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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확증

누가복음 24장 1-12절

 

서울대학교의 전종갑 교수님은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수많은 자연법칙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 법칙들 중에서 지금까지 인간이 발견한 것은 극소수라고 했습니다. 이 법칙들을 바닷물이라고 한다면 인간이 발견한 것은 물 한 컵도 되지 않을 양이라고 했습니다.이런 의미에서 성경의 기적은 비과학적이 아니라 초과학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신비라고 부릅니다. 신비는 내가 납득이 가지 않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지 사실은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식은 한계가 있습니다. 고작해야 보이는 것만 알 수 있고 연구할 수 있지만 그것도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죽음이 분명한 것처럼 부활도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제자들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고 하느냐”(고전15:12) 사도 바울이 목회하였던 고린도교회도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났던 바울이 얼마나 확신있게 부활을 증거하였겠습니까. 그런데도 믿지 못하는 자가 있었다면 지금도 많은 사람이 부활을 믿지 못할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의심하는 도마에게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요20:27) 여기서 믿음 없는 자는 불신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부활주일을 맞이하면서 과거의 역사적 사건으로 기념하거나 미래에 되어질 사건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현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나의 부활로 받아들이고 새 생명으로 삶을 사는 힘이 되어야 합니다.

초대교인들은 부활신앙으로 세상을 보고 현실을 보고 자신의 고난을 감당하고 기쁨으로 순교했습니다. 이렇게 부활신앙이 우리의 삶을 지배해야 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말씀과 신약에서 예수님의 부활하신 말씀을 우리가 믿는다면 성경을 다 믿게 됩니다. 기독교 신앙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만일 부활을 믿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확신을 증거 할 3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빈무덤”입니다.

 

1절에 안식 후 첫날 새벽이라는 말씀은 사복음서에 다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안식일 다음 날인 주일이었습니다. 안식일에 예배드리는 유대인의 전통을 깨고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예배하는 날로 정했습니다. 이것이 주일의 기원이 됩니다. 주일날 예배는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여인들이 무덤에 가보니 “돌이 무덤에서 옮기운 것을 보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덤을 돌로 막고 인봉까지 한 후 병사들이 지키게 하였습니다(마27:66). 마가복음에는 여인들이 무덤을 향해 가면서 무덤을 막은 돌을 어떻게 옮길까 걱정하면서 갔습니다(막16:3).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었다고 말씀합니다(마28:2). 우리 예수님을 무덤에서 나오게 하기 위하여 천사들이 돌을 옮겼을까요?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들을 닫고 있는 곳에 들어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셨듯이(요20:19) 주님은 문들이 잠겼어도 들어가시는 부활의 몸을 가지셨습니다.

무덤의 문이 열렸다는 것은 예수님을 위한 것이 아니고 여인들에게 부활의 확증을 주기 위함이요 동시에 우리들에게도 부활의 확신을 갖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여인들이 무덤이 열려있고 예수님의 시신이 보이지 아니하여 근심할 때에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무서워 얼굴을 땅에 대고 떨고 있을 때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여인들의 신앙은 죽은 예수님을 찾으러 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빈 무덤이 여인들로 하여금 주님이 사셨다는 부활신앙을 갖게 하였습니다. 

무덤이 그대로 있어 예수님이 죽음으로 끝났다면 기독교는 없습니다. 아담 이후 무덤은 인생의 종착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무덤은 없습니다. 성지에 가보면 빈 무덤을 보게 되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부활의 희망을 줍니다. 저는 빈 무덤 앞에서 부활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이요 죽음이 예수님을 정복할 수는 없었습니다. 성도의 죽음은 과정이지 끝이 아닙니다. 

