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은 자신들의 눈앞에서 벌어진 그 기가 막힌 사건을 결코 잊을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도 따랐고 의지했던 그 분의 그 비참한 죽음을 말입니다!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각자 흩어진 채, 제 갈 길을 갔던 것이지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너무나 기가 막힌 상황에서 다들 놀라 눈물을 흘릴 뿐, 더 이상 주님을 바라볼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 엄청난 상황에서 들려오는 또 하나의 소식이 있었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나타나셨다는 주님에 관한 소식을 듣자... 다들 놀라는 가운데, 두 가지의 반응이 사람들에게서 나왔지요. 한 부류의 사람들은 ‘말도 안된다!’는 의심의 반응이었고,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은 놀라면서도 경배하는 사람들이었지요. 그야말로 의심과 경배가 뒤섞인 상황이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불신의 사람들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를 않는 반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뭐든지 믿으려는 모습으로, ‘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는 경향이 있기도 하지요.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경험이나 이성적 판단을 넘어서서, 오직 성경의 말씀만을 믿으며 따라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는 순간에도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하물며 오늘날 기독교 신앙에 대한 불신이 난무한 시대에.... 과연 우리 주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 것이며, 또한 장차 주 안에서 죽은 성도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는지... 우리들의 신앙을 점검하는 부활의 증인들이 되셔야 할 줄 압니다!
이 부활의 신앙이야말로 올바른 성경중심의 신앙을 위한 시금석이요, 우리 신앙의 사람들에게는 이 부활의 신앙이야말로 이 어려운 고난의 시대를 이겨내는 든든한 믿음의 좌표가 될 압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부활의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님이라고 할 수 없고, 믿음이 없이는 결코 부활신앙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우리 성도는 이 혼란한 시대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이 세상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나는 세상’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나아가야 하되, 내세를 부정하면서 현세만을 즐기려는 현대적인 삶의 방식을 멀리하고 이 시대에서의 소명의식과 함께 내세를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부활신앙 의 주인공이신 우리 주님께서 이 마지막 시대에 우리 성도들에게 요청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 부활의 신앙을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신앙의 자세는 무엇이어야 할까요?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말씀을 선포하실 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신 바를 따라서 다음과 같은 점을 인정하면서 따라야 할 것입니다.
1.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지니신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의 주님이심’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유대 땅을 다니시면서 말씀을 하실 때, 당시의 지도자들의 반응,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당신은 누구냐?’ 물음을 받으셨을 때, 주님은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라는 표현입니다. 또 ‘너는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라는 질문 앞에서, 예수의 권세는 아버지께서 주신 권세 ‘나와 아버지는 하나’ ‘나는 아버지께로 왔으니...’ ‘내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말씀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든든해야합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 됨의 권세’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믿는 자들이 당하는 시험과 마귀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성도의 힘과 권세는 오직 부활하신 주님의 권세에서만 나온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2. 그 능력의 주님 예수는 오늘날 많은 고난과 시련을 겪고 있는 성도들이 그 분의 이름을 힘 입고 살면서, 능력을 받고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본래적으로 약함과 무능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우리들이 그 부활하신 주님의 힘을 의지하면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는 그 이름에 걸맞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으로, 또한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사람’으로 살라는 것이지요.
본래 약하고 약한 인생들에게 권능을 주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면서, 또한 인생을 바꾸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면서 살되, 그분의 권세를 믿고 나아갈 때, 우리는 ‘(복음을 전하러) 나아가라!’고 하실 때에 순종할 수 있으며, ‘가서 세례를 주라!’고 하실 때에 ‘나가서 세례를 줄 수 있으며’, ‘(가서) 가르치라’고 하실 때, 나아가서 복음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유명한 야베스의 기도가 있습니다. 왜 그의 기도가 그토록 유명하며, 왜 그의 기도가 훌륭하다고 합니까? 그의 기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는 기도’였다는 말입니다. 또한 그의 기도는 하나님을, ‘그 능력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기도’였기에 우리는 그 기도를 본받고자 하는 것이지요.
비록 야베스라는 그 이름의 뜻이 ‘고난과 고통’이었다 해도, 그 문제를 하나님에게로 가지고 나아가서, 그는 담대하게 외쳤던 것이지요. 역대상 4장에 나타난 그의 기도가 바로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그의 기도는, ‘원컨대 내게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혀주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환란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시며’
오늘날 발생하고 있는 이 어려운 환란의 날에, 또한 장차 계속될 고통의 날들 앞에서, 우리 성도는 기도를 통하여 ‘응답의 기도’를 이루면서, 우리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삶에서 이뤄나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따라 하나님을 ‘왜소한 분’으로 만들지 말고, 우리의 시야를 넓혀서 그 분의 뜻을 이루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의 문제 속에서 탄식하지만 말고, 기도하되, 능력의 주님을 믿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의 결론은 이러합니다. 권세자이신 주님께서 믿는 우리들에게 명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순종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이 말씀하는 바대로, ‘(복음을 전하러) 가라!’는 것이 아닙니까? ‘(가서) 제자 삼아라!’는 것이 아니었나요? 이 모든 일을 이루기 위해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나요?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들에게 주신 주님의 위대한 명령인데, 우리가 이 부활의 아침에 받아야 할 하나님의 위대한 명령입니다! 그리고 이 위대한 명령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함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 부활의 아침에 우리 모두는 오늘의 성경 본문이 말씀하는 위대한 ‘마그나카르타’(대헌장)로서, ‘가라’, ‘제자를 삼아라’, ‘세례를 주라’, ‘가르쳐라’,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이 말씀들을 순종함으로... 부활의 아침에 주님의 능력을 힘입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 부활을 믿는 신앙은 오늘 이 부활의 아침에 우리들에게 명령하십니다. 오늘날 어지러운 뒤로 쳐지지 말고, 그저 탄식하지만 말고, 이 세상에서 이 복음이 온 세상의 사람들에게 구원의 빛이 되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뜻을 이뤄나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이 어렵고 힘들어진 상황에서 탄식지만 말고, 그냥 주저앉지만 말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먼 옛날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심정으로 이렇게 외치면서 또한 응답을 드립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6:8).
이 부활의 아침에, 우리의 사명이 있음을 알고,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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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7.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