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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에임스(William Ames)의 “신학의 정수(A Marrow of Theology)” (6)

3. 그의 영향력

 

1) 뉴잉글랜드에서의 영향

‘신학의 정수’는 뉴잉글랜드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다. 뉴잉글랜드에서 이 책은 일반적으로 그 당시의 칼빈주의 신학을 가장 잘 정리해놓은 책으로 간주되었다. 이 책은 프랜시스 투레틴(Francis Turretin, 1623-1687)의 ‘변증신학 강요’가 등장한 18세기까지 하버드와 에일 대학의 필독서였다. 토머스 후커(Thomas Hooker 1586-1647)와 잉크리스 메더(Increase Mather 1639-1723)는 ‘신학의 정수’를 건전한 신학자를 만드는데 성경 다음으로 중요한 책으로 추천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이 책 복사본에 엄청난 난외주를 달아 놓았고, 에임스에게 힘입은 내용에 대해 감사했다.

뉴잉글랜드에 미친 에임스의 영향은 이 책뿐 아니라, 다른 작품들을 통해서도 크게 드러났다. 에임스의 교회론 작품도 뉴잉글랜드에서 비분리주의 회중교회 운동 곧 매사추세츠 베이 식민지(Massachusetts Bay Colony)의 회중교회들이 영국교회와 분리되는 것보다 영국교회의 개혁을 추구하는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운동의 기초를 놓았다. 1648년 케임브리지 강령(Cambridge Platform, 미국 회중교회의 헌장)은 특히 에임스의 사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또한 에임스의 청교도 라무스주의가 크게 수용되어 뉴잉글랜드 청교도운동의 특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존 코튼(John Cotton 1585-1652), 잉크리스 매더(Increase Mather 1639-1721), 코튼 매더(Cotton Mather 1663-1728)와 같은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은 칼빈을 인용하는 것보다 더 빈번하게 에임스를 인용하였다. 잉크리스 매더는 ‘현학적인 지혜와 신앙적으로 따뜻한 마음을 동시에 구비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인데, 에임스가 바로 그 두 가지를 구비하였다’고 말했다. 코튼 매더는 에임스를 ‘심원하고 엄숙하고 명석하고 확고부동하며, 동시에 천사 같은 박사’라고 지칭하였다.

 

2) 네덜란드에서의 영향

그의 ‘신학의 정수’는 네덜란드에서 두 번째로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히스베르투스 뵈티우스(Gisbertus Voetius 1589-1676, 원칙에 충실한 삶으로서의 경건을 주장한 화란의 칼빈주의자)의 화란 위트레흐트 대학(Utrecht University) 동료 교수인 마티아스 네데누스(Matthias Nethenus 1618-1686)에 따르면, ‘영국에서 실천신학에 대한 연구가 놀랍게 활성화되고, 빌렘 댈링크(Villem Teelinck 1579-1629)와 에임스 시대로부터 네덜란드의 교회와 학교들의 관심사였던, 실천신학에 대한 연구가 획기적으로 번성했다’고 말했다. 

베델대학의 교회사 교수 카이트 스프룽거(Keith L. Sprunger)는 에임스의 공헌에 대해 “지성적이었지만 충분히 적용되지 못하였고, 네덜란드 사람들을 청교도로 만들기’ 위해 노력함으로 상당한 성공을 거두어 그들의 청교도 경건을 촉진시켰다”고 평가한다(Harvard Theological Review 59, 1966). 

에임스는 뵈티우스 뿐만 아니라, 피터 반 마스트리히트(Petrus van Mastricht, 1639-1706, 조나단 에드워즈가 그의 신학을 유용성 면에서 투레틴의 책을 크게 능가한다고 평가한 네덜란드의 경건주의자)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즉 마스티리히트가 그의 책 ‘이론과 실천신학’을 통하여 신학적 주제를 주석적, 교리적, 변증적, 실천적 4단계로 연구하고 가르칠 때, 그는 특히 에임스의 언약적 사고와 의지중심주의(Voluntarism, 主意主義)에 크게 끌렸던 것이다. 에임스의 거의 모든 책은 네덜란드에서 출판되었고, 그 중 많은 책이 국제학술단체를 위해 라틴어로 출간되었다. 그의 신학과 의지중심주의가 네덜란드에서 그의 회중교회 입장보다 더 크게 영향을 미쳤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에임스는 퍼킨스의 가장 유력한 제자이자 진정한 상속자로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조국인 영국에서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에임스의 주요 작품들은 광범위하게 보급되었고, 17세기 전반에 걸쳐 영국의 칼빈주의 신학에 영향을 미쳤다. 에임스의 책은 특히 청교도들에게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토마스 굿윈(Thomas Goodwin 1600-1680)은 ‘에임스 박사의 ’신학의 정수‘를 ’성경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좋은 책‘으로 생각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결어: 은혜와 순종

