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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찬송가

변명혜 박사 (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시절에는 요즈음 복음성가라고 부르는 그런 찬양곡은 거의 들어보기 어려웠다. 대학교 1, 2학년 때 “우물가의 여인처럼”이나 “새롭게 하소서” 이런 곡들을 학교 기독교 학생회 모임 때 부른 기억은 있지만 교회에서 어른들의 예배 때 복음성가를 부르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이후인 것 같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찬양곡에서 복음성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고 요즈음은 대부분 교회에서 찬양팀들이 앞에 나와 인도하는 곡들은 거의 다 복음성가이다. 큰 교회의 몇 부로 나뉘어 드리는 예배 중 전통적인 예배, 혹은 소수의 전통적인 교회를 제외하고는 찬송가에 있는 곡들을 주일예배 때 부르는 교회는 드문 것 같다.

음악의 다양한 쟝르에 대한 사람들의 기호가 다르듯이 크리스천들의 찬양곡에 대한 기호가 다를 수 있다. 또한 예배의 본질은 변할 수 없지만 예배의 형태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복음성가이든 찬송가이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마음으로 드려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나는 찬송가 속에 있는 보물 같은 곡들이 점점 잊혀져가는 것이 아쉽다. 복음성가 중에도 기독교의 진리를 담은 귀한 곡들이 많이 있지만 어떤 곡들은 우리 아들 말처럼 세상의 사랑 노래에서 “baby”를 “주님”으로만 바꾼 것 같은 그런 곡들도 있다. 그래서 그 곡조와 가사가 유행가와 별로 구분이 안되는 것 같은 곡들이다.

요즈음에는 찬송가에 있는 곡을 부를 때면 제목 밑에 작은 글씨로 써 있는 그 주제에 연결된 성경구절을 찾아보기도 한다. 그 찬송을 작사한 사람이 어느 성경구절에서 은혜를 받고 그 곡을 쓴 것인지 알 수도 있고 때로는 연결된 성경구절에서 은혜를 받기도 한다. 우리 각자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찬송가들이 있을 것 같다. 대학시절 헌신의 의미도 잘 모른 채 십자가의 은혜가 너무 크게 다가와서 주님께 삶을 드린다고 고백하면서 드렸던 “나 주의 도움 받고자”, 평생을 함께 하시기를 바라면서 결혼식 때 불렀던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이런 곡들을 다시 부르면 지금 내가 주님과 어떤 교제를 나누고 있는지 새롭게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 눈물 없이는 부를 수 없었던 곡들이 어느새 담담해지면 혹시 주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진 것은 아닌지 돌아도 본다.

어느 카톨릭 신부님이 말한 것처럼 개신교는 긍정적이고 복음성가도 밝고 힘차서 성도들이 명랑하고 기쁘게 신앙생활 하는 것이라는 말이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나는 복음성가보다는 찬송가 가사에 더 은혜를 받게 되는 것은 내가 새 문화에 적응이 늦은 구식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우리 다음 세대가 되면 교회에서 찬송가는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서운해진다. 문화가 변해도 변함이 없는 진리를 담은 귀한 곡들을 더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으로 돌려 드려야겠다. 이메일: lpyun@ap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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