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오스틴 주님의교회)
두 주 전, 텍사스 오스틴에 겨울 한파가 왔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오랜 세월 그 자리에서 텍사스의 따가운 빛을 피하게 해주었던 키가 큰 나무들의 가지가 잎사귀에 달린 얼음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반토막이 나고 뿌리째 뽑히기도 하며 또 큰 가지 통째로 원줄기에서 뚝 떨어졌다. 추위에 약한 나무여서일까? 아니면 봄에 잎을 떨구기 위해 겨우내 붙들고 있었던 많은 잎 때문이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하며 여기저기 산재한 부러진 큰 둥치들을 보며 못내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그런데 이런 안타까움도 잠시, 전기가 순간적으로 몇 번 왔다 갔다 하더니…… 정전이 되었다. 영하의 날씨에 내리는 비는 얼음이 되어 정겨운 나무, 오랜 벗들의 모습을 흉측하게 망가뜨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 마음도 고드름이 맺히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컴컴한 집 안을 밝혀줄 초에 불을 붙이고는 벽난로 주위에 모였다. 학창 시절 때 수련회 기간이면 단골처럼 있었던 모닥불 주위에 모여 기타 치고 노래하던 그 시절을 연상하며 우리는 기타 치고 노래하며 심란한 저녁을 새로운 환경에 씩씩하게 적응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4일간 갈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정전된 첫날 밤은 쉬이 잠들지 못했다. 정원에서 쿵쿵 떨어지는 나뭇가지들 소리와 코가 시리고 얼굴이 시려서였다. 길은 온통 얼음이 되어 학교는 휴교령이 떨어졌다. 전화 배터리도 곧 방전될 위기였다. 그런데 누군가가 전화를 했다. 저녁을 갖다주고 싶다고. 다짜고짜 감사의 말만 빨리 남긴 후 배터리 2%가 남은 전화를 끊었다.
어느 분이 따뜻한 삼계탕을 식구 수대로 끓여 냄비에 담아왔다. 코끝이 찡했다. 하나님이 목사님과 사모님을 섬기라고 오늘 저녁 메뉴를 삼계탕으로 하게 하신 것 같다며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분이 집을 방문하여 배터리 충전할 수 있는 여러 기자재와 전등들을 잔뜩 두고 갔다. 집에 있던 모든 전등이 총출동한 것 같았다. 그러고는 벽난로가 신경에 쓰였던지 일산화탄소를 염려하는 문자가 울렸다. 평소에 말도 없는 분이 이렇게 자상한 마음을 표현해주니 또 코끝이 찡해왔다.
밤늦게 카톡이 온다. 중보기도 팀장이 중보기도 팀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우리를 위해 기도부탁하는 문자를 보며 눈물이 글썽거렸다. 팀장 집사님에게 고맙다는 문자를 보내니 그녀는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모습이라고 말하며 또 감동을 주었다.
겨울 한파는 우리 동네의 외관을 폭격 맞은 흉측한 곳으로 만들어버렸고 우리 집 또한 여러 군데를 손질해야 하는 곳으로 만들어버린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성도들의 따뜻한 사랑의 마음은 온기를 전해주었고 상황에 매몰되어가던 나를 일깨우며 힘을 북돋아 주었다. 그리고 시린 발과 손, 얼굴과 몸이었지만 우리의 이런 상황을 눈여겨보시며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는 포근한 시간이었다.
“여호와께서 …… 사람들을 눈여겨보십니다. 눈길을 떼시지 않고 사람들을 자세히 살피십니다” (시편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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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5.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