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경건: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삶에 관한 글들
II. 칼빈의 영적인 순례
2. 다윗과 동일시
칼빈은 자신이 시편 주석을 쓰면서 주께서 자신을 단련시키기 위해 주신 고통을 겪으면서 오히려 그의 경험에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음을 고백한다. 시편에서 모을 수 있는 모든 교훈들을 어떻게 생활에 적용하고 실천에 옮길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그리고 시편 기자의 의도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칼빈이 얻었던 큰 유익이다.
다윗은 시편 기자들 중에서도 으뜸이 되는 인물이다. 칼빈은 다윗이 겪었던 것과 유사한 고난을 교회 안에서 겪어 보았기 때문에 그는 다윗의 슬픔을 더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자신은 비록 다윗을 따르기에는 너무 부족하고 그와 동등한 자가 될 수 없지만, 다윗이 갖추고 있는 온갖 덕목들을 마지못해, 끌려가듯이 갈망하면서도, 다윗의 결점에는 아주 밀착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였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칼빈이 그와 공유하는 것이 있다면, 그 자신이 그것들을 검토하면서 비교해보는 것으로 만족해한다. 그러므로 인내, 열정, 정직과 같은 다윗의 신앙의 증거들을 읽을 때, 칼빈은 종종 그에게 접근하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슬픔과 탄식에 끌려 들어간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다윗을 통하여 자신의 소명의 출발점과 자신의 사역의 지속적인 과정을 반추하게 된 것이 매우 유익한 일임을 고백한다. 이런 반추의 과정을 통해 이 지극히 탁월한 왕이며, 선지자인 다윗이 겪어야 하고 또 참아내야 했던 모든 일들을 사실상 하나님께서 그가 따라야 할 본보기로 그에게 주신 것임을 아주 명확하게 깨닫는다.
3. 칼빈 자신의 교육과 훈련을 인도하신 하나님
칼빈은 자신의 상태가 다윗보다 더 보잘것없고 비천했었다고 고백한다. 하나님께서 양을 치던 목동 다윗을 들어서 왕이 되게 하셨듯이(삼상 16:11 이하) 하나님께서는 미천하고 보잘것없는 위치에 있던 자신을 들어 목사와 복음 설교자라는 지극히 고귀한 위치를 맡기셨다는 것이다.
칼빈의 어린 시절부터 그의 아버지는 자신에게 신학수업을 시키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법학이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학문임을 안 그의 아버지는 마음을 바꾸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그는 철학 공부를 보류하고 법학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여 법학연구에 몰두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은밀한 섭리의 손길을 펴셔서 마침내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꾸셨다고 말한다.
4. 칼빈의 방향전환
처음에 칼빈도 미신으로 가득 찬 가톨릭교회에 완고할 만큼 헌신해 있었기 때문에 그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온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음을 말한다. 하나님은 그를 갑작스럽게 회심시키셔서 종교문제에 있어서 나이에 걸맞지 않을 만큼 완고한 그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셨으며 쉽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성격으로 변화시켜 주셨음을 말한다. 그래서 진정한 경건의 맛과 지식을 조금 알고 난 뒤 그는 갑작스럽게 그의 경건을 향상시켜야하겠다는 열정에 불타게 되었음을 말한다. 그렇지만 그가 다른 공부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열의가 많이 식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아 참된 교리를 배우려는 많은 사람들이 신출내기에 지나지 않은 자신에게 몰려오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당시의 순수한 신앙을 접하고자 원했던 오를레앙의 모든 시민들은 칼빈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의 학문과 열정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칼빈 자신은 세련되지 못하고 비사교적인 성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을 갈망했다. 그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을 수 있는 방법과 은신처를 찾기 시작했다. 간단히 말해서 그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사는 생활을 소중하게 여겼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여러 가지 변화를 주셔서 어느 한 순간도, 어느 곳에서도 조용히 있지 못하도록 몰아가셨음을 고백한다.
주님께서는 그의 천성과는 정반대되는 방향으로 그를 이끄셔서 그는 항상 빛에 드러나 있어야만 했다. 자신의 조국 프랑스를 떠난 그는 독일로 향하면서 어느 알려지지 않은 시골구석에서 있으면서 히브리어 연구에 몰두 했었다. 드디어 그가 그렇게 원하던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부풀었었다고 말한다.
5. 바젤에서의 체류하며 『기독교강요』를 쓰게 된 동기
칼빈 자신이 바젤에 은신하여 거의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있는 동안 프랑스에서는 많은 신실하고 거룩한 신자들이 끔찍한 화형을 당했다. 그 소식이 해외로 널리 알려지자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심각한 반발을 보여 그와 같은 학정의 주인공들에 대해 증오를 품었다.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거짓으로 가득 찬 소책자들이 배포되었다. 이 책자들은 그렇게 잔인한 취급을 받은 자들은 오직 재세례파들과 선동적인 사람들만이 그런 잔인한 취급을 받았다는 변명을 늘여 놓기에 급급했다. 그들의 환상적으로 꾸며낸 이야기와 잘못된 견해를 피력함으로서 종교뿐만 아니라, 정치 질서 전체를 전복시키려고 의도했다는 것이다.
그때 칼빈 자신이 그 책자들을 최선을 다해 반대하지 않았더라면, 그 자신은 하나님께 게으르고 불충한 자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했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가 『기독교강요』를 쓰게 된 동기도 여기에 있었다. 『기독교강요』의 첫 번째 목적은 주님의 면전에서 고귀한 죽음을 죽은 그의 형제들에게 가해진 사악한 비난들을 공격하고 그들에 대한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둘째, 그것과 똑같은 잔인한 행위들이 그 이후에도 많은 가련한 사람들에게 가해질 수 있기 때문에 외국에 그 실상을 알려 그들을 동정하고 그들에게 관심을 보여줄 수 있게 하기 위해 펜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 칼빈은 지금과 같은 정성들인 완전한 책의 형태로 글을 발표하지는 않았다. 칼빈 자신의 글은 다만 주요 문제들을 요약의 형태로 게재한 작은 소책자를 펴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사악하고 신실하지 못한 아첨꾼들이 포악하게 중상모략하고 있는 신앙인들의 신앙이 과연 어떤 것인가를 알려주려는 목적 이외에는 아무런 다른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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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