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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기도 비판

이정현 목사

Q: 어떤 분이 기도학교를 가르치면서 관상기도를 해야 보다 차원 높은 기도에 들어간다고 말하는데 관상기도는 무엇이며 그것이 성경적으로 옳은지 알고 싶습니다.

- LA에서 Kim

A: 관상기도는 성경적인 기도가 아니므로 그것을 배울 필요가 없음을 먼저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관상(觀想)이란 말은 함께라는 뜻의 “Con”과 기독교적 성소를 뜻하는 “templum” 의 합성어로 이해되는 Contemplation이라고 부릅니다. 현대적 관상기도를 일으킨 사람 중의 하나인 토마스 키팅(Thomas Keating)은 “말로 하는 기도는 깊이있는 기도가 아니라고 하면서 기도나 언어나 심지어 마음속의 심상(Image)을 사용하지 않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지향하는 기도”라는 말을 합니다. 한마디로 관상기도는 주 앞에서 이미지나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마음으로 주님의 품 안에서 쉬는 기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하나님만 바라보는 기도로 하나님과 하나되고 일치가 되게 하는 기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관상기도를 하는 분들은 관상기도는 마음을 주께로 향하는 Centering prayer(향심기도, 중심기도) 라고 말합니다. 

 

인도사람 드 멜로는 묵상법 중에 호흡법을 소개하며 숨을 들이쉴 때 하나님의 성령이 자기 안에 들어옴을 의식하고 숨을 내쉴 때 자신의 온갖 두려움, 부정적인 느낌을 낸다고 상상하면서 기도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호흡법을 연습하여 나중에는 이렇게 숨을 쉬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이런 방식으로 호흡할 수 있게 되기까지 노력하면서 반복 기도를 하는 중에 관상의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박노열 목사는 관상기도는 안토니우스 벤네딕토, 동방교회, 천주교회의 이냐시오 예수회, 십자가의 요한 토마스 머틴을 언급하며 관상기도의 전통을 제사하는 자는 트라피스터 수도회의 지도자들인 천주교 인사들이었고 관상기도를 폭넓게 번지게 하는데 큰 기여를 한 사람은 한국인에게도 유명한 헨리 나우웬 신부였습니다. 

 

박노열 목사는 관상기도를 비판하면서 1) 일상적인 삶으로부터 분리 2) 지나친 금욕주의 3) 반지성주의 4) 믿음의 공동체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0년간 뉴에이지를 연구한 마가렛 피스터는 뉴에이지적 명상과 별반 다른 것이 없다고 했고 드레허(Dreher)는 관상기도의 위험이란 책에서 이것은 기독교적이 아니고 자기 체면이라고 말했습니다. 합동신학교의 이승구 교수는 “우리 이웃의 신학들”이라는 책에서 어떤 것이든지 그 근원적 사상을 파악하는 것에 힘써야 한다. 유행하는 것을 그대로 따르지 말고 모든 것을 근원부터 미루어 살피는 태도가 누가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관상기도 역시 우리가 따라가서는 안 되는 잘못된 유행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관상기도를 비판하기를 관상기도는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의 도움이 합하여 정화(淨化), 주입(注入), 합일(合一)의 단계로 나아가려는 반-팰라기우스적인 천주교 사상을 토대로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관상기도는 성경의 원리에 근거하여 신앙생활을 하려는 개신교인들이 따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적인 기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에 의존하여 성령님의 감화 속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런 기도만이 성경적 참된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관상기도를 강조하며 이것만이 깊이 들어가는 기도라는 것은 착각이요 자기 체면에 빠지는 것입니다.

08.26.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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