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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리더의 올바른 리더십을 절규한다

손동원 박사 (미드웨스트대학교 교수, 리더십학자)

절대 진리의 상실, 비 진리의 득세

이 시대는 IT와 컴퓨터 그리고 인터넷과 SNS가 지배하는 시대이다. 한마디로 삭막한 시대이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굶주린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정직한 리더의 올바른 리더십’이다. 20세기를 가리켜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라 부르고, 짧은 기간이지만 21세기를 가리켜 트랜스모더니즘(Transmodernism)이라 부른다. 포스트모더니즘을 한마디로 ‘절대 진리의 상실’이라고 한다면, 트랜스모더니즘은 ‘비 진리의 득세’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긴 터널을 통과하며 큰 후유증으로 병들어 있다. 아직도 우리들 마음속을 혼란시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 혼합주의(Syncretism)이다. 포스트모던은 모든 종교의 통일과 모든 종교의 일치를 주장한다. 그래서 기독교의 십자가의 대속, 부활신앙 같은 것은 무관심하고 사랑, 희생, 구제와 같은 보편적인 가치에만 관심을 갖고 하나 될 것을 강조한다. 둘째, 모호성(Ambiguity)이다. 포스트모던은 알쏭달쏭하다. 확실하게 “이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없다. 매사에 모든 것을 무감각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린다. 셋째, 깊이가 없다(Shallowness). 단순한 감동만 주지 분명한 결단이 없다. 다분히 감정적이고 지적 쾌락주의에 빠진 것이 이 시대의 특징이다. 진리가 상실되고 진리 아닌 것이 활개 치는 무관심과 무감각과 무기력한 시대에 리더가 가져야 할 리더십은 과연 무엇일까?

무관심 시대의 비극

오늘은 좋은 소식이 있을까? 우리 모두는 소망가운데 오늘도 Good News를 기다린다. 살아가면서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이 없다면 삶은 삭막하다. 다른 사람들과 감동을 나눌 수 있고 하늘을 감동케 하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그는 귀한 사람이요 우리가 기다리던 바로 그 리더인 것이다. 중국의 어느 시골마을 버스 안에서의 일이다. 험악하게 생긴 두 건달이 예쁘게 생긴 여자를 희롱한다. 많은 사람들이 버스에 있었지만 모두 모른 체 했다. 급기야 두 건달은 운전사에게 정지할 것을 명하고 말을 듣지 않자 그를 폭행한다. 그리고 두 건달은 버스에서 여자를 강제로 끌어내려 풀밭으로 데리고 가서 성폭행을 했다. 건장한 남자 수십 명이 버스 안에 있었지만 어느 한 사람도 정의롭게 나서지 않았다. 그냥 차창 너머로 슬금슬금 눈치를 보면서 그 광경을 구경만 했다. 왜냐하면 남의 일에 참견했다가 칼이라도 맞을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때, 보다 못한 한 청년이 나서서 건달들과 싸운다. 건달들은 청년을 칼로 몇 차례를 찌르고 달아난다. 여자가 울면서 옷을 차려 입는다. 그녀가 버스에 오르자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말이 없었고 여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무관심한 척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운전사가 심한 폭행을 당해 운전을 제대로 할 수 없어서 여자가 헝클어진 상태로 운전석에 앉았다. 그때, 피를 흘리며 청년이 차에 타려고 하자 여자가 소리친다. “왜 남의 일에 참견하시는 겁니까?”라며 그 여자는 청년에게 화를 내고 버스 문을 닫아버린다. 그리고 여자가 운전하는 버스는 출발한다. 청년은 고통스럽게 아픈 몸을 이끌고 시골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다 자동차 사고현장을 목격한다. 교통경찰관이 말하길 버스가 낭떠러지에 떨어져 승객이 모두 사망한 사고라고 했다. 멀리 낭떠러지를 바라보니 방금 자신이 타고 왔던 바로 그 버스였다.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죄를 짓지 않았지만 어찌 보면 모두 죽어야 할 만큼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이다. 오직 살만한 가치가 있었던 그 청년을 버스에 타지 못하게 하고 그 여자는 승객들을 모두 지옥으로 데리고 간 것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무관심하면 모든 것이 편안할 것 같이 생각하지만 무관심의 결과는 이처럼 무서운 것이다. 특별히 리더는 이런 무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헛된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가? 사람들은 욕망을 채우려는 이들의 폭력과 무서움 때문에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억지로 무관심하며 고통가운데 신음하고 있다. 지도자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고 교만을 부린다. 경쟁자를 비방하는 이들이 늘어가고 감사하지 아니하고 무정하며 모함을 일삼는 지도자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무늬만 리더인 자들이다.

