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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보다 성경이 먼저, 최초 교회 한국인이 먼저

이정현 목사

Q: 한국의 최초의 세례교인은 누구이며 어떻게 한글 성경이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최초의 한국교회는 어떻게 세워졌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 실비치 이희은

 

A: 한국의 선교는 2가지 면에서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선교사보다 성경이 먼저 한국에 들어 온 것과 한국인 최초의 교회가 선교사에 의한 것이 아닌 한국인에 의해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장로교회사를 쓴 오덕교 교수의 책에 의하면 한국인을 위한 성경 번역은 만주와 일본에서 동시에 이루어졌는데 만주에서는 존 로스(John Ross)와 존 맥킨타이어(John Mcintyre)가 조선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성경을 번역하였습니다. 이들은 만주 지역을 탐색하다가 만주로 이주해 오는 한국인들을 만났습니다. 존 로스는 1872년 요령성의 심양에서 이응찬, 백흥준, 이성하, 김진기들을 만나 복음을 전하였으며 1876년 이응찬이 복음을 받아들여 그를 한국 기독교 최초의 세례교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존로스는 이응찬, 백흥준, 서경조의 도움으로 1880년 요한복음과 누가복음을 번역 완료하였고 1887년에는 신약을 완역하여 출판하였습니다. 

일본에서는 1882년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와있던 이수정에 의해 성경이 번역되었습니다. 그는 일본인 농학자 쯔다센박사의 전도로 기독교 신자가 된 후에 1883년 4월에 세례를 받았고 미국 성경공회 총무 루미스의 권고로 한국어 성경 번역 작업을 시작하여 1884년 마가복음을 발행하였습니다. 이들의 수고로 한국교회는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자국어로 된 언어로 된 성경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 한글 성경을 가지고 장로교 선교사는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최초의 한국교회는 외국선교사가 아닌 한국인에 의해 세워졌는데 만주에서 성경 번역에 참여했고 성경을 파는 매서인으로 일하던 서상륜이 성경을 가지고 비밀리에 국경을 넘어 황해도 소래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1883년 교회를 세움으로 소래 교회는 한국 최초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서상륜은 원래 양반으로 태어나 한문 공부도 많이 했고 중국어도 잘했고 중국을 다니며 장사를 하는 중에 장티푸스에 걸려 온몸이 불덩이 같은 고열에 시달리며 사경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미 기독교를 접한 이응찬이 그를 매킨타이어 선교사에게 안내하였습니다. 전염병으로 생명의 위급함에 처한 서상륜은 서양병원에서 선교사 헌터(Joseph M. Hunter) 의사에게 치료를 받으면서 점차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심양에서 존로스 선교사를 도와 한국 성경번역에 동참하였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번역한 서상륜은 또 하나의 사명을 갖고 자신이 번역한 복음서를 안고 압록강을 건너 고향 의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 후에 1883년 5월 16일 서상륜, 서경조 형제가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 소래마을에 초가집 예배당인 한국 최초의 교회인 소래교회를 세웁니다.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에 가면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캠퍼스가 있는데, 그 캠퍼스의 생활관 뒤편에는 아늑한 한옥 기와집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한옥 개인 주택이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 소래교회를 복원해 놓은 곳입니다. 이후에도 한국교회에 중요한 교회가 3개가 더 있는데 인천 내리교회와 정동제일교회 그리고 새문안교회입니다.

10.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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