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 텍스트에 의한 레퀴엠과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Ein deutsches Requiem)을 중심으로” V
1) 신학적 접근
브람스의 레퀴엠이 특별한 것은 그가 철저한 루터란 신학적 배경을 기초로 해서 12년의 노력 끝에 창조된 작품이기에 더 각별하게 다가오게 된다. 그는 바흐와 마찬가지로 루터란 신자로서 루터 바이블과 신학에 많이 심취되어 있던 음악가였다. 그는 신, 구약 성경과 루터 신학을 비롯한 당대 다양한 신학 서적에 열중하였는데, 그의 개인 서재에 소장된 종교 서적들과 그 지면에 표시된 사항들을 통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전반적으로 그가 간직하고 있던 신앙의 기초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 앞에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이 세상에서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가며 고난 속에도 진정한 복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야 함을 강조하는 데 있다. 그것은 그가 루터의 핵심 신학 사상인 십자가 신학(Theology of Cross)을 간직하고 있었음을, 이 곡의 가사 전체 구성을 보며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루터의 십자가 신학에서의 중요한 배경은 “영적 시련”, 혹은 “고통”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 “Anfechtung”인데, 브람스의 다수 종교음악 및 성악 작품의 주제 또한 이 개념에 부합한다.
브람스는 작곡가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신앙 철학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도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을 바탕으로 세워갔다. 루터의 신학을 십자가 신학으로 말하게 되는데 이는 루터가 가지고 형성되었던 영광 신학(Theology of Grory)에 대비되는 것이다.
루터 연구가 송인서 교수는 영광 신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칭의의 의’ 위에 ‘성화의 의를 쌓아 올려서 ‘하나의 의’를 하나님과 내가 함께 이루어 가는 방식, 그래서 종국에는 하나님과 내가 영광을 나눠 갖는 방식이 중세 교회의 구원론이요, 영광 신학이다.” 영광 신학은 인간의 공로에 의지해서 하나님 앞에 의로워질 수 있다는 것으로 중세 스콜라 철학에 기반을 둔 인간의 타락을 왜곡시켜 그릇된 하나님의 지식을 심어주었다고 믿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광신학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위해 고행과 참회라는 행위 및 일련의 의식 절차를 중시하고 이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하나님과의 연합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공로 사상을 바탕으로 한 기존 교회의 경향을 가리킨다.
이에 반해 십자가 신학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라는 이신칭의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시작되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볼 때, 그리고 이와 같은 고난을 자신의 삶에서 주어진 시련을 통해 상징적으로 경험할 때 하나님과 교제하며 연합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브람스는 바로 이러한 십자가 신학이 주 골격이 되어 고난과 고통 속에 나타나는 역설의 축복을 중심으로 텍스트를 전개해 간 것이다.
2) 텍스트 및 작곡 구조
총 7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전통적인 고전 양식을 사랑한 브람스답게 다양한 대칭 구조(Symmetrical Form)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곡 구조 도표)
위의 작곡 구조 도표를 보면 우선 이 작품은 4악장에 표현된 천상의 아름다움(Wohnungen)을 중심으로 대칭이 이루어지는데 4악장에서 각각 먼 위치에 있는 1악장과 7악장은 각각 마태복음의 산상 수훈 중 팔복과 요한계시록에서 가져온 성경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각각 '애통하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와 '죽은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와 같이 텍스트가 '복'(Selig)이라는 단어로 1악장과 7악장은 그 텍스트뿐만 아니라 음악 동기까지 공유하며 각각 시작과 끝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효과를 전해주고 있다
이어 2악장과 6악장은 가장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라는 내용을 가진 베드로전서를 인용한 2악장은 삶에 대한 찰나의 본질을 고찰하며,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의 내용을 담고있고, 히브리서를 인용한 6악장에서는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라는 고린도전서를 함께 인용하며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새로운 부활을 꿈꿀 수 있는 영원한 안식을 약속하며 서로 대칭을 이루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마지막 대칭인 3악장과 5악장은 위로(Trösten) 의 주제를 갖고 각각 바리톤과 소프라노의 시작으로 전개된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라는 내용을 가진 시편을 인용한 3악장은 여호와를 향해 끊임없는 삶의 질문을 던지며 답을 구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아냈다면, 5악장은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이라는 내용이 담긴 이사야서를 인용하여 하나님이 사람을 향해 위로하는 모습을 담아내어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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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