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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냐, Home이냐?

김성국 목사

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우는 집 내 집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집 내 집 뿐이리’ 미국의 극작가 존 하워드 페인이 1823년도에 지은 이 ‘Home, Sweet Home’의 노랫말은 눈에 보이는 듯하고 손으로도 만질 수 있을 것같이 너무 아름답다. 치열했던 미국의 남북전쟁터에서도 북군 군악대와 남군 군악대가 함께 이 곡을 연주할 때 병사들이 서로를 향한 총을 내려놓고 모두가 집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가정의 달이다. 모든 가정이 즐거운 home일까? 그렇지 않다. 가정이 단지 건물의 기능을 하는 집(house)에 머무는 가정이 적지 않다. 일하고 들어오거나 학교 갔다 돌아와 쉬고, 먹고, 자기도 하지만 즐겁지는 않다. 우리가 떠나온 한국의 가정에서도 우리가 살아가는 미국 가정에서도 서로를 향한 원망과 불평과 불신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들에게 가정은 즐거운 home이 아니라 거처인 house일 뿐이다. 가정을 떠받쳐주는 핵심 가치들인 신뢰와 존경과 사랑과 대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어떤 부부는 서로 싸우다가 지쳐 서로를 투명 인간처럼 대하다가 급기야 이혼(離婚)에 이르기도 한다. 부모로부터 상처를 받은 자녀들은 심리적으로 이미 가출했고 실제적으로 가출하는 일도 있다.

 

며칠 전 뉴욕 밀알 선교단 30주년 기념예배에 참석했었다. 입구부터 예배의 자리까지 30년의 섬김과 아름다움이 가득했다. 안내받은 자리 옆에 엘렌이라는 여자분이 앉아 있었다. 시각장애인이었다. 한국에서 어릴 때 입양 되어온 분이라고 했다. 그는 예배 중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는 찬양을 드렸다. 가사 중 ‘내 잔이 넘치나이다’가 반복될 때 마음이 감동으로 저미었다. 그분 가족 이야기를 다룬 한국 KBS방송의 특집이 두 차례 있다고 하여 집으로 돌아와 찾아보았다. 2008년도 제작된 영상을 보면서 진정한 가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엘렌 자매를 입양한 니콜스씨 부부는 모두 시각장애인이었다. 자신들의 삶도 많이 불편할 텐데 한국에서 각자의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네 명의 시각장애인 어린아이들을 입양해서 정성을 다해 키웠다. 그중의 한 명이 엘렌이었다. 그 특집 방송 중에 뉴저지 밀알 모임에서 어떻게 네 명의 아이를 입양할 수 있었냐는 질문에 “하나님이 나를 사랑으로 입양해 주셨기 때문에 나도 그들을 입양할 수 있었다”고 답하는 눈물겨운 장면이 있었다. 이 아이들이 이제는 다 성인이 되었지만 니콜스씨 부부의 자녀 사랑은 멈춰지지 않았다. 그 가정은 서로를 볼 수 없는 암흑의 자리, 잠시 거처의 역할만 해주는 house가 아니라 모두에게 진정한 home, sweet home 이었다.

 

가정이 home이 아니라 house인 곳에서 들리는 아내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있다. '당신은 일하고 결혼한 거예요, 나하고 결혼한 거예요' 고넬료는 이달리야 부대의 백부장이였다. 군장교인 그가 얼마나 바뻤겠는가. 그가 가족들을 다소 소홀히 돌본다고 해도 크게 비난할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자기 중심, 직장 중심으로 살지 않았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행 10:2) 그는 균형잡힌 사람이었다. 하나님과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사회와의 관계에서도 친밀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아무리 바뻐도 '온 집안과 더불어'를 놓치지 않고 있는 그에게 아내가 '당신은 일하고 결혼한거예요, 나하고 결혼한 거예요'라고 따지지 않았을 것이다. 가정이 달 5월에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나의 가정은 house인가 home인가.

05.06.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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