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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대한 신앙

김성국 목사

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목사님, 제가 교회에 기도 부탁드리는 것은 제가 질병에서 낫고자 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저의 고난이 다른 고난을 받는 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기도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그 자매의 부모와 우리 부부의 눈시울이 모두 뜨거워졌다. 그 자매는 5년 전에 자궁암 진단을 받았다. 너무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그리고 힘든 치유 과정 끝에 완치되었다는 판정도 받았다. 큰 병원의 행정부에서 근무하는 자매는 아플 때나 안 아플 때나 누군가를 돕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자기 업무를 잘하는 것은 물론이다. 자기만의 시간까지 내어서 어려움을 당한 자들을 찾아보고 늘 살핀다. 교회에서 교사로서도 열심히 섬긴다. 그런 자매가 지난 12월에 자궁암이 재발 되었다는 소식을 의사로부터 듣게 되었고 얼마 전 부모와 우리 부부에게 알려준 것이다. 자매로서 재발 소식을 감추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상황을 교회의 기도 제목으로 삼아달라고 하면서 자기의 고난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데 쓰임 받도록 특별히 부탁한 것이다. 담대한 신앙이다. 무슨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것에서 벗어나려고만 하는 기도를 일삼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또 다른 자매의 담대한 신앙 이야기이다. 얼굴에 살짝 수심(愁心)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출중한 실력으로 정성을 다해 새벽예배 반주를 잘 섬기니까 그 자매에게 큰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지나곤 했다. 그는 자기 반주만 정성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말씀을 듣는 태도며 기도하는 모습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가 어때야 하는지 잘 보여주곤 했다. 얼마 전 그 자매가 새벽 예배에 나오지 않았다. 일 년에 한두 번 심하게 아프지 않으면 그런 일은 드물었다. ‘아픈가’ 나도 궁금했고 전도사님들도 궁금해했다. 그날 오후 전도사님 두 분이 그 자매를 만나러 갔다. 왜 안 나왔느냐고 물어도 아무런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다음 날 그 자매를 내가 만났다. 그때 알게 되었다. 그 자매가 얼굴에 수심이 깃들었던 이유를. 그리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 반주를 정성으로 섬긴 이유를. 그 자매는 팬데믹 훨씬 전에 새벽 반주를 시작했다. 그런데 처음 새벽예배 반주를 부탁받을 때 그 부탁한 사람이 교회가 자기를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반주는 해보시라는 듯이 말했다는 것이다. 대화 중에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하고 몇 년을 지났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그런데 불현듯 마음속에 그 자매의 오해에 확신(?)을 준 일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부서, 모든 사역은 매년 임명하였는데 새벽 반주자는 따로 임명하지 않고 편하게(?) 생각하며 이제껏 지낸 것이다. 자매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에게(담임목사인 내가 맨 먼저 포함되리라) 인정받지 못했어도(크나큰 오해였다) 하나님의 일이니까 매일 새벽에 최선을 다할 뿐이었습니다.’ 담대한 신앙이다. 역시 부끄러웠다. 수년 동안 힘들어한 성도의 아픔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부끄러움도 있고, 나는 누가 인정해주지 않으면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할 것 같아 부끄러웠다. 

 

로마서 16장에는 수십 명의 이름이 등장한다. 모두가 바울의 아름다운 동역자들이다. 맨 처음에 등장하는 인물이 누구인가?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예나 지금이나 자매들이 담대한 신앙을 보여준다. 2023년, 나도 담대한 신앙인으로 살고 싶다. 

1.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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