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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들의 성경에 대한 안목(하)

이윤석 목사 (NY 부르클린 제일교회)

5. 청교도들은 성경의 원문 연구와 본문의 정황의 이해 연구를 위해 노력했다

청교도 설교자가 설교할 때의 원리는 원문을 연구하되 단어 하나하나를 중요시 여기고, 뿐만 아니라 본문의 정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청교도들은 ‘믿음의 유추’(Analogy of Faith)를 사용하였다. 그들은 해석하고자 하는 구절이나 본문에 대해 여섯 가지의 질문을 하였다. 첫째, 이 말씀은 실제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둘째, 다른 성경은 이 본문의 설명에 어떤 도움을 주는가? 셋째, 이 본문은 하나님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과 관련해서 인간에 대해 어떤 진리들을 가르치는가? 넷째, 이 진리들은 그리스도의 구원하는 역사와 어떻게 관련되는가?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 진리들의 설명에 어떤 도움을 주는가? 다섯째. 이 진리들은 어떤 경험들을 묘사하거나 서술하거나, 또는 창조하거나 수정하고자 하는가? 이 진리들은 어떤 실제적 목적을 위해 성경에 존재하는가? 여섯째. 이 진리들은 실제적 상황에서 어떻게 나 자신과 타인들에게 적용되는가? 이 진리들은 현재 인간의 상태에 대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믿고 행하라고 말하고 있는가?

6. 청교도들은 현대 개혁교회의 해석학을 정립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존 오웬은 “성경의 내용에는 믿음의 구조가 있는데 그 구조는 다른 것과 상충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가급적이면 은유적 해석은 거부해야 한다고 했다. 힘든 본문은 유사한 것 가운데 이해하기 쉬운 것을 통해서 해석하도록 했다. 성경 해석 시 난해한 부분이 있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구속의 메시지를 듣는데 장애가 되는 것은 없다고 믿었다. 그리고 성령의 조명하심을 강조했다. 그들은 본문과 문맥을 잘 공부하며 성령의 조명을 받으면서 확신을 얻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청교도들은 다른 사람이 쓴 주석을 통해서 도움을 얻되, 특히 초대 교부의 글에서 도움을 얻었다. 이 모든 것도 성령께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시는 것에 순복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러한 성경해석학의 원리들은 우리의 생각 가운데 이미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라 생소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바로 청교도들이 우리 개혁주의 성경해석학의 원리를 제공해준 장본인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들은 흥미 위주의 설교자들이 아니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죽어가는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라 믿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경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복음주의자들이 가질 수 있는 실수 중 하나는 하나님 말씀의 권위만을 강조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청교도들은 권위의 강조뿐 아니라, 권위 있는 그 말씀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7. 청교도들은 특히 성경 묵상의 필요성을 매우 강조하였다

1)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말씀을 묵상하도록 명령하셨다. 이것은 충분조건이다(신6:7; 시19:14, 119장; 요4:24; 엡1:18 등). 구약의 여호수아와 모세와 다윗이 그랬고, 신약의 마리아, 바울과 디모데가 그러했다. 2) 말씀을 읽을 때 직접 쓰신 편지로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시편 119:48에 근거한다. 친구로부터 편지 받는 것은 매우 유쾌한 일이기에 거듭해 읽듯이 말씀은 편지이기 때문에 매우 흥미있게 읽으며, 말씀하시는 그것에 대해 묵상하는 것이다.

3) 말씀을 묵상하는 성도는 견고한 성도이다. 토마스 왓슨은 “묵상하지 않은 성도는 무기가 없는 성도와 같다. 대장장이가 도구가 없는 것과 같다. 묵상 없이는 어느 것도 성취할 수 없다”고 말한다. 묵상하지 않으면 말씀에 고갈 되어 약한 성도가 된다. 시119편에서 다윗은 묵상을 통해 죽음에서 살아날 힘을 얻었음을 고백한다(25, 50, 77, 88). 하나님이 섭리 가운데 고통 속에 우리를 집어넣을 때 말씀을 묵상하지 않고, 주권적인 뜻에 순종하지 않으면 우리는 망하고 만다. 그러나 묵상한다면 우리의 영혼이 안식을 얻는다. 그래서 이사야는 하나님께 마음을 고정한 자는 견고하게 설 수 있다고 했다(사26:3). 4) 설교된 말씀이 우리에게 유익을 줄 수 있도록 묵상해야 한다. 청교도 와이처는 “묵상 없는 천 편의 설교보다 묵상 있는 한 편의 설교가 더 낫다”고 말한다. 만일에 설교를 들었지만 묵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음식을 먹을 때 씹지 않고 삼키는 것과 같다. 제대로 소화시키려면 잘 씹어야 하듯이, 설교를 잘 섭취해야 한다.