암이나 백혈병보다 더 무서운 병

무관심은 무감각으로 발전한다. 비진리가 득세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옳고 그름에 대한 감각, 함께 사는 사회에서의 윤리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다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 일로 가슴아파하거나 관심 갖지 않는다. 단지 그 일이 자기에게만 일어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자기만 안전하면 되고, 자기 가족만 건강하면 괜찮다. 사람들은 “무관심하면 안 된다. 무감각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결국 무기력해지는 것은 “나 혼자 나서 본들 무슨 소용이 있나?”라는 생각 때문이다. 혼자서 아무리 잘해도 남들이 같이 하지 않으면 나만 바보가 된다는 생각이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두 눈 가진 토끼가 한 눈 가진 토끼 마을에 가서 병신 소리를 듣게 되니 한 쪽 눈을 빼 버렸다고 한다. 그와 같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무기력해졌다. “에이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고 말하며 포기해버린 지 오래다. 나 혼자 아무리해도 소용이 없으니까, 그것이 나쁜 줄 알면서도 잘못된 것 인줄 알면서도 내버려두는 것이 시대의 분위기이다. 내일을 준비하는 청소년들이 어른들 바로 눈앞에서 잘못을 저지르는데도 타이르는 사람이 없다. 요즘 아이들 잘못 건드리면 아이들이 드세고 무서워 잘못하면 나만 다친다는 생각이 이 세상을 더욱 병들게 하고 있다. 무관심, 무감각, 무기력의 3무 시대에 현대인들은 암이나 백혈병보다 더 무서운 질병을 앓고 있다. 인간이 무관심으로 자기중심적인 삶과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만사가 다 무감각해진다. 만사를 무감각하게 보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무기력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시대를 흔들어 깨우는 ‘정직한 리더의 올바른 리더십’의 출현이 더욱 간절하다.

정직한 리더의 올바른 리더십을 절규한다

무관심과 무감각 그리고 무기력이 난무하는 트랜스모더니즘 시대의 리더가 가져야 할 리더십은 무엇인가? 첫째로, 명확하고 선명한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지도자는 내용이 애매모호하고 겉만 화려한 이야기를 나열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어찌할꼬?”하는 신음이 흘러나오게 해야 한다. 둘째로, 삶을 통해서 감동하는 인생을 만들어야 한다. 행동으로 이끌지 못하는 감동은 죽은 것이다. 남을 시기하고 비판하며 남의 좌절과 실패로 만족하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야 한다. 교회를 비판하고 목회자를 비난하는 이는 많지만 정작 헌신적이고 순종하는 성도는 드물다. 시대적 위기를 극복하려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헌신적이고 청교도적인 사회인이 되어야 한다. 시대적 함정을 피하는 비법은 진실된 사람을 통한 온전한 헌신이다. 셋째로, 세상의 악의 무리에 진리로 대항하는 강력한 리더, 삶의 현장 속에서 정직한 리더가 등장할 때 이 사회의 모든 부정과 부패 그리고 부조리와 모순과 무관심은 무용지물이 되어갈 것이다. 리더여, 낙심해 쓰러진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사랑을 보여라. 지금은, 있는지 없는지 소리 없이 존재하는 구성원들과 교회 성도들에게 리더가 관심을 갖고 사랑을 보여줄 때이다. 말을 걸어주고, 아무 일 없어도 안부 인사라도 하자. 손을 잡아주고, 힘찬 악수를 나누는 것이 지도자로서 관심의 시작이다. 웃어주는 것이 관심이고, 배려해주고, 이해해주는 것이 관심이다.

리더여, 이기적인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사람들을 진리와 사랑으로 품어 주어라. 그리고 모든 것을 믿음 안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영적 시각을 완비하라. 인격이 성숙한 리더를 통해서 사람들은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 아직 세상에는 소망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진리로 충만한 리더들이여,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 희망 그리고 향기가 되어라. 절대 진리가 상실되고 비 진리가 득세하는 이 시대에 세상은 ‘정직한 리더의 올바른 리더십’을 절규(cry loudly)한다. sondongw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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