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맨해튼에 ‘Vessel’이라는 이름을 가진 건축물이 있다. 이름 그대로 모양이 큰 배와도 같다.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수 많은 사람들이 그 건물에 오르며 맨해튼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가 될줄 알았는데 뜻밖의 암초(暗礁)가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그 구조물로 올라갈 수 없다. 왜 그럴까. 사람들이 그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일이 종종 벌어졌기 때문이다. 필자는 출입금지(出入禁止) 전에 올라가 본 적이 있었다. 올라갈수록 허드슨 강을 비롯하여 멋진 건물, 아름다운 풍경이 더 잘 보였다. 그런데 이미 몇 차례 있었던 자살 이야기를 들었던터라 그 관점으로 보니 자살 충동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일단 난간이 높지 않아 뛰어내리기에 용이했고 인생의 무거운 짐을 한 번에 던져버릴 친근한(?) 장소로 착각할 수 있을 분위기도 있었기 때문이다. 멈춰야 한다. 그런 어이없는 달음박질을. 얼마나 고귀한 인생인데 그렇게 쉽게 던지다니,
어렸을 적에 좋은 일이 생기거나 나쁜 일이 생기면 아버지께 달려갔다. 좋은 일을 말씀드리면 나보다 열배 이상 기뻐하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떠오른다. 그 어떤 나쁜 일도 아버지께 가지고 가면 아버지는 내 이야기를 들으시기도 전에 다 아시는 듯이 위로의 눈빛으로 용기를 주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나는 아버지 앞에서 모든 어려움을 툭툭 털어버리고 힘을 내어 다시 그 다음 길을 갈 수 있었다. 두 아들이 있다. 힘들 때마다 아버지인 나를 향해 달려오던가.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으나 어떤 상황이든 아버지인 나를 찾는 아들들이 되면 좋겠다. 아니, 언제나 달려오는 아들들을 품을 수 있는 아버지가 먼저 되어야겠다.
이 칼럼을 쓰는 도중에 전화 한통을 받았다. 어느 교우의 전화였다. 아버님이 병원에서 호스피스로 옮겨 가시기 직전인데 기도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그 병원이 멀리 있는터라 가족들이 함께 모여있고 아버님도 옆에 계시다며 스피커폰을 열어 놓으시겠다고 하였다. 그 가정은 아주 멀리서 교회에 나오신다. 주일만? 아니다. 수요일 저녁과 토요일 새벽 등 교회 모든 공예배에는 다 나오시고 봉사의 자리에 남편도 아내도 열심히 나오신다. 늘 교회를 향해 달리는 가족이지만 가장 어려운 시간에도 교회를 먼저 생각했고 목사에게 기도를 부탁한 것이었다. 힘써 달려갈 곳이 어딘지를 아는 가정은 환경을 초월하여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가정이다.
지금은 문제를 가지고 육신의 아버님에게 달려갈 수 없다. 하늘나라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달려가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계신 분이 있으시다. 그 분은 견고한 망대라는 이름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잠 18:10) 어려운 일, 낙심되는 일을 만났을 때 그 분에게 달려가면 된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가 있더라도 그 분에게 달려가 그 분과 함께 높고 견고한 망대에서 문제들을 바라보면 나를 그토록 괴롭히고 심각하게 만들었던 문제들이 다 낮게 보인다. 인생길에 힘들다고, 이런 저런 이유로 넘어졌다고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을 수 없다. 기껏 달리는 길이 그릇된 길이어서도 안 된다. 우리에게는 달려가 영원히 안길 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06.03.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