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에 대한 관심
우리는 복에 대한 관심이 많다. 숟가락과 식기 등 주방용품에 ‘福’자를 새겨놓는다. 가구와 장식물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복 받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새해를 맞으면 서로에게 복을 받으라는 덕담을 나눈다. 이때 자신이 직접 상대에게 복을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어떤 시간이 되면 상대에게 복이 굴러 들어올 것을 기대하고 바라면서 빌 뿐이다.
우리가 이토록 관심을 갖는 복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시대별로 강조점이 달라도 과거나 현재나 기본으로 여기는 것은 장수의 복, 건강의 복, 그리고 재물의 복이다. 이외에도 치아 복과 친구의 복, 또는 배우자의 복 등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얻어 누리는 것을 복으로 이해하고 있다. 즉, 본인이 얻고자 하는 것을 풍족하게 누리는 환경을 통해 얻는 만족감 또는 행복감을 말한다.
복을 바라는 마음은 기독교 신앙의 여부와 상관이 없다. 신앙인들도 서로 복을 빌고 받는다. 단지 세상 사람들과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면 상대에게 복이 어떻게 전달될 것인지에 대해서 분명히 알고 있다. 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이시다. “사랑해요, 축복해요~ ”라며 성도들끼리 서로를 향해 두 손을 들고 부르는 내용이 들어있는 복음송이 있다. 이때 사랑한다고 할 때에는 나는 상대를 소중히 여기고 있고 좋은 감정을 지니고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부른다. 반면에 축복한다는 대목에서는,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여시어 상대에게 행복과 은혜를 풍족하게 베풀어주시길 바란다는 소원을 담아 부른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복을 베풀어주시는 분으로 믿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공동체에 속한 성도가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시어 잘 해결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개업예배를 드릴 때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 부르기를 좋아한다. 복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설교의 주제이고, 대표기도와 심지어 식사기도 역시 사업이 번창하기 위해 필요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겨있다. 새로 이사한 가정을 위한 최고 인기 선물은,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삼하7:29) 라는 성구가 적힌 액자이다. 성도들은 모든 예배의 마지막 순서인 축도를 소중히 여긴다. 초대교회 사도들로부터 성삼위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복을 성도들을 향해 선포하는 전통이 전수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복신앙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습니다!” 1970년대 복음화가 한창 진행되면서 제작한 전도지에 자주 등장하던 문구이다. 목회자들은 강단에서 예수를 제대로 믿으면 하나님께서 복을 쏟아 부어 주신다고 외쳤고, 성도들 역시 전도 대상자들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복 받을 길이라고 설득하였다. 그 당시 예수를 믿으려면 반드시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께 죄를 자복하고 죄 씻음을 얻어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원색적인 복음이 중심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을 걸치면 복을 얻는다는 사실도 동시에 강조된 것이다.
1970년대에 한국교회는 놀라운 수적 부흥을 경험하였다. 특히 부흥회와 신유은사집회에 참석했다가 그 자리에서 변화를 받아 회심하고 예수를 믿기로 작정한 성도들이 부지기수였다. 이토록 불신자들이 교회로 몰려온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대부분 교회에 나가면 복을 받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복음 자체를 소중한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인 성도들도 있었지만 회심의 경험과 상관없이 교회에 출석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결국 1980년대를 지나면서 예수를 믿으면 반드시 복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일종의 신앙적 신념으로 한국교회 안에 확고히 자리 잡게 되었다. 하나님은 마음의 소원을 담아 간절히 기도를 올리면 반드시 응답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성도가 거의 없었다. 이 사실을 믿고서도 기도하지 않는 게으른 신앙의 모습이 문제였다. 새벽기도와 금요철야기도 외에도 기도모임이 강화되었고, 성도들은 개인적으로 금식기도와 일천번제단기도 등에 참여하였으며, 산을 중심으로 세워진 기도원을 찾아 기도에 집중하는 성도들의 수가 부쩍 늘게 되었다.
하나님에게 구하면 복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기복신앙(祈福信仰)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다른 종교와 미신적 신앙에도 기복신앙의 요소가 있다. 자신의 필요를 초월적 능력을 지닌 신에게 요구하면 채움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곧 신앙수준의 척도로 여겨지기도 한다.
기복 신앙은 한국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생겨난 실용적 신앙형태
하나님 뜻대로 구하고 허락하시는 대로 받는 바른 신앙자세 필요
어찌 기복신앙이?
