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서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묻지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아프리카에 있는 산 킬리만자로에 대한 관심은 지리 선생님보다 조용필씨가 부른 노래 때문에 더 크게 갖게 되었다. 드디어 지도에서 보고 노래로 듣던 킬리만자로를 직접 보게 되었다. 며칠 전 장로님들과 함께 케냐 선교를 갔는데 그 선교지가 그 산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지 선교사님의 말에 의하면 킬리만자로는 많은 시간이 구름으로 가리어져 있단다. 하지만 우리 일행이 그곳에 머물러 있던 이틀 동안 선명히 그 산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망원경으로 둘러보았지만 썩은 고기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도 볼 수 없었고, 산 정상에서 고독하게 얼어 죽어가는 표범도 찾을 수 없었다.
죽고자 하는 표범은 못 만났지만 죽고 싶어 했던 사람은 직접 만나보았다. 그 분은 킬리만자로에 사는 것이 아니라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 직장암 말기의 진단을 받았다. 4개월 시한부 인생이라는 통보도 받았다. 대장을 이미 많이 잘라내어 소장을 몸 밖으로 꺼내 놓고 살고 있었다. 한국에 아무 연고도 없고 60세가 되도록 총각으로 외롭게 살던 그 사람, 기왕 죽을 몸인데 모든 장기를 기증하겠노라며 사인을 했다. 한 번에 몸 전체를 기증하겠다고 사인한 것이 아니라 파트별로 기증하겠다고 여러 분야의 의사들을 만나 각각 사인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죽을 때가 되었는데 너무 안 죽는 것이었다. 의사들은 자꾸 병실을 들락날락 하지 빨리 죽지는 않지. 의사들과 자기의 장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어서 죽어야 했다. 그분의 표현을 그대로 전하자면 ‘죽지 않아 너무 미안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기도 제목은 ‘빨리 죽여주옵소서’이었었다. 놀랍게도 몸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남은 대장을 살살 잇고 이었고 꺼낸 소장을 다시 집어넣었다. 그의 장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실망이 있었으리라.
몸이 회복된 그에게 어느 여인이 프로포즈를 했다. 그 여인에게는 결혼한 딸이 있었다. 60세의 총각과 결혼한 딸을 둔 여인과의 결혼은 신속히 이루어졌다. 그는 다시 살아난 삶을 선교에 드리기로 했고 지금은 두 부부가 나이로비에서 사역하고 있다. 아내의 딸이 아이를 낳는 바람에 60세에 총각 결혼한 그 분은 62세에 할아버지가 되었다. 60세에 총각 결혼하고, 62세에 손주 본 선교사님은 원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외롭게 죽으려 했었다. 누구에게도 살아야 할 이유를 대답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기가 원했던 죽음이 그런 방식으로 오지 않았다. 하나님은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셨다.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 둬야지/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내가 이 땅에 산 흔적은 무엇이 될까? 케냐를 떠나오면서 스스로에게 물었던 물음이다.
01.28.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