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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맞이

변명혜 교수

(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2019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우리 모두는 새 것을 좋아한다. 어릴 적 동요 중에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새 신을 신으니 기분이 좋아서 머리가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이 뛸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음을 노래한 것 같다. 이처럼 우리는 새로운 것이 주는 신선함과 새로움에 포함된 가능성 때문에 새 것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온고지신이라는 한자어처럼 옛것에 대한 충분한 숙고가 없으면 새 것을 알 수가 없다. 개인의 삶에서도 우리는 지나간 것에서 교훈을 삼아 새해를 맞으면서 지난해에 미흡했던 것들을 돌아보고 그것에 기초해서 새로운 해를 계획한다. 

한 해 동안 실천하고 싶은 것을 적으며 새해결심을 하기도 한다. 우리 집 강아지도 새해를 맞아 몸무게를 줄이는 것이 목표이다. 아들이 결혼하면서 데려간 이후로 좁은 아파트에서 종일 아들, 며느리를 기다리며 누워있다 보니 완전 돼지 강아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강아지가 자기 건강을 위해서 살을 빼야겠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당근, 사과 등 야채종류를 제외하고는 절대 간식을 주지 말 것 등을 주인인 아들이 결심한 것이다. 

우리 교회에서도 작년 마지막 주일에 새해에는 일년에 성경을 일독 이상 하자는 취지로 성도들을 독려하였다. 일독 이상 하겠다는 성도들은 그 결심을 종이에 적어내었다. 목사님께서는 “작심삼일일 텐데…”라며 새로운 결심을 망설이는 성도들이 있다면 3일에 한 번씩 작심하다 보면 목표를 향해 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격려하셨다. 

목사님이 한 말은 심리학적으로 맞는 말이다. 어떤 목표를 향해갈 때 너무 큰 목표달성은 어려워 보이지만 큰 목표를 작은 목표 여러 개로 쪼개서 한 단위씩 성취를 위해 노력하다 보면 큰 목표달성이 더 수월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3일 동안만 잘해보자고 마음먹으면 그다지 어렵지 않게 3일 동안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테니 그렇게 3일마다 새로운 결심을 한다면 일년에 성경일독이라는 만만해보이지 않는 목표달성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하는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성격보다는 지나간 것에 머무는 경향이 더 많은 사람이다. 정들고 아끼던 것을 쉽게 흘려보내지 못하는 성격이다. 심지어 초등학교 때 연필이 닳아서 몽당연필이 되어도 버리지 못하던 기억이 난다. 새 연필이 있어도 그동안 사용하며 정들은 몽당연필을 버리기가 어째 미안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런지 새해를 맞이하면서도 특별히 신년계획을 세운다든지, 새해결심을 하지 않은지 꽤 오래 되었다. 새해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추진하기보다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한 해가 바뀌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된 것 같다. 

하나님 앞에서는 새해의 경계선이 중요한 것 같지 않고 매일, 매 시간을 그 분과 함께 동행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할 때 지나간 시간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려 하는데 이전 일을 기억한다거나 옛날 일을 생각하며 과거에 얽매여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지난날의 은혜는 잊지 말고 기억하며 감사해야 하겠지만 새롭게 펼쳐주시는 날들을 살아갈 때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지나간 일들을 과감하게 뒤로 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백세시대가 온다고 해도 친구가 신년인사 글에 적었듯이 내가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이제까지 살아온 날들보다 짧을 것은 확실한 일이다. 오랜 세월을 알던 집사님은 연말연시를 미국에서 지낸다고 한국에서 놀러왔다가 성탄절 다음날 응급실로 간 후 1월 1일에 세상을 떠났다. 또 우리학교 교수의 부인되는 분은 암투병 끝에 1월 2일에 어린아이들을 남긴 채 주님께 갔다. 새해가 시작되었다고 우리의 마음이 기대로 부푼 이 한 해의 첫 시작에 이미 주변의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축복이면서 동시에 사명인 것을 다시 생각한다. 선물로 주어지는 올 한 해의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고 싶은지 잠시 생각해보았다. 좋은 새해계획도 세우고 실천을 위한 결심도 해야겠지만 우리가 너무 잘 알듯이 우리의 계획은 우리 뜻대로 이루어지지만은 않는다. 특별히 주님과의 관계에서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올 한해도 나의 삶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그 나의 최선을 드려 그 분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드리고 싶다. 나의 가는 길에 늘 동행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아무 두려움 없이 새롭게 걸어가는 2019년 하루하루도 주님 손을 꼭 붙잡고 씩씩하게 걸어가고 싶다. 

주님, 올 한해도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와 같은 은혜로 저희를 둘러주옵소서.   

 lpyun@ap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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