들에게는 배우자의 선택 등이 우리의 삶을 크게 다르게 만들어 왔다. 

최근에 한국의 유명 배우가 마약에 손을 댄 정황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무슨 최악의 선택인가. 그의 적극적인 팬이 아니어도 많은 이에게 호감을 주었던 배우가 아니었나. 허물어진 명예는 어찌하나, 여러 영화사와 광고주들에게 물어주어야 할 위약금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그 보도에 꼬리를 물고 나온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그릇된 배우자 선택도 거의 엽기(獵奇)에 가까운 내용이다. 지금 온 세상을 들끓게 하고 수많은 사상자를 내는 전쟁도 잘못된 선택에 기인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가 선택의 우선순위임을 잠시 잊고 잘못된 선택으로 타락의 늪에 빠져있거나 겨우 빠져나왔다 하여도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참한 상태로 자신도 가족도 살아가야 하는 목회자 이야기는 슬프게도 여기저기 널려 있다.

인생은 선택이다. 똑같은 환경인데 자기 환경을 늘 잡초로 보는 사람도 있고, 항상 꽃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자기의 선택에 따라 평생 잡초밭에서 살기도 하고 꽃밭에서 살기도 한다. 어려운 일이 벌어졌을 때 하는 말을 “네 탓이야”를 선택하는 사람과 “내 탓이야”라고 선택하는 사람은 사뭇 다른 삶을 살리라. 뭔가 잘 되었을 때 “네 덕이야”와 “내 덕이야”의 선택도 마찬가지다. 바른 선택을 하라는 외침이 크게 들리지 않는가. 같은 이름을 가지고 사고만 치고 있던 어느 병사에게 “자넨 이름을 바꾸던지, 삶을 바꾸게”라고 했다는 알렉산더의 일갈(一喝)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사는 우리에게도 유효한 듯하다. 바른 선택을 요구하는 크나큰 외침은 여호수아에게도 있었고 엘리야에게도 있었다. 누구를 탓하랴. 자신의 선택이 행복의 선택도 되고 불행의 선택이 되기도 한다.

건강을 놓치고 후회하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이민 땅에서 건강을 해쳐가며 일했지만 그래서 번 돈을, 잃은 건강을 회복하는 데 쓰다 죽는다는 말이 꼭 남의 말 만은 아니지 않을까. 지난 선택은 아무리 땅을 치고 후회한들 되돌릴 수 없다. 이제부터의 선택이 중요하다. 오늘 우리가 숨을 쉬며 살아있는 한 바른 선택할 기회는 아직 있다. 성경에는 두 번째 선택을 잘하여 재기(再起)한 인물들을 쉽게 만난다. 다윗도 그렇고 요나도 그랬고 베드로도 그렇지 않았던가.

이제 미국은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있다. 다음 주 11월 7일은 선거일이다.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많은 결과물이 달라질 것이다. 기도하는 마음과 눈을 부릅뜬 이성(理性)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겸손한 사람들을 잘 선택하자. 잊지 말자. 그 광고,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11.04.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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