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태국에서 “코끼리 울리기 대회”가 열렸다. 거액의 상금이 걸려 있는 터라 너도나도 나서서 코끼리를 울리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때 누군가가 나서서 코끼리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사람은 코끼리 귀에 대고 잠시 무슨 말인가를 건넸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코끼리가 펑펑 우는 것이다. 당연히 그 대회의 우승자는 코끼리를 울게 한 그 사람이었다. 당신은 누구시며 무슨 말을 했기에 코끼리를 저렇게 울게 했냐며 질문이 이어졌다. 그 사람은 대답했다. “나는 한국 선교사입니다. 코끼리에게 선교지에서 겪었던 일 중에 하나를 이야기하는데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저렇게 운 것입니다.” 선교사역의 어려움을 전해보려고 누군가 만든 이야기를 살짝 변화시켜 보았다.
지난 월요일(11일)부터 목요일(14일)까지 와싱톤중앙장로교회에서 제9차 한인세계선교대회가 있었다. 4년마다 열리던 대회가 팬데믹 때문에 6년 만에 재개되었다. “예수, 온 인류의 소망”이라는 주제로 뜨거운 예배, 다양한 강의, 놀라운 간증, 진지한 토론, 즐거운 교제 들의 시간이 이어졌다. 가장 어려운 때에 가장 필요한 선교대회가 열린 것이다. 참여한 모든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다 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 어느 한 분의 이야기도 눈물 없이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손양원 목사님은 이렇게 노래했다. “눈물 없이 못 가는 길/ 피 없이 못 가는 길/ 영문 밖의 좁은 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영생복락 얻으려면 이 길만은 걸어야 해/ 배고파도 올라가고 죽더라도 올라가세” 선교의 길은 눈물의 길을 넘어 순교의 길이다.
현대의 세속화는 무섭다. 이미 모든 영역의 세속화 바람은 거세게 불어쳤다. 영적인 영역에도 그렇다. 신학이 세속화되고 예배도 세속화되었다. 이제는 선교도 세속화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대신 자신의 이름을 높이려는 시도가 선교 현장 곳곳에서 목격된다고 한다. 눈물로서 걸으려는 선교사들이 점점 줄어들고 죽음으로 선교하겠다고 새롭게 헌신하는 사람은 찾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그래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선교사님이 계시기에 위로가 된다. 자기를 박해하는 자들을 향한 외침이다. “당신이 가진 무기는 죽이는 것이지만 그리스도인인 제가 가지고 있는 무기는 죽어 순교하는 것입니다.” 선교의 세속화를 막는 유일한 길은 눈물의 선교이다, 순교의 선교이다. 눈물 흘리며 선교하다 죽겠다고 다짐하는 선교사를 막아설 세력이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예수님은 이 땅에 선교사로 오셨다. 성육신의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성육신하시어 눈물의 사역을 하셨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히 5:7) 선교에 가장 적절한 모델이 있다면 성육신의 모델이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에게 눈물도 있었고 죽음도 있으셨다. 예수님의 성육신이 없으셨다면, 눈물이 없으셨다면, 죽음이 없으셨다면 오늘날 우리의 구원은 없었다. 왜 선교 이야기에 코끼리만 울겠는가. “얼마나 아프셨나 못 박힌 그 손과 발/ 죄없이 십자가에 달리신 주 예수님/ 하늘도 산과 들도 초목들도 다 울고/ 해조차 빛을 잃고 캄캄하게 되었네”
07.16.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