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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군(諸君)들!

김성국 목사

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카랑카랑한 목소리이셨다. “제군들! 여러분은 지금 같은 자리에 앉아 있지만 30년 40년이 지난 후에는 서로 다른 자리에 앉아 있을 것입니다. 오늘부터 걷는 걸음이 중요합니다.” 고등학교 입학 예배 때 이사장이셨던 한경직 목사님의 설교가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다. 그러고 보니 목사님의 말씀대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들이 지금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은퇴도 했고, 살아도 가고 있다. 앞날의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는 올망졸망한 고등학교 신입생 “제군들”에게 목사님은 성실한 작은 한 걸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면서 일갈(一喝)하신 것이다. “제군들”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영어로 번역할 수 있을까? “Gentlemen!”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제군들”이라는 격조(格調) 높은 호칭에는 어린 다음 세대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어른들의 애정과 기대가 함께 담겨 있다. 아무튼, 목사님이 부르셨던 “제군들” 그 각자의 첫걸음이 지금은 끝내 서로 건널 수 없는 갈림길이 된 것이다. 그렇다. 제군들은 귀담아들었어야 했다. 선진(先陣) 들의 통찰력 가득 찬 거시적(巨視的) 말씀들을 귀찮다는 듯이 흘려들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어른들은 많이 있어도 다음 세대를 향해 “제군들”이라고 부르는 소리도, 그들을 향해 일갈하는 외침도 듣기 어렵다. 그래서 그렇게 불러주셨던 다감(多感)하고 다소 무서운 어른들이 그립다. 지금은 학생들이 많아도 자신들을 향한 “제군들”이란 부름에 숙연(肅然)함과 울림을 가질 순수(純粹)하고 기상(氣像) 있는 청소년들도 찾기 쉽지 않다. 세대 간의 gap을 초월케 하는 “제군들!” 이란 소리는 정녕 듣기 힘든 것인가.

 

서구(西歐)에서도 그렇다.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는 구세군 창시자이다. 런던 빈민들의 비참한 삶을 목격한 그는 가난한 자들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가난한 자들에게 빵과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런던의 빈민굴로 들어가서 그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전했다. 그가 이 땅을 떠날 무렵에는 그의 정신과 사역은 전 세계로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 구세군의 국제 총회의장에서 발표된 그의 마지막 설교에는 “제군들, 다른 사람들을! (Gentlemen, other people!)” 이라는 한마디가 담겨 있었다. 이 한마디 설교에 윌리엄 부스가 평생의 목표로 여기고 살았던 자신의 믿음과 그 시대를 향한 도전이 함께 함축되어 있었다. 그나마 오래전 이야기이다. 사명을 일으키는 “Gentlemen! (제군들)!”의 외침이 최근에 어디에서 있었을까.

 

세상을 진동(震動)시킨 첫걸음을 내딛고 흔들림 없이 그 길을 걸었던 “제군들”의 롤 모델(role model)이 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첫걸음부터가 남달랐다. 청소년 때부터 뜻을 정했다. 그 후 평생 그들에겐 “Yes”와 “No”가 분명했다. 이 제군들이 인류 역사에 크고 위대한 믿음의 족적(足跡)들을 풀무 불 앞에서, 사자 굴 속에서 선명히 남겼고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진한 감동을 계속 자아낸다. 수십 년 전 “제군들!”이라는 이름 안에 친구들과 함께 담겨 있던 필자가 부끄러움이 많지만 지금도 유효한 제군들 가운데 있고 싶고, 또 새 학년을 맞이하는 이 시대의 청소년들을 향해 “제군들이여!” “Gentlemen이여”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그때의 목사님처럼 이렇게 말하고 싶다. “첫걸음이 중요하답니다.”

09.02.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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