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매일가정예배(03/20/2023-3/25/2023)

김덕수 목사

생터성경사역원 LA 지부장
하늘소망교회 담임

월: 맡겨진 구간 (왕상 19:1~21) 찬 347장

엘리야는 갈멜산 전투에서 승리한 후, 이세벨의 편지를 받고 낙심하여 도망을 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죽기를 구합니다. 엘리야의 말속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승리한 것이 맞습니까?’라는 푸념이 담겨 있습니다. 이 푸념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하사엘, 예후에게 기름을 붓고, 엘리사를 네 제사로 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나라는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고, 너는 정해진 너의 구간만 달리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달리실 구간’과 ‘자신이 달려야 할 구간’을 혼돈했습니다. 우리는 그저 맡겨주신 사명과 그 사명의 구간만 열심히 달리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달리지 않아도 되는 ‘하나님의 구간’까지 걱정하지 맙시다.

 

화: 마사지가 아닌 메시지를 기뻐합시다 (왕상 20:26~43) 찬 459장

아합은 길르앗 라못을 빼앗기 위해서 전쟁하기에 앞서서 예언자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사실, 예언자들에게 묻기 전에 아합이 듣고 싶어 했던 말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예언자들로부터 본인이 원하는 ‘마사지’를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미가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메시지’가 전달되었을 때 아합은 싫어합니다(왕상 22:1~28). 결국 하나님의 메시지를 거부하고, 본인이 원하는 마사지를 기뻐했던 아합은 그 전쟁터에서 전사합니다. 마사지를 받을 때는 잠시 기분이 좋지만, 결국 사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을 때는 아프지만, 그 메시지에 순종하면 생명입니다. 마사지를 기뻐하지 말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기뻐합시다.

 

수: 잔꾀가 아닌 거룩으로 삽시다 (왕상 22:29~38) 찬 436장

인간의 꾀로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수 없습니다. 아합은 여호사밧과 연합을 이루어 길르앗 라못을 치러 갔습니다. 이때 아합은 꾀를 내어 자신은 일반 병사처럼 변장하고, 여호사밧에게 왕복을 입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아합은 어느 병사가 쏜 화살에 맞았습니다. 갑옷 사이에 아주 적게 벌어진 틈으로 화살이 정확히 꽂혔고, 아합은 결국 전사했습니다. 사람을 속일 수는 있지만,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잔꾀로 살지 말고, 거룩으로 삽시다.

 

목: 고난 중에 드러나는 믿음의 진가 (왕하 1:2~17) 찬 456장

고난 중에 믿음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아무 일 없을 때는 신자들의 믿음이 어떠한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이나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그의 믿음이 큰지 작은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아하시야는 난간에서 떨어져서 크게 다쳤습니다. 이때 그는 바알세붑에게 사절단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오히려 바알세붑에게 의지했습니다. 큰 파도를 만났을 때 선장의 노련함이 드러나듯, 인생의 큰 파도를 만났을 때 믿음의 분량이 드러납니다. 모든 순간에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금: 세상 풍조 멸시하고 하나님을 따릅시다 (왕하 2:19~25) 찬 369장

물의 근원이 오염되어 있고, 아이들은 하나님의 사람을 조롱하고 놀립니다(왕하 2:19~25). 이 모습은 당시 영적인 시대상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영성을 흘려보내는 왕(아하시야)부터 타락했습니다. 그러니 온 이스라엘 사람들의 영적인 모습도 짐작이 됩니다. 어른들의 모습을 따라서 배우는 아이들도 하나님의 사람을 조롱합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풍조를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풍조가 우리를 멸시합니다. 우리도 세상 풍조를 멸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엘리야와 엘리사처럼 하나님을 경외며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을 따라야 합니다. 

 

토: 우리는 평안합니다 (왕하 4:8~37) 찬 413장

엘리사가 ‘수넴’이라는 동네를 갈 때마다 엘리사를 극진히 대접했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자녀가 없음을 알고, “내년 이맘때쯤에는 아들이 생길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예언대로 그 여인과 늙은 남편 사이에 아들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아들이 죽었습니다. 수넴 여인은 갈멜산에 있는 엘리사를 찾아갔고, 엘리사는 그의 종 게하시에게 자신의 지팡이를 주면서 “급히 죽은 아이에게 달려가서 이 지팡이를 아이의 얼굴에 놓으라.”고 합니다. 엘리사가 죽은 아이에게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죽은 아이에게 자기 몸을 포개어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서서히 체온이 올라가고 재채기를 일곱 번 한 후에 살아났습니다.

아이를 잃은 수넴 여인은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엘리사는 게하시를 통하여 그녀와 그녀의 남편, 아이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이때 수넴 여인의 대답은 “평안하다”였습니다(왕하 4:26). 아이를 잃은 이 여인의 심경은 비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평안’이었습니다. 엘리사는 그녀의 아들을 살렸고, 결국 수넴 여인은 자신의 고백대로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수넴 여인은 ‘상황의 어떠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는 믿음’ 때문에 평안을 누린 것입니다. 상황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들은 ‘늘 평안’합니다.

 

03.18.2023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