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한인예수장로회 총회장, 뉴욕센트럴교회 담임
이 사진에 얽힌 간증을 나누려고 합니다. 이 사진은 27살 때 여의도에서 열렸던 74 성령 폭발대회가 끝나고 귀가하는 중에 C.C.C. 대학생과 같이 기도하는 사진입니다. 필자는 이 사진이 찍혔음을 전혀 모르고 43년을 지났습니다. 전혀 예상치 않았던 순간에 갑자기 이 사진이 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18년이라는 긴 세월을 기도하면서 기다렸던 새 예배당 건축을 모두 마무리하고 이제 입주 허가를 신청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는 홀가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고도 없는 절망의 복병이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건축회사와 정산도 마쳤습니다. 이제 입주 허가만 기다리면 되는 과정이었습니다. 건축회사에서 미쳐 정산하지 못한 추가 금액 73만 달러 청구서를 날려 보냈습니다. 그리고 엄포의 글귀가 P.S.에 적혀 있었습니다. ‘2주간 안에 갚지 못하면 입주 허가 신청서에 사인을 하지 않겠다’고 경고를 했습니다. 73만달러는 커녕 7천불도 없는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앞이 캄캄했습니다. 이제 매각된 구 예배당은 비워줘야 하고 새 건물에 입주를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다 된 밥에 코가 빠진 형편이 되었습니다. 한 주간 집의 서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힘이 없었습니다. 믿음으로 맡기고, 기도한다고 하면서도 금새 절망과 비관스러운 마음으로 불안이 가득했습니다. 이 때 어느 교우가 유투브 찬양곡을 보내면서 듣고 힘을 내시라고 카톡을 보냈습니다. 찬양은 틀었지만… 전혀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그 찬양은 끝나고 자동으로 새 찬양이 시작되었습니다. 갑자기 김준곤 목사님 얼굴이 화면에 떴습니다. 곧이어 74 성령폭발 대회의 눈에 익은 장면들이 배경 사진으로 떠 올랐습니다. 어! 내가 거기 갔었는데… 그리고 4번째 배경 사진이 떴는데… 순간적으로 나는 고압선에 감전된 기분이었습니다. 정지 키보드를 누르고 아내를 불렀습니다. 갑자기 큰 소리로 부르는 남편이 무슨 일이 났는지… 놀라서 이층으로 올라왔습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습니다. ‘오 마이 갓! 이게 언제 때 당신이야!...’ 이 때 꽃무늬 남방에 체크 바지 걸치고 아내와 한창 교제하던 때였기에 아내는 그 때의 지금의 남편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주님께서 주신 확실한 약속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함께 하마’였습니다. 임마누엘 약속의 말씀을 영혼 깊숙이 새겨 주셨습니다. 그 당시 나는 신학을 중단하고 평신도로 서리집사로 사업한다고 하면서 결국은 빚만 잔뜩 지고 진퇴양난의 슬럼프에 깊이 빠져 있었을 때였습니다.
부모와 아우들의 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 짐이 이만저만이 무겁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사업은 점점 더 적자로 빚만 늘어났습니다. 대책이 없을 때에 도피책으로 아내와 결혼을 하게 된 셈입니다. 아내에게는 매우 미안했지만… 첫아들이 태어났지만… 기쁨은커녕 어깨는 더 무거웠습니다. 기도하면 언제나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말과 기차가 레일을 벗어나서 얼마나 달리겠나? 늘 내 소명을 괴롭혔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희미하게 붙잡고 살림만 하던 아내에게 빚투성이 사업을 맡기고 나는 하는 수 없이 신학교로 복학을 했습니다. 신학교 강의실의 첫 학기는 어떻게… 무엇을 배웠는지? 전혀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온통 내 맘에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가 사업을 맡았으니 걱정이 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어느 채플 시간에 ‘내가 함께 한다’고 했는데 다 맡겨라! 강한 도전을 받은 후에 비로소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정말 사업에 사자도 모르는 아내는 일년도 안돼 남편과 시부모의 빚까지 다 갚는 재주를 보여줬습니다. ‘아~ 이것이 임마누엘의 능력이구나!’ 그렇게 7년의 신학을 마치고 목회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서울 송파에서 첫 개척 목회 3년에 성인 270명이 모이는 안정된 목회를 임마누엘만 믿고 사임했습니다. 더 어려운 곳을 찾아서 도전하려고… 그래서 10년 된 이민교회에 목사가 6번 바뀌었다는 토론토 이민 교회로 갔습니다. 오로지 21명의 교인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예배당도 없었고 주일 오후에 예배 한 번이 전부였습니다. 폭설이 내리는 1월 초순에 나는 기도원을 찾아 나섰습니다. 한적한 교외에서 폭설에 큰 밴 속에 홀로 갇히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외로움이 밀려왔습니다. 지구촌에 나 혼자 존재하는 외로움으로 온몸이 소름이 끼쳤습니다. 김포 공항까지 나오셔서 ‘가지 마오! 가지 마오!’ 선배 목사님이 붙잡을 때 그냥 눌러 있었으면 편안한(?) 목회의 길이 열렸을턴데… 이 때 갑자기 임마누엘 주님의 말씀이 불쑥 가슴을 쳤습니다. ‘내가 너와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마…오 주님! 잠시 믿음 없음을 회개합니다. 운전석에서 내려 자동차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채로 통회하며 회개 기도와 찬송을 한없이 불렀습니다. 그 때 또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도 주님은 새 힘을 주셨고 3년 만에 예배당을 건축하고 안정된 목회 상황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8년의 토론토 목회를 마치고 뉴욕으로 임지를 옮기라고 해서 지금 27년째 목회하고 있습니다. 나는 43년만에 임마누엘 주님이 함께 하심의 그 사진을 보면서 믿음이 회복되었습니다. 마음에 확신이 강하게 임했습니다. 70만 달러의 남은 금액도 주님의 방법으로 아주 쉽게 해결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나는 지금도 이 임마누엘 축복의 사진을 큰 액자에 담아 눈길 닿은 곳에 걸어 두고 있습니다. I’ll be with you forever!!!
jykim47@gmail.com
07.22.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