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일
교회는 교육하는 곳이다. 성도들에게 성경이 가르치는 참된 가치를 바르게 전달하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 교회교육이라 할 때, 어린 학생들을 위한 주일학교 교육에 국한하여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교회는 성인들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사역에도 열심을 다해야 한다. 예수께서 행하신 지상사역 중 가르치는 일을 매우 중요시 하셨으며 이 사명을 교회에 맡기셨다. 교육은 교회가 반드시 감당해야 할 본질적 사명 중에 하나이다.
현재 각 교회마다 주중에 성경반, 교리반, 제자훈련반 등을 상설 운영하고 있다. 전도훈련, 중보기도, 선교훈련 등 필요에 따라 특별한 목적으로 모임을 가지기도 한다. 구역모임도 성경을 교육하는 형식 안에서 진행되고 있다. 지니고 있다. 교회도서관을 운영하여 성도들의 관심을 채울 수 있는 서적을 소개하기도 한다.
예수께서 친히 삼으셨던 교육의 목적은 성숙과 변화였다. 그렇다면 현재 교회에서 실시되는 교육을 통해 얼마나 구체적인 삶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반성해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 바른 신앙을 위한 지식의 축적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는 듯하다. 하나님의 나라의 진리를 깨우쳐 이해하고 이에 대한 결단은 있지만, 삶 속에서 인격의 변화라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이 교회교육이 지식 전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먼저 한국인들과 익숙해진 고유의 교육방식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선교사들을 통해 서양식의 교육이 시작되기 전, 조선에는 서당을 통한 교육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현재는 학교 설립을 위해 반드시 문교부의 인가를 받아야 하지만, 그 당시 서당은 주로 글을 잘 아는 양반 출신 훈장이 자유롭게 설립하는 사설 교육기관이었다.
구한말 개화기를 맞아 1895년에 ‘소학교령’을 공포하여 초등교육을 위한 제도적 기초를 놓게 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 후 일제는 소학교를 보통학교로 부르다가 다시 1938년에 소학교로 변경한 뒤, 1941년에는 민족 말살정책을 목적으로 교육을 실시하며 국민학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1996년부터 초등학교로 변경되어 불리고 있다). 그렇지만 일제치하에도 서당이 사라지지 않았다. 규모를 갖추지 않은 서당은 전국에 널리 퍼져있던 것에 비해, 의무교육이 아니었던 소학교가 없는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비록 1930년을 기점으로 서당의 수가 줄어졌지만 심지어 해방 이후에도 시골에 서당이 존속되기도 하였다.
한국인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준 서당의 교육 방법은 어떠했을까? 서당 공부는 글을 읽고 쓰고 글짓기를 포함하였지만, 주로 글을 소리 높여 읽는 것에 집중하였다. 즉 글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고 암송할 때까지 수차례 반복해서 읽는 것이 주를 이뤘던 것이다. 즉 서당교육의 목적은 모르는 것을 깨우쳐 아는 것이었다.
주입식 교육
현재 교회교육은 학교에서 시행되는 방법과 유사하게 주입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학교교육은 많은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달해야하는 상황 속에서 교사와 교과서 중심으로 이뤄진다. 창의적인 방법을 개발하는 것보다 진도에 맞추어 제대로 진행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난이도가 높은 내용을 가르치면서도 수업시간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일일이 점검할 수 없는 환경이다.
물론 교회교육이 학교교육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무엇보다 학교는 성적이란 도구를 통해 학생들이 반드시 공부하도록 만든다. 수업시간에 교사의 가르침에 집중하거나 공상할 수 있지만,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한다. 일반적으로 암기능력에 뛰어난 학생이 우수한 성적을 받게 된다.
교회교육은 강압적이지 않다. 가르친 내용을 제대로 공부시키기 위해 철저하게 시험과 성적제도를 도입한다면, 자발적으로 교회교육에 응할 성도가 그리 많이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교육은 학교보다 더욱 주입식이 될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예배시간 이외에 교회에서 실시하는 공부에 참여하는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지닌 의미가 크다. 스스로 교육에 응한 만큼 진지한 태도로 공부에 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교육이 학교교육과 근본적으로 다른 또 하나의 이유는 세상에서 유일한 기독교의 진리를 다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교육을 받는 성도들은 겸손하게 배우려는 자세가 요구된다. 간혹 소그룹 모임에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면서 지도자에게 노골적으로 대항하는 잘못된 경우가 있다. 교회교육은 교회에 주어진 기독교의 진리를 반복적으로 배우고 익혀 굳게 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교회 교육의 목적은 진리습득 통한 성숙과 변화
전통적 서구 교육방식은 진리에 대한 절대성 가르치는 일
한국교회, 미국실용주의교육 영향으로 삶의 방법론에 집중
진리 교육
얼마 전부터 한국의 학교교육에 변화가 찾아왔다. 주입식 교육의 폐단을 지적하고 현실적인 교육형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생겨났다. 개인의 능력을 고려되지 않을 뿐 아니라, 과도한 양의 학습량을 소화할 수 없고, 흥미를 가지고 능동적 수업 참여를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을 파악한 것이다. 그 결과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도록 하는 개방형교육과정을 실시하는 교육제도가 서서히 확산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현상은 이미 과거 서구역사에 드러난바 예상되었던 변화라는 것이다.
