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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으로 죽다

김성국 목사

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대학 시절 어느 여름날 슬픔의 소식을 듣고 같은 과 친구들이 모였다. 한 친구가 교회 수양회에 갔다가 익사하였다는 것이다. 목회 사명을 가지고 신학 공부를 시작한 친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당혹감과 아픔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데 머지않아 그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었다. 그 친구의 아버님 때문이었다. 목사님이셨다. 목사님은 교회 수요 예배 때 그 소식을 듣게 되셨단다. 아들이 그렇게 되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감사하셨다고 한다. 만일 교회 다른 청년이 그런 일을 당했다면 목사님이 매우 힘드셨을 것이라고 하셨다. 아들은 구원받은 증거를 가지고 있었기에 천국에서 만날 수 있다며 가슴에는 눈물이 흐르셨겠지만, 밝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부활 신앙을 잘 가르쳐 주셨다. 그때 죽음의 가늠자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다. 구원받고 죽느냐 구원 없이 죽느냐, 예수님 안에서 죽느냐 예수님 밖에서 죽느냐가 죽음의 절대 분수령임을 깨달았다. 그리스도인으로 죽으면 어떤 죽음도 비극일 수 없다. 

 

2007년 4월 18일 터키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5명의 무슬림에 의해 독일인 틸만 선교사님, 현지인 네자티 목사님과 우우르 형제가 무참히 살해당하였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위협을 받았으나 타협하지 않았고 마지막 순간에도 모두 신앙의 절개를 지켰다. 네자티 목사님은 평소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나는 무슬림으로 태어났지만 그리스도인으로 죽을 것이다.” 목사님은 그의 소원대로 그리스도인으로 죽었다. 그들의 장례식에는 위험 가운데서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자기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모였다. 네자티 목사님의 사모님은 이런 말을 들려주셨다. “남편의 죽음은 뜻이 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죽었고, 그리스도를 위해 살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하나님의 선물이었고 나의 삶에 그가 있었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그가 영광의 면류관을 쓴 것을 믿습니다. 나도 그런 영광에 합당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출발과 과정이야 어떻게 되었던 마지막에 그리스도인으로 죽으면 영광의 나라에 들어간다. 그 나라는 영원하다.

 

지난 5월 22일 주일 이른 아침 교회로 가는 길에 중국 회중을 담당하는 첸위지 목사님으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중국인 성도가 토요일 밤에 집으로 들어온 강도에게 살해당했다는 소식이었다. 신실한 형제였다. 아프리카 단기선교도 다녀왔다. 노방 전도도 열심이었다. 교회 주차장에서 늘 봉사했다. 결혼한지도 몇 개월이 안 되는 새신랑이다. 그 소식을 접한 주일 내내 나는 물론 온 교회가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어려웠다. 그래도 한 가닥, 아니 큰 줄기의 소망이 있었으니 그 형제가 그리스도인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서술(敍述)은 "그는 성공했다" 이거나

 "그는 잘 먹고 잘살다가 많은 재산도 남겼다" 가 아니라 "그는 그리스도인으로 죽었다" 이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이보다 더 아름답고 그보다 더 중요한 인생의 결론이 달리 어디 있겠는가. 한 가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는 교회 잘 다니다가 죽었다" 와 "그는 그리스도인으로 죽었다" 를 동의어로 착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교회는 열심히 다니지만 예수님은 믿지 않는 쭉정이 같은 이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백날 교회를 다녀도 종교인이지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아무튼 내 인생에 대한 최대의 관심은 그리스도인으로 죽는 것이어야 하며 다른 이들에 대한 관심도 그러해야 한다.

05.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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