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한인예수장로회 총회장, 뉴욕센트럴교회 담임
지금부터 62년 전 1958년 4월 어느 날 밤 9시경이었다. 필라델피아 시 해밀턴 36가에서 27세의 한국인 유학생 오인호 씨가 무차별 폭행을 당하여 생명을 잃었다. 부산의 부모에게 쓴 편지를 우체통에 막 넣고 돌아서는 순간 영문도 모른 채 일방적인 공격을 받았다. 그것도 자그마치 11명의 흑인 청소년들에게 주먹질과 발길로, 깨어진 유리병으로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다. 비명 한번 질러보지 못한 채로 그 자리에 쓰러져 생명을 잃었다. 이 날 횡사를 당한 오인호 씨는 서울대학교 재학 중에 이스튼 칼리지에 유학하여 졸업한 후 펜실베이니아 대학원에 재학 중에 변을 당했다. 불과 5분 거리도 안 되는 작은 아버지 오기항 목사 집에 묵고 있었을 때였다.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날 밤 그곳에서는 청소년들의 댄스파티가 있었는데 35센트의 입장료가 없어서 흑인 청소년들이 범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사건이 벌어진 후 3일 만에 범인들이 전원 체포되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이 보도되었을 때 미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아무리 범죄가 많았던 미국 사회라고 해도 60년 전의 사회 윤리로 봤을 때는 굉장한 뉴스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들의 배심원들은 범인들을 극형에 처할 것을 주장했다고 한다. 무참하게 젊음의 생명을 잃어버린 한국 유학생의 장례식에 수많은 시민들이 찾아와 애도를 했다고 한다. 필라델피아 시장도 함께 그 장례식에 참여할 정도였다고 한다. 아들의 충격적인 사망의 소식이 부산의 가족들에게 전달되었다. 벼락같은 소식에 온 가족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러나 그 부모와 가족들은 슬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를 구했다. 그리고 오인호의 아버지 오기병 장로는 눈물의 편지를 담당 재판장에게 보냈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은 이미 천국에 갔습니다. 아들을 잃어버린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픕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슬픔을 하나님께서 위로해주셨고 이미 소망을 주셨습니다. 우리 부부는 철없이 범행한 청소년들을 용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아직 저들은 미성년자들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을 위해서, 또한 절망가운데 있을 저들의 부모들의 마음을 봐서라도 무죄로 석방해주시길 탄원합니다. 작은 돈이지만 저들의 앞날에 직업교육과 사회 적응을 위한 교육에 보태 쓰도록 500달러를 동봉하오니 귀하게 쓰여 지기를 바랍니다.’
또 한 번의 신선하고 충격적인 소식이 미국 전역에 대서특필되었다고 한다. “악을 선으로 갚다”(To Return Good for Evil)”는 제목으로 무조건 범인들을 용서하고 저들의 장래를 위해서 거금의 헌금까지 보낸 오인호의 부모와 가족들의 얘기들이 4면에 걸쳐서 보도되었단다. 그 당시 한국은 전쟁이 끝난 지가 오래되지 않아서 매우 어려운 시절이었다. 노동자 하루 임금이 30센트 정도였는데 500달러는 4년 5개월에 해당되는 한 사람의 일당이 되는 거금이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 오기병 장로는 자신의 집을 바쳐서 영도교회를 건축할 만큼 독실한 믿음의 소유자였다. 연탄보일러를 발명하여 기업에서도 성공한 기업인이었다. 그는 27세에 최연소 장로가 되는 기록을 세울 만큼 전적인 헌신자였다.
이 소식을 들은 미국장로교회에서는 오인호 씨의 가정의 미담들을 35분짜리 영화를 제작하였다고 한다. 3년 동안 5천여 교회에서 상영하여 162만 달러 이상의 청소년 선도 모금의 기록도 세웠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오인호의 모교인 이스튼 칼리지에서는 그의 가족들의 숭고한 사랑을 기리기 위해서 ‘오인호 기념 컨퍼런스 룸’을 만들고 6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들의 사랑과 헌신을 기념하고 있다고 한다. 2천년 전에 이미 선으로 악을 이기신 하늘 아버지의 그 큰 사랑의 미담이 이번 성탄계절에도 온 세상에 대서특필되기를 기도하면서 성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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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