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의 정체성 이해: 세 중심축의 상호관계를 중심으로 (3)

WCC의 정체성 이해: 세 중심축의 상호관계를 중심으로 (3)

조진모 박사 합동신학대학원 역사신학교수

2. WCC 두 중심축의 만남: 창립총회(1948) 두 중심축의 만남

WCC의 시작은 독립적으로 활동하던 ‘신앙과 직제’와 ‘삶과 봉사’가 함께 만나 이루어졌다. 그들은 1937년 옥스퍼드와 에딘버러에서 각각 대회를 열어 WCC를 구성하기로 결의한 후, 1938년 네덜란드 유트레히트에서 WCC 헌장을 작성했다. 결국 그들은 1948년에 합류하여 암스텔담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그들의 연합이 이루어지기 전에 작성된 규정집에 기록된 WCC가 주력할 7가지 기능은 다음과 같다.

1) ‘신앙과 직제’ 그리고 ‘삶과 봉사’의 세계운동을 실행한다 2)교회들의 통일된 행동을 촉진한다 3)연구에 대한 협조를 도모한다 4)모든 회원교회 에큐메니칼 의식을 증진시킨다 5)전 세계 교회의 선교와 전도 사역을 돕는다 6)전세계의 교단협회와 다른 에큐메니칼 조직과의 관계를 확립하고 보존한다 7)전도에 관한 교회들의 의무를 돕는다.

교회의 연합과 일치라는 비전을 가지고 출발한 WCC는 수많은 세계교회 지도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성격이 다른 두 중심축의 만남은 향후 WCC 내의 갈등을 불러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교회의 일치를 이루는 신학적 기준과 구체적 방법에 대하여 현저한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비록 ‘신앙과 직제’와 ‘삶과 봉사’ 양 기구는 교회공동체의 중요성에 공감했기에 연합하여 WCC의 중심축이 됐지만 서로간의 일치하지 않는 점들을 감수하며 불편한 동행을 지속해야 했다.

‘신앙과 직제’

WCC의 한 중심축을 이루는 기구인 ‘신앙과 직제’는 줄곧 ‘하나님이 주신 하나의 교회’(a God-given unity)에 대한 주제로 신학적 논의에 치중했다. 자체 대회와 WCC 총회에서 활발하게 토의되었던 내용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1)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일치되기를 원하신다 2)교회의 분열은 반드시 중단되어야 한다 3)교회의 일치를 위해 인내하며 노력해야 한다.

1927년 로잔에서 제1차 ‘신앙과 직제’ 세계대회를 시작하면서 의장인 뉴욕성공회의 찰스 H. 브렌트 추기경은 요한복음 17:20-23절을 본문으로 ‘연합으로의 부르심’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그는 연합으로의 부르심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못 박았다. 인간은 교회의 연합에 대한 결정권이 없으며, 오로지 하나의 교회를 이루는 모습을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드시 순종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 설교는 ‘신앙과 직제’가 추구하는 교회관을 널리 공포하는 계기가 됐다. 나아가서 본 회의는 교회의 일치를 향한 순종과 각오의 뜻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초기 ‘신앙과 직제’의 교회론은 칼 바르트의 영향을 받아 기독론이 그 중심이 됐다. 그러나 그들은 1954년 에반스톤에서 열린 WCC 제2차 총회 때부터 교회의 ‘가시적 일치’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 모임에서 발표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하나됨과 교회들 간의 분열’’(Our Oneness in Christ and Our Disunity as Churches)은 WCC의 교회론을 매우 잘 보여주는 문서이다. 이 문서는 분열의 극복을 통해서 ‘비가시적 교회’를 주장하는 전통적 교회론을 ‘가시적 완성’에 적용시킨다는 내용이 특별히 강조됐다.

그들이 주장하는 ‘가시적 교회’ 이론에 의하면 교회의 분열은 회개를 필요로 하는 악한 행위이다. 따라서 교회의 연합은 다름 아닌 참된 신앙의 증거이다. 그 신앙은 반드시 행동의 열매로 드러나야 한다. 결국 에큐메니칼 교회론은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하여 교회가 지닌 교리 해석과 변증의 의무를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삶과 봉사’

WCC의 다른 한 중심축을 이루는 기구인 ‘삶과 봉사’는 사회, 국가, 그리고 세상의 문제와 관련된 주제를 두고 논의했다. ‘신앙과 직제’에 비하여 그들의 정체성은 서서히 구축됐다. 교회의 사회책임은 공감했지만 그들 가운데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서 일치된 인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1925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첫 모임에서 38개국에서 모인 대표들은 사회생활에서의 종교의 역할과 사회문제에 대한 기독교적 평가의 기준을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신앙과 직제’가 주력하는 신학적 논의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대신 교회에게 주어진 실천적인 문제에 보다 집중하려 했다. 그러나 그들이 해결해야 했던 다양한 질문의 핵심은 결국 신학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삶과 봉사’는 1937년에 영국 옥스퍼드에서 두 번째로 대회를 치루면서 새로운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이 모임의 주제는 ‘교회, 공동사회 그리고 국가’(Church, Community and State)였다. 이 모임에서 가장 활발하게 논의된 내용은 그 당시 세속화의 현상과 기독교 신앙의 관계였다. 5개의 소위원회로 나뉘어져 토론한 주제들- 1)교회와 공동사회 2)교회와 국가 3)경제적 질서 4)교육 5)전 인류의 세계-을 통하여 그들의 관심사를 쉽게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논의들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삶과 봉사’가 사회, 정치, 경제의 문제는 원래 종교적이라고 전제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교회가 사회적 증언의 책임을 완수해야 하는 것을 매우 당연한 일로서 받아드렸다.

