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삶에서 얻는 지혜

농촌살기는 생각하는 것만큼 낭만적이거나 목가적이지 않다. 나같이 시골에서 태어나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지긋지긋한 가난으로 배고픈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더 많았던 사람에게는 진저리가 쳐질 수도 있다.

선교현장에 나갈 수 없는 상황에 나이까지 들어 국내사역으로 눈을 돌렸고 고향이 가까운 소도시에 소재한 대학에 선교의 대상이 되는 유학생이 많아 선교센터를 준비했다. 의도치 않은 시골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다 코로나19라는 복병을 만나 사람들과의 접촉 자체가 어렵게 되었다. 그저 멍하니 세계적으로 퍼진 바이러스가 종식되기만을 기다리기가 뭐해 이동식 컨테이너를 가져다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주변에 몇 가지 채소를 심었다.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은 물을 주지 않아도 늘어나나보다. 상추 몇 포기와 고추 대여섯 개, 토마토 두서너 개로 시작했던 것이 점점 늘어나 기왕 할 바에는 고추도 더, 쑥갓에 열무에 좋아하는 고구마까지 심게 되었다. 

채소는 심기만 한다고 되지 않는다. 가꿔야하기 때문이다. 거름도 필요하고 물도 줘야 하고 무엇보다 풀을 매는 것은 싸움보다 더 치열하다. 뽑는다고 뽑았는데 뒤를 돌아보면 여전히 풀이 남아 있다. 노년을 맞은 부부가 시골에 내려가 여유롭게 살겠다며 농촌에 집을 마련했는데 재미로 가꾸기 시작한 텃밭에서 뽑고 뽑아도 끝이 없이 자라나는 풀에 지쳐 시골살이를 포기했다고 한다. 풀의 생명력은 참으로 질기다. 어떤 악조건에서도 죽질 않는다. 

엊저녁부터 새벽까지 땅이 물렁해질 정도로 비가 촉촉이 내렸다. 비온 뒤는 풀을 뽑기가 매우 수월하다. 땅이 물을 머금었을 때는 웬만큼 뿌리를 깊이 내린 풀일지라도 끊어지지 않고 잘 뽑힌다. 가뭄 뒤에 단비가 내리면 풀의 입장에서는 물도 충분히 빨아들였으니 이제 맘껏 자라서 무성해져야지! 춤을 췄을 것이다. 그런 풀을 생각하며 문득 어리석은 부자 생각이 났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12:15-21). 풀이 사람과 같을 수는 없으되 비온 뒤의 무성한 풀을 보며 얻은 삶의 지혜였다. 

농사꾼은 풀과 싸우지 않는다. 이제는 풀을 죽이는 약들이 많아 농지에는 거의 제초제를 사용한다. 그렇지 않을지라도 풀은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제거되지 않는 것이 풀인 까닭이다. 풀을 뽑으며 내일이나 모레면 다시 풀이 돋을 것이란 생각을 하다 죄악도 그러함을 깨달았다. 심판의 주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이 세상의 주인노릇을 하는 죄악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뽑으면 다시 돋는 풀처럼 죄악도 그러할 것이다. 

풀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 것처럼 죄악도 제거되지 않는 것임을 아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오직 충성이라 했으니 사람은 그저 죄악을 줄이기에 힘쓰면 된다. 세상의 죄악을 다 제거하겠다고 덤비기보다는 나의 죄악과 내 이웃의 죄악을 줄이기에 힘쓰다 보면 그렇게 줄인 만큼 죄악은 줄어들 것이다. 또한 오늘 제거한 나의 죄악은 내일 다시 돋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며 풀을 뽑노라니 서둘던 나의 손놀림에 여유가 생겼다. 아픈 허리를 펴며 거북목처럼 뻣뻣해진 목을 풀면서 찬송이 흘러나왔다. 진리를 깨달은 자유함이었다. 

엊그제는 감나무 밑에 무성하게 우거진 풀을 베었다. 처음 사용하는 예취기는 낯설고 공포스러웠지만 예취기의 칼날이 훑고 지나가는 자리가 말끔히 베어지는 것을 보면서 경이롭기도 했다. 특별히 나의 손놀림에 의해 정해지는 경계 즉 벨 곳과 그냥 버려둘 곳이 정해지는 것을 보면서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를 되새기기도 했다. 물론 전능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나의 손놀림에 비교하는 것은 가당치 않았으나 거기에서 얻어지는 지혜는 내게 은혜였다. 나를 만세 전에 택하시고 때가 되매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시고 이렇게 선교사요 목사로 구별하여 세워주신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다시금 감사하게 되었다. 

품으려 하면 꽃 아닌 것이 없고 꺾으려 하면 풀 아닌 것이 없다는 말처럼 삶 속에서 얻는 지혜는 무한하다. 삶 속에 담겨있는 지혜들을 어떻게 발굴하고 선한 영향력으로 적용할 것인가는 그 나름의 몫이며 이 또한 지혜일 것이다.    

hanmackim@hanmail.net    

06.20.2020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