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서부장로교회
기도 중에 비틀거리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네이버 국어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비틀거리다’를 이렇게 설명해 놓았습니다. “힘이 없거나 어지러워서 몸을 바로 가누지 못하고 이리저리 쓰러질 듯이 계속 걷다.” 한 줄의 수필을 읽는 것 같아 마음에 밑줄을 긋고 몇 번이나 되새기며 뜻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힘이 없을까? 무엇 때문에 어지러울까?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몸을 바로 가누지를 못할까? 몸을 추스르지도 못할 정도면 쉬어야지, 쉬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쓰러질 듯이 계속 걸어야만 하는 속사정은 무엇일까? 마지못해 걷는 것일까? 아니면, 죽기 살기로 걷는 것일까?
옛날에 좋아했던 가수 김현식의 노랫말이 생각납니다. ‘내 사랑 내 곁에’의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라는 가사입니다. 걸쭉한 목소리로 뿜어내는 노래에 애절함이 있습니다. 그는 간경화로 32세에 요절을 했는데, 죽기 전에 병상에서 녹음한 노래는 애간장을 저미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좋아하는 음악을 뒤로하고 떠나는 노래 속에 애잔함이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비틀대며 피를 토하듯 쏟아내는 울부짖음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
지구촌이 코비드-19 바이러스(virus)로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일상의 삶이 완전히 바뀌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스포츠 등 모든 영역이 비틀걸음으로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신앙생활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배, 교육, 봉사, 교제, 전도의 생활방식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신앙인은 비틀거리지 말고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겉모습은 달라져도 신앙의 본질마저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출애굽 당시 열 재앙은 애굽을 혼란 속에 빠트리고 비틀거리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비틀거리지 않고 애굽을 탈출했습니다. 430년의 바로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위기 속에서도 비틀거리지 않습니다.
“마침내 그들을 인도하여 은 금을 가지고 나오게 하시니 그의 지파 중에 비틀거리는 자가 하나도 없었도다”(시105:37).
01.30.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