무덤의 기원은 인간의 죄의 결과입니다. 이제 우리는 죄에서 자유를 얻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무덤은 형식이요 과정입니다. 빈무덤을 여인들만 보았다면 환상이라고 의심할 수 있지만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가서 보았습니다(요20:2). 사도들이 본 빈무덤은 후에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실 때에 의심 없이 영접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들의 부활신앙은 빈무덤이었고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신앙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11-12절에 여자들이 제자들에게 빈무덤을 전했을 때 처음에는 허탄한 듯이 뵈어 믿지 않았고 베드로는 확인하기 위해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제자들은 3년이나 주님의 교훈을 직접 듣고 훈련을 받고 많은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요한을 제외하고는 다 도망갔습니다. 혹시 우리도 잡혀가 죽지 않을까 하면서 골방에 들어가서 숨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백성들에게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자를 놓아주고 생명의 주님을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님을 살리셨도다.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행3:14). 증인이라는 말은 보았다는 뜻입니다. 예루살렘 도성에서 이렇게 담대하게 전하니 제사장들과 공회원들이 저들을 잡아와서 다시는 그렇게 전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기를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행4:20). 이렇게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서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벧전1:3).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였던 베드로가 담대한 사람이 되었고 순교하게 된 비결이 주님의 부활입니다. 도마는 내가 보아야 믿겠다고 의심하였으나 멀리 인도에까지 가서 순교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의 부활입니다.

사도요한을 제외하고는 제자들이 다 순교하였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부인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절설”, “도적설”, “환상설”, “첨가설” 등 이런 것들이 사실이라면 이런 거짓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놓을 수가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보다 사도바울의 변화를 보면서 부활의 확증을 얻게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옥에 넣어 핍박하던 자가 어떻게 예수님을 증거 할 수 있습니까? 2천년 교회역사에 수많은 순교자들과 지금도 세계 지구촌 곳곳에서 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온갖 희생을 당하며 섬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무엇이 저들을 변화시켰습니까? 주님의 부활입니다! 

다른 것은 그만두고 여러분 자신을 생각해보십시오. 죽으면 그만이다, 부활이 없다하면 예수님을 믿겠습니까? 우리는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주변에 변화된 사람을 보면서 주님의 부활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교회”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면서 3년동안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자를 고쳐주시고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세우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시고 40일을 계시면서 열한번이나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부활의 몸을 보이셔서 슬픔을 기쁨으로, 의심을 확신으로, 절망을 소망으로 변화시켰습니다. 교회라는 말은 ‘불러내었다’는 뜻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저들이 모인 곳이 교회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그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교회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말씀합니다(행20:28). 

교회는 기초가 부활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교회도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우리의 신앙생활도 헛된 것입니다. 교회를 보면 부활의 확신을 갖게 됩니다.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지나온 역사 속에 교회가 일시적으로 부패할 때가 있었고 핍박을 인하여 잠시 없어진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습니다. 로마의 십대 황제들의 핍박, 공산주의자들의 핍박, 그리고 무신론자들의 핍박이 있지만 교회는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교회가 부활하신 주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엡1:23). 

교회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존속하게 될 것입니다. 나폴레옹은 세인트 헬레나섬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에 나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나사렛 예수가 세운 교회는 날로 흥왕하여 온 세계에 퍼진다고 하였습니다. 부산 복음병원을 세우신 장기려 박사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섬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병원을 교회처럼 헌금으로 운영하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경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세상에서 헌금으로 운영되는 곳은 교회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교회가 존재하고 있는 것은 부활의 주님이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구촌 곳곳에서 부흥되는 교회를 보면서 부활의 확증을 가져야 됩니다.

 

결론적으로 지금 세계는 COVID 19으로 인하여 공포와 두려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언제 감염되어 죽음에 이르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생애 중에 제일 어려운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욥19:25-26). 욥은 부활신앙으로 고난을 극복하고 승리하였습니다. 히브리서11장에 보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히11:35). 믿음의 여인들은 부활신앙으로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승리하였습니다.

성도여러분!

죽음이 인생의 끝이 아니고 천국에 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기 전에는 결코 죽지 아니할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요14:19).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어려운 때에 부활주일을 맞이합니다. 부활신앙으로 담대하여 어려운 시기를 이기고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04.11.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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