학교와 교회에서 실행되는 주입식교육은 중세이후 서구에서 실시되어온 전통교육방식이라 볼 수 있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학문적 기본을 갖출 수 있도록 한다는 사명에 충실하려 했던 것이다. 나아가서 일단 지적토대가 세워진 후에 개인의 잠재능력을 이끌어내는 전문교육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전통적 교육은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에 유럽 도시에서 출현한 대학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대부분 초기 대학은 대성당의 부속학교나 수도원학교에서 출발하였다.
중세 대학은 기본학문을 가르치는 교양학부와 교양학부 졸업생이 진학하는 상급학부인 신학부, 의학부, 그리고 법학부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문인이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하기 전 반드시 교양학부에서는 ‘3학’과 ‘4과’를 통해 학문적 소양을 넓히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3학’에는 문법, 수사학, 논리학이, ‘4과’에는 산수, 기하학, 천문, 음악이 포함되었다. 초대교회 교부 어거스틴은 신학을 공부하기 전 기본학문을 갖추도록 적극적으로 추진한 바 있으며 중세에 와서 대학을 통해 정착한 전통의 윤곽이 심지어 현재까지도 내려오고 있다.
14-15세기에 아비뇽 유수와 대분열 기간을 걸치면서 교황청의 세력이 약화되고 대학이 세속 군주들 또는 지방 유력자들의 지배권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기독교가 영향을 끼치던 중세 대학 안에서 행해졌던 전통적 교육철학은 그 후로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그 중심에는 중세시대 학자들에 의해 강하게 대립되었던 ‘관념론(Idealism)’과 ‘실재론(Realism)’이 있었다.
‘관념론’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절대적 가치를 중시하며, 강압적으로 주입하지 않고 학생들의 개성을 존중하며 인간성 안에 깃든 좋은 것을 끄집어내고 완성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실재론’은 교과중심의 교육과정을 중시하는 학문적 기본훈련을 중시하며, 학생들에게 전문가들이 연구해놓은 지식의 체계를 제공함으로서 그들에게 필요한 지적실력을 갖추게 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관념론’과 ‘실재론’은 방법론에 관한 차이일 뿐 진리 자체에 대해서는 이견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즉 서구의 전통적 교육방식은 일종의 변하지 않는 진리에 대한 절대성을 가르치는 일에 집중해온 것이다.
실용주의
미국의 교육자 존 듀이(John Dewey, 1859-1952)가 경험적 상대주의에 입각한 실용적 교육방식을 소개하면서 전통적 교육철학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교육은 반드시 교사나 교과서가 아닌 학생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필요에 의해 교육의 동기가 부여되어야 하며, 암기위주의 방식을 버리고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삶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하였다. 그가 주장한 실용주의에는 진리는 변한다는 전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듀이의 진보적 교육사상에 맞서서 교육방법에 대한 다양한 이론이 대두되었다. 본질주의는 학생의 흥미는 따라가면서 체계적 교과를 통해 기본지식을 숙달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항존주의는 절대적 진리에 대한 믿음에 기초하여 인간의 이성 도야를 목적함으로 공리주의로 타락한 교육을 개혁하려한다. 재건주의는 소수 권력자들의 의해 지배를 받는 사회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민주적 토론중심의 교육을 세워야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한국교회는 미국교회로부터 시작된 실용주의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를 무시하고 삶에 유익이 되는 실제적인 것을 강조하는 모습에 잘 나타나있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성도들에게 필요한 진리를 가르치는 일보다, 설교와 성경공부 그리고 교회에서 실시하는 교육이 주로 ‘삶의 방법론’에 집중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성도들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고, 그들이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앞으로 기독교 신앙의 왜곡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교회 교육
교회교육은 이원론에 입각하여 양 극단에 빠질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성도로서 세상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사변적인 진리를 주입시키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처세술 강의와 유사한 내용에 집중하여 복음을 사적인 영역으로 추락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진리습득을 통한 성숙과 변화가 교회교육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또한 교회교육은 반드시 성령의 역사와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성령의 도움이 없이 결코 그 깊은 진리를 깨달을 수 없으며, 그리스도를 닮는 모습을 취할 수 없다. 교육의 방식은 상대와 시대에 따라 변화할 수 있지만, 가르치는 진리는 변함이 없어야 한다.
covenantcho@yahoo.com
01.23.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