 

에임스는 개혁파 정통주의의 경험적인 기세가 수그러들기 시작했을 때, 이 사상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 쓰임 받은 도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개혁파 사상과 생명력을 다시 일으키는 역할을 담당했다. 언약에 근거한 순종은 기독교적 양식에 속한 행동주의다. 이런 양식의 행동주의는 단순한 의지중심주의(Voluntarism, 主意主義)가 아니다. 물론 에임스의 강조점은 의지에 있었다. ‘참되고 적절한 신학의 주제는 의지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충실한 아들로서 에임스는 계속 ‘신앙의 최종적 의존은 성령의 작용과 내적인 설득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그의 의지에 대한 강조는 신학적으로 신앙과 순종의 조합이라는 맥락에서 조명되어야 한다. 

 

‘하나님, 교회, 세상에 대한 청교도사상 요점’분명하고 체계적으로 선언

신앙과 실천 사이 적절한 균형...이 열쇠는 순종을 언약 안에 두는데 있어

 

그는 프라네커 대학의 동료 교수들과 철학 및 신학 논쟁 속에서 이런 사상을 정립했고, 그러기에 이 사상은 17세기 네덜란드의 정체된 교회에 대한 생명력 있는 경건을 다시 심어주기 위한 그의 노력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신앙이든 실천이든 자체만으로는 전혀 충분하지 못하다. 신앙이 실천과 분리되면 ‘냉랭한 정통주의’로 나아가고, 의지와 선행만을 따로 강조하게 되면 알미니안주의로 빠진다. 이에 그는 신앙과 실천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위하여 크게 애썼다. 이 균형의 열쇠는 순종을 언약 안에 두는데 있었다.

그는 이 언약 안에서의 순종을 자신의 언약신학체계에 따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으로 규정하였다. 이 근거가 없으면 에임스의 체계는 그냥 무너지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의지중심주의 자체는 성경의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칭의가 행위와 순종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을 통해 주어진다고 해도, 신자가 순종으로 반응하는 것은 진정한 언약적인 삶과 기독교 자체에 대해 절대로 중요하다는 성경적 진리를 확증한 것이다.

그는 굳건하게 은혜언약의 일방적이고 무조건적 성격을 고수하면서도, 동시에 언약에 속한 자녀의 책임을 강조했다. 신앙은 행함으로 알려지기 때문에, 순종은 언약에 속한 자녀의 경험적 삶의 기초를 이룬다. 이 순종은 참된 경건 곧 교리와 삶의 결합점이요, 바른 교리와 바른 실천의 교차점이다. 그는 자신의 언약신학의 체계를 통해 은혜와 순종 간에 조화가 있고 모순은 없다는 점을 입증했다. 그에게 있어 이런 순종의 공식적인 구조는 십계명의 방향과 내용을 통해 세워진 그리스도인의 삶이었다.

주권적인 은혜와 값없이 주어진 신앙 및 책임 있는 순종을 적절하게 결합시키는 열쇠는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발견되어진다. 에임스는 은혜언약에 따라 신앙과 순종, 그리스도의 복음과 십계명, 정통적 신학과 정통적 실천의 조화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한 청교도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에임스에 대해 평가할 때, 그의 의지에 대한 설명을 무시하고 의지중심주의(主意主義, Voluntarism)로만 간주하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그의 전체 신학 곧 마음의 종교와 겸손한 순종을 강조하는 개혁파 신학에 비추어 그의 각각의 가르침을 해석해야 할 것이다.

‘신학의 정수’는 다른 어떤 청교도의 책보다 ‘하나님, 교회 그리고 세상에 대한 청교도 사상의 요점’을 아주 분명하고 체계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이 책은 언약과 성화와 실천에 대한 청교도의 관점을 이해하는데 본질적인 책으로 모든 성도들과 신학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받아야 할 책이다. 이는 오늘날도 여전히 참조할 가치가 있기 때문에 모든 교회와 목사와 성도들의 서재에서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hyojungyoo2@yahoo.com

03.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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