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혜 박사 (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90년대 후반에 셀폰이 일반화되기 시작할 때를 기억한다. 유행 따라가기에 늦고 기계에 둔한 나는 셀폰이 필수품이 아니라고 생각되어서 셀폰 구입을 미루고 있었다. 교회 교사가 서툰 프리웨이 운전을 하고 다니는 내가 불안하다고 셀폰을 사주겠다고 하는 바람에 폐 끼치기 싫어서 마지못해 셀폰을 샀었다. 그 셀폰이 이젠 말 그대로 똑똑한 전화(스마트 폰)으로 발전해서 내게도 요즘에는 없으면 정말 불편할 것 같은 필수품이 되었다.
스마트 폰은 모르는 길을 찾아갈 때나 프리웨이가 막힐 때 이리 저리 샛길로 인도해주는 GPS 부터 출장길에 어디서나 학교 이메일을 확인할 수 있는 기능, 가까운 곳에 어느 식당이 있는지, 또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 지까지 참으로 다양하게 똑똑한 전화 노릇을 잘하고 있다. 이전의 셀폰의 주요기능이 통화였다면 스마트 폰은 손놀림 하나에 수많은 정보를 제공해주니 얼마나 편리한지 모르겠다. 그러나 스마트 폰이 가져온 많은 단점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스마트 폰은 우리 삶에서 점점 친밀함을 빼앗아가는 것 같다. 전화를 하게 되면 혹시 바쁜 시간에 상대방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서로를 향한 배려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의 대화가 이제는 음성을 통한 전달보다는 스마트 폰을 통한 감정이 배제된 메시지 전달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우려가 된다. 이모티콘이 있어서 메시지에도 표준화된 감정표현을 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사람의 음성이 전달하는 따뜻함이나 위로를 담아낼 수 있을까?
아들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는 어느 집사님은 아들하고 말하면 자꾸 충돌하니까 아예 카톡으로 대화를 한다고 하셨다. 물론 말할 때마다 얼굴을 붉히고 목소리가 올라가서 관계가 더 어려워진다면 카톡으로 꼭 필요한 대화만 나누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감정이 배제된 차가운 메시지 전달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가 아닌 기계적인 의사전달이 될 것이다. 대화가 통하지 않아서 화를 내는 경우가 있더라도 마주보고 대화하는 것이 두 사람을 더 가깝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또 스마트 폰은 일중독, 게임중독을 부추기는데 한 몫을 담당한다. 나도 가족끼리 가끔 만나 시간을 보내다가도 혹시 급한 메시지가 있을까 싶어서 메시지나 이메일을 확인하다가 딸에게 종종 지적을 당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스마트 폰 때문에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을 구분하지 못하고 늘 일에 붙잡혀 있는 듯 한 느낌이다. 메시지가 온 것이 보이는데 답글을 안 보낼 수도 없고 전화를 꺼버리지 않는 한 계속 외부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는 I-disorder라는 병명이 생길만큼 인터넷기기 의존도가 높아서 교회에 갈 때도 성경책을 들고 가지 않고 필요한 경우에는 스마트 폰으로 말씀을 본다. 곧 인쇄된 성경책이 사라지는 세대가 오는 것은 아닐지. 일년에 한 번 강의 시간의 연장으로 학생들을 데리고 자연이 아름다운 조용한 곳으로 침묵 훈련을 하러 간다. 두 시간 정도 스마트 폰을 꺼버리고 하나님과 대화하라고 하면 젊은 학생들은 외부와 연결이 단절된 그 시간을 힘들어하기도 한다. 아침에 눈뜨면 바로 손에 쥐는 것이 스마트 폰이고 잠자리에 들 때 마지막 손에 들려져 있는 것이 스마트 폰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똑똑한 전화의 유익한 기능을 잘 사용하면서 전화가 우리를 다스리지 않고 우리가 전화를 다스릴 수 있을지 많이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이메일: lpyun@ap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