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혜 박사 (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지난 달에 나간 “그리운 찬송가”라는 글을 읽고 어느 성도님이 메일을 하셨다. 이메일주소가 글 하단에 나오기는 하지만 글을 읽고 연락을 한 분은 처음이었다. 평신도 입장에서 보는 복음성가, 찬송가에 대한 생각이 깊이 있어서 이번에는 그 분의 글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 성도님은 긴 글을 보내셨지만 지면 상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만 게재한다.
“신문에 실린 ‘그리운 찬송가’ 글을 읽고 공감하는 바가 커서 몇 자 올립니다. 저는 찬송가를 즐겨 부르며 나름대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평신도입니다. ‘그리운’ 하면 금강산이 따라 붙는데 찬송가가 따라 붙어서 그 글이 눈에 더 띄었나 봅니다. 저희 교회에서도 기타와 드럼으로 대예배가 시작됩니다. 아마도 요즘 교회예배의 추세인가 봅니다. 그러나 아주 전통적인 예배양식을 고수하는 교회들도 많이 있습니다. -중략-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저로서는 그런 평을 할 자격도 없지만 교인들의 추세나 호감도를 따라가기보다는 찬양에 분명한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예배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요, 그 순간만큼은 우리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며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하나님께 무조건 항복하며 모든 것을 내어놓는 순간이라고 여겨집니다. 물론 전문가들의 해석이 다르기도 하겠지만 복음성가의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우리들의 잔치이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리는 산 제사의 예배분위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신도들의 연령에 따라서 교회의 리더들이 연구한 바가 있겠지만 저희교회만 하더라도 대예배의 신도들 연령이 50대 이상이 거의 70%이상 입니다. -중략- 오래 전에 나온 복음성가는 그래도 멜로디가 중심이고 따라 부르기가 좋지만 요즘에 쏟아져 나오는 복음성가는 멜로디보다 리듬이 중심이기 때문에 나이 드신 분 들이나 곡을 처음 대하는 사람들이 따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곡들이 빠르고 리듬이 변화무쌍하여 따라 부르기가 용이치 않습니다. 아마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춰 작곡이 되나 봅니다. 교회예배가 생동감 있고 활기찬 모습이 있기는 하나 정작 앉아서 예배드리는 중년이상의 신도들은 그 분위기에 맞춘다는 것이 고역이기도 합니다.
-중략- 그리움이라고 해서 꼭 옛것을 선호하자는 뜻은 아니지요. 좀 더 예배의 정체성을 찾자는 의미일겁니다. 예배의 주인은 주 하나님이지 우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주제넘게 몇 자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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