결국 제1차와 제2차 WCC 총회를 거치면서 ‘삶과 봉사’의 강조점은 ‘신앙과 직제’의 교회론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갔다. 제1차 총회에서는 국가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무질서와 세계의 평화에 대해서 교회가 지닌 책임을 통감했다. 그들은 교회에게 주어진 구체적인 사명을 ‘책임사회’를 이룩해 나가는 것이라는 맥락으로 이해했는데, 이는 제3분과 보고서인 ‘교회와 사회의 무질서’에 잘 나타나 있다. 그 중 한 부분을 소개하자.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로서 하나님과 그의 이웃에 대해 책임을 지는 존재로서 창조되었고 또 부르심을 받았다. 인간으로부터 책임있게 행동하는 기능성을 박탈하는 국가와 사회 내의 어떠한 경향도 인간을 위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당신의 주권사역을 거부하는 일이다. 책임있는 사회란 정의와 공공질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는 사람들의 자유가 되는 사회요, 정치적 권위 혹은 경제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의 사용에 대해 하나님과 그 사용에 의해 복지가 영향을 받는 사람들 앞에서 책임을 지는 사회를 말한다.”

제2차 WCC 총회에서도 역시 ‘책임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됐다. 역시 한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책임사회는 우리가 선택해야 할 어떤 사회적 혹은 정치적 체제가 아니라 그것에 의해 우리가 모든 기성 사회질서를 판단하는 기준이며, 동시에 우리가 어떤 특정한 사회질서를 선택하게 될 때 우리를 인도하는 기준이다. 기독교인들은 책임있게 살도록, 즉 어떤 사회에서도 심지어 가장 혐오스러운 사회구조 속에서조차도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원행동에 응답하며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다.”

‘삶과 봉사’는 제2차 WCC 총회에서 국제문제의 영역을 한층 확대하여 다루었다. 여태껏 WCC를 주도했던 서구교회의 관점에서 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의 국가에서 발생되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문제를 진지하게 토의했다. 나아가서 인종문제와 국가분쟁의 문제가 중요한 주제로 선택됐다. 외관상으로는 ‘삶과 봉사’의 관심이 신학적인 이론보다 실천적인 면에 치중되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그들은 현대신학을 향해 문을 열어주었다. 그 결과 그들은 초기부터 ‘사회복음’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2차 총회 3분과 보고서 중 ‘산업발전’에 관한 내용 가운데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되고 있는 나라들, 예를 들어서 브라질, 인도, 일본, 멕시코, 남아프리카에서는 흔히 그러한 산업화에 수반되는 비인간화하는 요소들로부터 새로운 산업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보호하는 데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두 중심축 사이의 갈등

‘신앙과 직제’와 ‘삶과 봉사’가 함께 WCC의 중심축을 이루었지만 동시에 그들 사이에도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다. 그들이 추구하던 목적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앙과 직제’가 교회의 정체성 연구에 관심을 집중했다면 ‘삶과 봉사’는 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인류공동체의 역사문제에 관심을 쏟았다. 1948년 두 운동이 하나로 합류되기까지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영국의 글루체스터의 감독이었던 A. C. 헤드람 등이 연합에 제동을 걸었던 것이다. 그들의 반대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신앙과 직제’가 ‘삶과 봉사’와 연합한 후에 반드시 정치적 문제에 연루될 것이라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헤들람은 또 다른 강력한 반대자였던 베를린의 헥켈 주교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당신이 예견했던 대로 우리는 세계교회협의회(의 설립)를 막는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세계교회협의회 헌법에 신앙과 직제의 권리가 보존되도록 확보하는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많은 사람들이 전반적인 일에 대해 염려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영리하여 우리가 상대할 수 없었습니다.”

반대자들에도 불구하고 투표를 실시한 결과 두 운동의 연합이 가결됐다. WCC의 탄생이 성사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삶과 봉사’의 진보적 정체성이 점점 분명해지면서 ‘신앙과 직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봉사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교회론을 무시한 채 교회일치운동을 전개함으로써, 개인구원이 간과된 사회구원을 앞세우는 ‘삶과 봉사’의 에큐메니칼 윤리를 무작정 수용할 수 없었다.

1954년 에반스톤 총회의 ‘신앙과 직제’ 문서는 “신약성경은 교회의 일치를 사회적인 것이 아니라...”라고 꼬집으며 ‘삶과 봉사’를 향한 일침을 놓기도 하였다. 이후 두 기구는 에큐메니칼 정신에 근거한 교회의 연합이란 근본적인 일치점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한 동거의 대상이 되어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