대부분 한국교회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기복신앙의 출발점을 6.25전쟁과 그 후에 전개된 사회적 상황으로 이해한다. 외국으로부터 수입된 신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한국적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현상이란 것이다. 8.15해방의 감격 이후 6.25전쟁으로 총체적인 어려움을 경험하게 되었다.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누고, 가족과 지인들이 죽는 모습을 목격하고 생이별을 해야 하는 상황은 크나큰 정신적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온 도시가 잿더미가 되었으며 교통시설과 생산시설이 심각하게 파괴되어 굶주림이 일상이 되고 당장 끼니를 챙기는 것조차 어려웠다.
전쟁을 마친 뒤 온 국민은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감행했다. 특히 1960년대 이후 경제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통해 한국인은 장수와 건강보다 재물의 복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행복하게 잘산다는 것은 곧 풍요로운 물질을 얻는 것이 되었고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장수와 건강이 필요했다.
이런 사회적 배경 속에서,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니면 복을 얻는다는 말은 곧 하나님이 나에게 필요한 물질을 채워주신다는 약속으로 이해되었다. 기복신앙이 자리를 잡게 된 근본 원인은 절대자를 의지함으로 복을 누리고자하는 인간 모두에게 있는 종교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기복신앙의 다른 중요한 원인이 있었는데, 성경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구하는 대로 복을 주시는 분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우리가 그를 통해 물질의 복을 누릴 수 있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대표적인 구절을 소개해보자. “야베스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역대상4:10).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히6:14).
그렇다면 복 주시기로 약속하신 하나님께 물질, 건강, 자녀, 형통, 무병, 장수를 얻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신앙의 태도를 오류라고 지적해야 하는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으로 믿는 태도 자체를 부정할 수 없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성도들이 기복신앙을 거부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기복신앙은 개인의 정욕을 채우려는 욕망을 중시한다.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것을 반드시 채우시는 분이라는 믿음이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자기를 중심하는 이기적 신앙과 신앙의 대가를 얻으려는 보상심리에 기초한 실용적 신앙이다.
참된 복이란
기복신앙의 긍정적 영향을 전혀 무시할 수 없다. 교회역사의 큰 변화를 가져온 두 가지 사건을 소개하자.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락한 로마의 콘스탄틴대제(Constantine I, 272-337)와 중세시대에 유럽을 통일시키고 기독교를 받아드린 프랑크 왕국 설립자 클로비스 1세(Clovis I, 466-511) 모두 하나님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도왔다고 확신하면서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도 불치병이나 인생의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이 도우심을 경험한 뒤에 자신 또는 주위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는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기복신앙에 머물러 있다면 영적으로 매우 치명적일 수 있다. 왜냐하면 성경이 말하는 복은, 우리가 염원하고 추구하는 복과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을 아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가장 근본적인 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복이다. 영생을 얻는 것이다. 나아가서 십자가 보혈을 통한 구원을 받은 자로서 마땅한 세계관과 가치관을 살아가는 그 자체가 복이다.
1980년도에 정착한 기복신앙의 뿌리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은 경제적으로 많이 안정되어 당장 먹고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이전과 비교해볼 때 사회적으로 장수와 무병, 그리고 많은 재산을 갈망하고 집착하는 경향이 짙다. 신앙적으로는 아직도 3박자 구원,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요3:1)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기복신앙 이상으로 성장하지 않은 성도들 중에 2가지 상반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에 비해 풍요하게 살게 되면서 더 이상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지 않으며 신앙의 길을 떠나는 경우가 있다. 지속적으로 힘든 삶을 살게 되면 하나님을 편애하는 분이라고 오해하고 원망하면서 불신앙의 태도를 갖게 된다. 기복신앙을 탈피하고 성경이 제시하는 신앙을 회복해야 한다.
성경적인 복은 영적이며 내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산상수훈에 잘 드러나 있듯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때문에 핍박과 고난, 그리고 욕을 받는 것을 복이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순례자의 신분으로 넉넉히 이기며 살아가길 원하신다. 그렇다고 이원론에 근거해서, 하나님은 물질적인 복에 대한 관심이 없고 오직 영적인 복을 주시려고 한다면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이 사실을 믿고 간구해야 한다. 만일 특별한 어려움이 생길 때 금식하며 하나님께 매달리는 적극적인 태도가 바람직하다. 단지 세상 사람들이 복을 구하는 심정과 동일한 기복신앙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고 그가 허락하시는 대로 받는 올바른 신앙의 자세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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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0.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