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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의 황제숭배의 기원

이정현 목사 (씰비치사랑교회)
이정현 목사

Q: 저희 교회는 계시록을 공부하고 있는데 기독교인이 핍박받았던 황제숭배의 기원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 로미타의 권 명옥 권사

 

A: 시저가 죽은 후에 그의 후계자로 양아들 옥타비아누스를 지명했습니다. 그는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대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18살밖에 나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저의 심복 부하였던 안토니우스는 38세로 그를 어린 철부지로 여기며 얕보았습니다. 그래서 옥타비아누스는 후계자가 되었지만 보이지 않게 이 두 사람이 정적으로 치열하게 서로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격돌을 하게 되는데 로마 제국이 둘로 나누어져 그 싸움은 20년간이나 계속이 됩니다. 옥타비아누스는 어릴 때부터 장이 약해서 언제나 새처럼 소식을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전쟁에 돌입하면 면밀하게 이해관계를 계산하며 적과 맞서 용감히 싸우는 기질이 있었습니다. 시저는 자신과 정반대의 기질을 가진 그를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옥타비아누스는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와 연합된 안토니우스를  악티움 해전에서 제압했습니다. 그래서 옥타비아누스는 반란을 완전히 제압한 후 로마로 금의환향 하면서 외친 것이 “강력한 로마, 힘에 의한 평화, 팍스 로마나(Pax Romana)”입니다. 

 

팍스 로마나는 BC 27- 180년까지의 기간을 의미하는 데 로마제국의 군사적 우위에 기초한 정치적 평화입니다. 잠재적 적을 힘으로 제압하므로 경쟁 대상이 없는 더 이상 전쟁이 없는 비전쟁의 상태를 말합니다. 김두한처럼 주먹 세계에서 대단한 힘을 가진 싸움쟁이가 종로의 오야봉으로 주먹 세계의 패권을 잡게 되면 모든 주먹 세계가 다 자기 밑에 형님하고 들어오는 것과 비슷합니다. 필적할 만한 싸움군이 없어진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주먹 세계에 평화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엄청난 도약이 이루어졌는데 그는 정치도 잘하여 지혜롭고 휼륭하게 로마를 통치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란을 종식시켰고 그래서 혼돈과 폭동이 사라졌고 질서가 확립되었으며 예술과 농업, 상업이 발전되었고 법이 구현되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외적으로 내적으로 평화를 확립했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경찰제도와 소방제도를 쌓아 로마를 대리석화 하였습니다. 이것이 서양문명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질서, 평화, 안전을 보장하는 선정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원로원은 주전 9년부터는 그를 임페라토르(황제 Imperial highness)에 덧붙여 프린키페스 (제1인자, 제1시민)의 칭호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Exalted(숭고한, 경외할 만한 존엄 자) Augustus(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고 인간보다 높고 신보다는 약간 모자라는 신분을 부여했습니다. 그 후부터 온갖 맹세와 제물들이 제국의 머리이자 하늘이 내린 신과 같은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 바쳐졌습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탄생했을 때 눅 2장1절을 보면 바로 이 아우구스투스가 인두세를 받기 위해 천하로 다 호적하라고 호적령을 내렸을 때입니다, 그는 AD 14년 폐렴으로 사망하자 원로원은 그를 신으로 명명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에서 황제숭배가 시작되었습니다.

 

09.21.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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