5) 말씀 묵상은 우리의 기도 생활을 묻는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반 정도만 끝난 것과 같다. 말씀을 읽은 다음에 기도할 때 그 기도는 효과적인 기도로 나타난다. 성경을 읽다보면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이끌어 주신다. 청교도들은 묵상의 바른 방법으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라고 충고한다. 6) 진리를 변호하기 위해 묵상해야 한다. 묵상은 우리의 중추 등뼈와 같다. 묵상을 하지 않는 성도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지식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묵상하는 자는 계속 배우며 거기서 진리를 발견한다. 우리가 매일 묵상하지 않으면 영적 애정이 식어진다. 세속적 삶을 살다가 갑작스럽게 주일에 교회에 가면,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리지 않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것은 묵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신이 가장 깨어있는 시간을 정해서 지켜야 한다. 언제 묵상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정신으로 묵상에 임하는 자체가 중요하다. 주일은 좀 더 많은 묵상을 하는 시간이다. 하나님은 그 날 영적인 훈련을 하도록 부르셨다. 청교도들은 주일날 교회에 다녀 온 후 집에 와서 설교 내용과 노트를 계속 숙고하며 묵상하며 특별히 가족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쳤다.

8. 결론적 제언

1) 우리는 청교도들의 성경관을 잘 드러내고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오늘날 우리 개혁교회는 성경에 대한 청교도들의 헌신과 사랑, 성경에 근거한 신앙내용의 개혁, 성경이 말하는 바른 교훈에 대한 정확한 표현, 성경에 근거한 예배와 교회 조직과 삶의 개혁을 동일하게 강조해야 한다. 성경적인 토대 위에 성경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성경의 사람이 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또한 성경신학적인 관심을 가지고 성경에 충실하게 우리의 믿는 바와 생각하는 바를 고쳐 나가는 일에 진력해야 할 것이다. 성경적이고 구속적인 예배의 회복을 위해, 성경에 근거해서 우리의 예배를 성경의 요소들로만 구성하되, 살아계신 하나님께 구속의 관심을 가지고 예배하는 일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성경적인 교회를 위해, 성경에 근거한 교회 조직, 교회 회원 인식, 직원들에 대한 의식을 회복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청교도들로부터 이런 성경적인 삶의 실천과 회복을 배워야 한다. 2) 다양한 입장의 청교도들이 같이 있으면서 더욱 성경적인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기 위해 노력했던 점을 본받아야 한다. 청교도들로부터 우리 자신의 주장의 근거만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되고, 청교도들 안에서도 서로 다양한 형태의 내용이나 경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같은 자리에 그들이 서로 함께 있을 수 있었던 것을 의미있게 살펴보면서, 현대 개혁교회도 제도와 형태 등에서 분열이나 분리되는 대신에 서로 다른 이해에 대한 다양성을 인정하며 조화를 이루는 노력이 필요하다.

청교도들이 서로 다른 점이 많았으나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음을 생각하고, ‘영적인 형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청교도들을 하나로 결속시켰던 특징은 그들의 온화한 성품이었다. 우리는 각자가 자신의 입장에서 가장 성경적으로 살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서로 다른 입장을 지닌 자들이 스스로 성경적이 되려고 최선을 다하는 한 서로 돕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성경적이기를 원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의식을 가지고 어떤 일에 대해서는 함께 협력해 가며, 온 세상이 더욱 성경적인 방향에 가깝게 나아가도록 하는 일에 함께 힘써야 할 것이다.

3) 목회자의 설교나 지도자의 가르침 또는 교회의 어떤 행사들도 하나님의 말씀의 인정과 인준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권능을 행하며 귀신도 쫓아내는 큰 능력을 나타냈을지라도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청교도들은 주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 곧 집을 반석 위에 세운 지혜로운 사람과 같았다고 말할 수 있다. 지도자들이 철두철미하게 성경을 따라 한걸음씩 나아가야 되지만 때로는 자연적인 방법과 세속적이며 인기 있는 방법을 따라가는 지도자들이 있다. 목회자가 성경을 따라 행할 때 당장에 눈앞에 보이는 성장과 변화나 열매가 부족할지라도 하나님은 성경에 근거하여 성경대로 행하는 자들을 칭찬하실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으로 사역에 임해야 할 것이다.

목회에 성공했다는 사람들도 자신의 목회나 사역이 과연 성경에 근거한 것인지, 그 기원과 방법, 목적과 과정까지도 성경의 진리가 용해되고 흡수되고 적용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각종 미디어에 이름을 떨치고 화려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성취를 이루었다는 것이 그리스도의 일군됨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목회자들은 업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서 말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의 일군은 그들을 불러주신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여야 한다. 청교도들은 이것을 최우선시 했으며, 또한 이것에 대해 부족할까봐 늘 두려워했기에 때문에 이런 성경에 대한 분명한 자세가 그들이 사역에 심혈을 기울인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청교도들의 성경관에서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규범임을 살펴보았다. 성경 외의 다른 사상이나 규례들은 결코 그리스도인의 삶을 완성케 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의 통치가 모든 면에서 구현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자세요, 우리의 자세가 되어야 한다. 청교도의 성경관을 따라 그리스도인들은 이 절대적인 지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확장하고 계속 전진해야 할 자로 부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한 성경적인 결단과 헌신을 새롭게 해야 할 것을 요청한다. younsuk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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