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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운동

이정현 목사

Q: 목사님, 며칠 후면 3.1운동 만세 사건이 일어난 3.1절입니다. 3.1절이 일어난 배경과 우리 해외의 기독교인들이 애국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 로미타에서 권 장로가

 

A: 지난날의 우리의 민족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민족사의 어려운 고비 고비마다 하나님은 개입하셔서 위기를 극복하는 용기와 저력을 우리 민족에게 주셨습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의해 나라를 빼앗겼던 것처럼 우리 선조들은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그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905년 일본의 천황은 이등박문을 우리나라에 보내 굴욕적인 조약을 강압적으로 체결하도록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우리나라에 통관부를 설치하겠다는 것입니다. 고종황제와 대신들은 물론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총과 칼의 위협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굴욕적인 조약을 체결하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5년 뒤인 1910년 한일합방이라는 미명하에 우리는 나라를 완전히 빼앗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자유를 빼앗겼습니다. 말과 글을 빼앗겼습니다. 남자는 대동아 전쟁에 끌려갔습니다. 여자들은 정신대에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어디 그것뿐입니까? 그들은 자기 나라 왕을 신이라고 주장하면서 우리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했습니다. 말을 듣지 아니하는 사람은 다 감옥에 집어 넣었습니다. 일본은 갖은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던 중 1919년 1월 2일 일본인의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던 고종 황제가 승하했습니다. 독살했다는 소문도 들렸습니다.

 

1919년 3월 1일은 고종황제의 국상을 이틀 앞둔 날이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종로 탑골공원에는 수많은 학생들과 인파가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가 앞으로 뛰어나가 품속에서 독립선언서를 꺼냈습니다.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독립선언서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낭독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거기에 모인 수많은 인파들이 한목소리로 “대한 독립만세”를 부르짖으며 덕수궁으로 행진하기 시작했습니다. 3.1 운동 당시 참가자가 220만 명, 죽은 사람이 7561명, 부상자 15,961명 투옥된 자 469,408명 소각된 예배당 47동이 임시정부에 보고된 내용들입니다.

 

3.1운동 만세 사건은 우리 한 민족이 살아있음과 생명보다 소중한 독립에의 열망을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3.1운동은 중국, 인도, 이집트등 세계 여러 나라의 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되었고 약소 민족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었습니다. 3.1운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중국 상하이에 임시 정부가 세워지게 했습니다. 3.1운동 이후로 하나님은 26년 후에 드디어 우리 민족의 기도를 들으시고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까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됨으로 일본이 망하고 1945년 8월 15일에 조국 광복의 날이 오게 했습니다. 우리 민족의 고통 속에서 드린 기도에 하나님은 기적적으로 응답하셨습니다.

03.02.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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