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석 목사 (NY 부르클린 제일교회)
1. 청교도 예배의 원리[1595호 8면에서 계속]
4)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성경적 예배 예배는 사람들이 고안한 방식이 아니라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방식으로 행해질 때 지존하신 하나님께 최고의 가치 있는 예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배를 영어로 서비스(Service)라고 할 때, 이것은 섬기는 자의 의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섬김을 받으시는 분의 의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섬김을 받으시는 분의 방식과 규칙을 알고 따라야 한다. 개혁교회는 이런 내용을 예배의 “규정적인 원리(Regulative Principle)”라고 표현한다. 칼빈은 “예배 문제에 관해 유일하게 돌려져야 할 주인되신 주님께서 거룩한 말씀에 명확하게 펼쳐 놓으신 것들로부터 예배의 모든 요소들이 규정되어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1권 12장 1항에서 예배는 하나님께 나타내는 피조물의 합당한 순종의 반응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에 한정시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존귀가 박탈당하고 예배 자체가 더러워진다고 말한다. 사람들에게는 방종하려는 죄성이 있기 때문에 늘 제한된 규정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 대한 바른 예배의 원리는 인간이 스스로 고안해낸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규정적인 원리에 입각해야만 한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도록 하는 온전한 예배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적 예배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
5) 하나님 중심적인 예배의 규정 원리 청교도들이 성경적이고도 하나님 중심적인 예배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는 원리는 다음과 같다. 가) 예배 의식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다. 죄인의 구주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예배가 참예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1장 1항은 이렇게 선언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상상이나 고안 또는 사단의 제안에 따라 어떤 가시적인 형상들을 사용하거나 성경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방식으로 예배할 수 없다. 소위 ‘축제’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예배자가 흥겨워하고 즐기는 인본주의적인 예배는 참 예배라고 할 수 없다. 축제적인 예배의 실제 내용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을 즐기는 것으로 변질되기 쉽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의 예배는 마치 출애굽기 32장에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 때 자기들을 위한 하나님을 만들고 그 앞에서 여호와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았던 행동과 유사할 수 있다.
나) 예배는 계시의 말씀에 따라 드려져야 한다. 모든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지극히 높이는 영적인 예배가 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의 성품에 합당한 예배인가를 점검하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시적인 형상이나 성경에 나타나지 않은 것들은 그것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예배에 사용될 수 없는 것들이다. 예배는 예배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배에 관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과 싫어하시는 것에 대하여 성경을 근거로 점검하지 않고 제 멋대로 판단할 권리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일 이렇게 자기의 판단을 가지고 마음대로 예배드린다면 이것은 자신이 만든 종교를 촉진시키는 모습인 자의적 숭배(Self-made religion, 골2:23)라고 할 수 있다. 다) 올바른 예배란 삼위일체 하나님께 행하는 의전이다
예배는 천사들이나 사람들이나 어떤 피조물에게 돌리는 것이 아니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러므로 예배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삼위일체 하나님께 하는 거룩한 의식이다.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요4:24), 성령 안에서 진리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창조주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 예배이다. 진리로 예배하라는 말씀은 계시된 성경 말씀을 따라 예배하라는 말씀이다. 라)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배해야 한다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신(딤전2:5) 예수님만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갈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요14:6).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만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죄인이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골1:22). 또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따라서 예배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적인 역사를 경험하는 최고의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1장 2항에는 “예배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한분께만 하는 것이다. 천사들이나 성도들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에게도 예배해서는 안된다. 타락한 이후 중보자 없이 예배할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 이외의 어떤 중보로도 예배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삼위 하나님께만 초점을 둘 때 예배가 제대로 드려질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2. 신령과 진정의 예배
1)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이다 가)구약의 진정한 예배의 실례 진정은 진리로 예배한다는 의미다. 구약에서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제사장으로서 첫 제사를 집전할 때 하나님께서 명하지 않은 다른 불을 드려 예배함으로(레10:1) 현장에서 즉결처분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두 아들의 죽음에 눈물짓는 아론에게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가 거룩하다 함을 얻겠고 온 백성 앞에 내가 영광을 얻으리라 하셨느니라”(레10:3)고 말씀하셨다.
택한 백성들이 다른 신들과 달리 구별되시고 자존하시고 엄위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밝히신 것이다. 예배와 제사는 다르지만,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의식이라는 원리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성도들은 거룩한 두려움이 가슴에 밀려와 회개와 경외감으로 충만해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거룩”과 “영광”이라는 단어가 이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나) 세속적인 예배를 경계한다.
세속적인 예배 형식에서는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을 볼 수 없다. 오직 인간의 기쁨만이 있을 뿐이다. 예수께서는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마15:8, 9)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배한다고 하지만, 어떤 인도자들은 예배자들이 즐기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면서,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고 예배자들이 즐길 수 있는 축제적인 예배로 바뀌어야 할 것을 추천함으로 성경과는 매우 거리가 먼 예배로 인도할 수 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깊이 인식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예배는 예배자의 종교적 위안은 될 수 있지만, 하나님과 상관없는 헛된 예배가 될 수밖에 없다(롬10:2,3).
어떤 사람들은 개인의 양심에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든지 기쁘고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도의 자유는 언제나 하나님이 제정하신 진리 아래에서 누리는 자유이지, 기록된 말씀에서 벗어나는 자유가 아니다(고전4:6). 교회의 머리이며 자기 백성들의 왕이 되신 그리스도만이 자기 백성들에게 법을 제정해주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다. 우리의 자유가 헛된 상상이나 우상숭배의 죄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을 충만하게 드러내는 참 예배에 대하여 가르치신 내용 안에서만 우리가 예배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younsuklee@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