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한인예수장로회 총회장, 뉴욕센트럴교회 담임
나이는 들어도 눈이 내리면 즐겁고 기쁘다. 뉴욕에는 지난 몇년 눈 다운 눈을 보지 못하고 지냈다.
금년도 그렇게 지나가나 했는데 이른 새벽 눈을 뜨니 마법의 설국이 펼쳐져 있었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기도하러 나서는 발걸음이 한결 경쾌했다. 어둠이 걷히고 사방이 밝아지는 아침 풍경을 놓치기가 싫어서 카메라를 계속 눌러 댔다.
우리 부부에게는 첫 눈이 내리면 생생한 추억의 그날을 영영 잊지 못한다. 벌써 1년 모자란 50년 전 12월 초 결혼식 날 아침이었다. 전날까지도 한겨울의 앙상한 뼈들이 노출되어 을씨년스러운 풍경이었는데 밤사이에 새하얀 눈이 온 천지를 축복으로 감싸고 있었다. 경삿날 아침 눈이나 비가 내리면 복 있다는 옛말을 굳게 믿고 싶었다.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신랑과 신부의 한없는 축복을 기대했었다. 부산한 오전을 보내고 우리는 예식장을 향했다. 그동안 멀리 지내던 일가 친척들… 옛 친구들까지 가득한 하객들을 맞이하며 상기된 시간을 보냈다. 모두들 축복의 마음으로 예식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주례 목사님이 오시지 않았다. 코리언 타임이 통하던 시절이라 그렇게 2,30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하객들은 어느 사이에 자리를 떴고 양가 가족들과 친구들만이 남아있었다. 황당하고 처량한 신랑은 오지 않는 주례를 기다리며 대로변에 나가 애꿎은 모가지만 길게 뻗고 있었다. 앞이 캄캄했다. 누군가가 교회 담임목사님에게 즉석 주례를 부탁했고, 포켓 성경을 꺼내 들고 신랑 신부는 그렇게 결혼식을 마쳤다.
원래 주례를 맡으신 목사님은 나의 절친의 아버지였고, 고등학교와 청년 시절 때까지 몸담고 있던 교회의 담임목사님이셨다. 그래서 우리 또래 친구들의 주례는 당연히 그 아버지 목사님을 모시는 것이 통례였다. 그런데 나의 인생이 출발하는 첫날에 그 아버지 목사님은 영영 잊지 못할 쓰디쓴 악몽을 선물해 주셨다. 그러나 이 선물이 나에게는 오히려 경고가 되었다. 인생의 복과 화를 갖다준다는 사람들의 징크스는 더 이상 믿지 않기로 했다. 오직 인생의 생사화복은 전적으로 여호와의 것임을 굳게 해 줬다.
그날 이후 몇 년이 지났다. 어느 수요일에 저녁 기도회를 준비하고 있는데 미국에 거주하시던 그 주례 목사님이 섬기던 교회에 설교하러 오셨다. 잠깐 당황하던 나를 보시던 그 목사님의 첫 말씀은… ‘임자! 볼 면목이 없구먼…’ ‘아닙니다. 모든 것이 제 불찰이었습니다. 부담갖지 마십시오.’ 정말 그 황당했던 주례 부도 사태는 그 후에 내 안에 아무런 부담이 없도록 날 훈련키셨습니다. 결혼식 그날 아침에 리마인드를 위해서 수없이 전화 다이얼을 돌렸지만 계속 통화 중이라 포기한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 또한 주례를 부탁하면서 미리 사례를 드렸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제 불찰이었지… 몇 년 동안 내가 부족해서 만들어낸 불상사를 곱씹으면서 나름대로 나는 많이 성숙해 갔었다. 세상 살아가는 법을… 인간 처세의 테크닉이 무엇인가를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기본적인 사람의 도리도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궁극적인 복의 열쇠는 주님께 있음을 철저하게 깨닫고 믿으면서 나의 세상 인생관은 조금씩 성숙해 왔다고 본다. 반세기 전의 첫 눈과 오늘의 첫 눈은 또 새로운 나를 빚어가고 있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이사야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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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1.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