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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교의 시대에 생각한다

코로나 시국에 깨닫는 복

 

2020년을 기준으로 인류사회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말이 있다면 단연 코로나일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통한 미증유의 공포와 불확실성은 믿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삶은 물론 신앙생활에 있어서 엄청난 도전이 되고 있음이 사실이다. 불편 없이 교회에 찾아가고 예배를 드리던 신앙인의 자유가 통제를 받는 전대미문의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부분적으로 예배당 문을 다시 열 수 있게 되었지만 과거 거리낌 없이 행하던 찬양 콘서트나 통성기도와 같은 전통은 더 이상 지키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고난을 경험하면서 한편으로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깨달을 수 있어서 감사하게 된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의 귀중함과 진정한 예배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예배에 대한 갈증으로 그분에게 마음껏 찬양을 올려 드리는 가운데 원 없이 예배를 드리고 싶은 소원도 간직할 수 있었다.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으로 꽁꽁 숨어버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칫 잊어버릴 수 있었던 예배에의 감동을 다시 찾게 되었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계시록 2장에서 에베소 교회에게 권면하셨던 것처럼 주님에 대한 첫사랑을 회복하라는 깨달음을 주셨다. 이 시국을 엄청난 충격으로 받아들이면서 주님의 사랑을 확인하고 내안에 다시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수많은 것들을 잃어버리는 아픔 중에도 주님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회복한다면 진정한 복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위험한 시국이지만 그분의 사랑을 다시 체험함으로 신앙으로 무장할 수 있게 됨은 최고의 복이 되는 것이다.

 

세상을 짝한 교회의 배교

 

오늘날 하나님을 배반하는 배교의 기류가 갈수록 그분의 교회 안에 만연한 가운데 있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이루어지는 일마다 세상 뺨치는 수단 방법을 동원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교회들이 주장하는 가치관에 잘 나타나 있으며 예하여 숫자와 돈이 그것이다. 교회마다 세상이 좋아하는 사람 숫자나 물질의 액수가 우상이 되어 있는 가운데 이를 자랑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안타깝게도 성공이라는 이름의 바벨탑을 쌓아올리는 가치관으로 무장한 채 세상인지 교회인지 구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배교의 원인을 살펴보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정해주신 기준을 떠나있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기준은 그분의 말씀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교회가 이를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해석하는 죄를 범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교회가 세상과 간음을 일삼는 가운데 그분의 분노를 살 가증한 일을 스스럼없이 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과거 악행을 일삼던 소돔을 비롯한 도시들과 이스라엘을 동일시하신 일이 있는데 오늘날 이러한 교회의 모습을 보게 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예배이며 무엇을 위한 신앙생활인가 분별하지 못한 채 자기만족에 빠져드는 예배군중들을 보게 된다는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뜻을 배반하는 배교의 현실을 망각한 가운데 하나님과 관계없는 사람 중심으로 잘 포장된 종교생활에 깊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영혼을 죽이는 강단의 메시지

 

주님이 가르쳐주신 제자됨의 덕목을 보면 예수 안에서 자아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목사들은 주안에서 자아가 죽는 대신 죽는 시늉만 하면서 회중들로 하여금 자아가 죽어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그러한 이유로 강단에서 흘러나오는 말씀은 아무런 <임펙트>도 주지 못하는 공허한 메아리와 같이 하나마나한 것이 되어 버렸다.  오늘날 강단에서 증거되는 말씀이 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그것들이 회중들의 삶에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느냐 하는 말이다. 한마디로 심령을 찌르는 가운데 듣는 이로 하여금 회개를 불러일으키고 심령의 변화를 이루는 생명의 말씀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강단에서 증거되는 메시지마다 이미 듣는 사람들의 구미를 맞추는 일에 매우 익숙해져 있다. 심지어 “당신은 잘 될 것이다,” “세상에서 복 받아 번영할 것이다,” “긍정의 힘을 의지하라” 등등 듣보잡(?) 같은 사이비 복음들이 강단을 어지럽히고 있다. 이에 목사들마다 회중들로 하여금 부담이 없고 편안하며 무난하게 느껴질 말씀을 준비하는 일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이러한 말씀들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그들의 관심을 채워준다는 이유로 영혼을 살리기는 커녕 영혼을 죽이는 메시지로 둔갑하고 있으니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파수꾼의 심정을 품고

 

에스겔서 33장에 보면 파수꾼의 사명이 명시되어 있다. 파수꾼이 그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여 한 사람이라도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 핏값을 파수꾼에게 돌린다는 말이다. 교회가 그리고 목사가 파수꾼의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그에 대한 심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다. 지금은 적당히 믿는 척 하면서 대충 대충 신앙생활을 하거나 사역을 감당할 때가 아니다. 우리 각 사람은 물론 온 인류에 닥칠 환난의 시기가 임박한 지금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죽기 살기로 신앙을 지켜야 할 시간이다.

코로나 시국을 맞이하여 성경적인 신앙을 파수하려는 헌신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치에 반대한 독일 고백교회 교인들이나 일제의 신사참배에 대응하여 신앙의 대가를 치렀던 우리 믿음의 조상들의 신앙을 본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순교적인 각오와 결단으로 세상이라는 환경에 위축되지 않고 믿음의 본을 보일 때 그만큼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음은 물론이다. 믿는다는 말은 하면서도 아직도 하나님을 배신하고 있는 수많은 무리들에게 참된 예배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도록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말이다. 

07.11.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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