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바른 ì‹ í•™, 바른 êµë¦¬ê°€ 먼저다!

CT, ë§ˆí¬ ê°ˆë¦¬ íŽ¸ì§‘ìž¥ì´ ëª…í™•í•˜ê²Œ 짚어주는 ì‹ ì•™ì˜ ê¸°ë³¸

ì‹ ì•™ì˜ ê¸°ë³¸ í‹€ì€ 2가지로 '바른 가르침'(ortho-dox)ê³¼ '바른 실천'(ortho-proxis)ì„ ë§í•œë‹¤. '바른 가르침'ì´ëž€ '어떻게 믿ëŠëƒ?'ì˜ ë¬¸ì œì´ê³ , '바른 실천'ì´ëž€ '어떻게 사ëŠëƒ?'ì˜ ë¬¸ì œì´ë‹¤. 가장 ì´ìƒì ì¸ ê²ƒì€ ë°”ë¥¸ ê°€ë¥´ì¹¨ì— ê·¼ê±°í•œ 바른 ì‚¶ì˜ ì‹¤ì²œì¼ ê²ƒì´ë‹¤. í¬ë¦¬ìŠ¤ì²˜ë‹ˆí‹°íˆ¬ë°ì´(CT) 편집장 ë§ˆí¬ ê°ˆë¦¬ëŠ” 다시 한번 ì˜¤ëž˜ëœ ì‹ ì•™ì˜ ê·¼ê°„ì¸ ì´ ë¬¸ì œë¥¼ 명확하게 성경ì ìœ¼ë¡œ ë˜ì§šì–´ 준다. 한마디로, “ì¢‹ì€ ì‹ í•™ ì—†ì´ëŠ” í•˜ë‚˜ë‹˜ë„ ì´ì›ƒë„ 올바로 사랑할 수 없다”ë©° ‘바른 ì‹ í•™’, 바른 êµë¦¬’ê°€ 먼저ë¼ê³  ë§í•´ì¤€ë‹¤(True Doctrine Doesn't Wait: Without good theology, you can't have Christlike love and compassion).

최근 í•œ ìž‘ê°€ì˜ ì´ë©”ì¼ì„ 받았다. CTê°€ 새로운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ê²©ë ¤ì˜ ë©”ì‹œì§€ì˜€ë‹¤. 그는 CTê°€ 정통(orthodoxy)ì—ì„œ 벗어나야 한다고 ë§í–ˆë‹¤. ê·¸ê²ƒì´ ì„¤ì‚¬ “아름다운” 정통ì´ë¼ 하ë”ë¼ë„ 그렇게 해야 한다고 그는 ë§í–ˆë‹¤. CTì˜ ëª¨í† ì¸ “Beautiful Orthodoxy”를 ë‘ê³  í•œ ë§ì´ë‹¤. 

그는 우리가 드러내야 í•  ê²ƒì€ ì •í†µì´ ì•„ë‹ˆë¼ orthopathy(바른 ë§ˆìŒ ë˜ëŠ” ê°ì •)와 orthopraxis(바른 실천)ë¼ê³  ë§í–ˆë‹¤. 그는 우리가 “ë‘ ê°€ì§€ 가장 í° ê³„ëª…-í•˜ë‚˜ë‹˜ì„ ì‚¬ëž‘í•˜ê³  ì´ì›ƒì„ 사랑하ë¼-ê³¼ ì˜ˆìˆ˜ë‹˜ì˜ ì‚¬ëª…ì— ì¼ì°¨ì ìœ¼ë¡œ ë°˜ì‘하는 ëª¨ìŠµì„ ë³´ì—¬ì•¼ 하며, 그것ì„(바른 마ìŒê³¼ 바른 실천)ì„ ì‚¬ëž‘ê³¼ ì—°í•©(unity)ì„ í†µí•´ 보여줘야 한다”ê³  ë§í–ˆë‹¤. ì´ ì§€ì ì€ 기ë…êµì˜ ë§Žì€ ë¶€ë¶„ì—ì„œ, 특히 진보ì ì¸ 다양성 ì†ì—ì„œ ë„리 í¼ì§€ê³  있는 혼ë™ì„ ê±°ì˜ ì™„ë²½í•˜ê²Œ 요약한 것ì´ë‹¤.

ì´ëŸ¬í•œ 혼ë™ì´ ìƒê¸´ ì´ìœ ëŠ” 다양하고 ê·¸ ì¼ë¶€ëŠ” ì´í•´í•  만하다. 현재 활ë™í•˜ê³  있는 ë‹¤ìˆ˜ì˜ ì§„ë³´ì  ê¸°ë…êµ ìž‘ê°€ë“¤ì€ 1990년대 ë³µìŒì£¼ì˜ì—ì„œ 나왔다. ê·¸ ë³µìŒì£¼ì˜ê°€ 율법주ì˜ì ì´ê³ , 모호하고, 그리고 ìžê¸° ì˜ì— 사로잡혀 있었다면, ê±°ë¶€ë¼ ë§ˆë•…í•˜ë‹¤.

그러나 ì˜¤ë¥˜ì— ëŒ€í•œ ë°˜ìž‘ìš©ì€ ì™œê³¡ëœ ì‹ í•™ì„ ë§Œë“¤ì–´ë‚¸ë‹¤. 로버트 배런(Robert Barron)ì€ “그리스ë„ì˜ ìµœìš°ì„  사명: í¬ìŠ¤íŠ¸-ìžìœ ì£¼ì˜ ê°€í†¨ë¦­ì„ í–¥í•˜ì—¬”(The Priority of Christ: Toward a Post-Liberal Catholicism, Baker Academic, 2016)ì—ì„œ ìžìœ ì£¼ì˜ì™€ 중세 후기 기ë…êµì— 대해 ì´ë ‡ê²Œ 지ì í•œë‹¤. 

“초기 근대주ì˜ëŠ” 기ë…êµ ë¬¸í™” ì•ˆì— ìžˆëŠ” 억압ì ì´ê³  반계몽ì ì¸ íë¦„ì— ëŒ€í•œ ê±´ê°•í•œ 대ì‘ì„ ìžì²˜í–ˆë‹¤. 그러나 진정한 기ë…êµì˜ ë¶€íŒ¨ì— ë°˜ì‘하면서, ê·¸ ìžì²´ë„ 비슷하게 왜곡ë˜ê³  비대해졌다.” 건강하지 ì•Šì€ ë³µìŒì£¼ì˜ ì‹ ì•™ì— ëŒ€í•œ ì¼ë¶€ ë°˜ìž‘ìš©ë„ ì´ì™€ ë§ˆì°¬ê°€ì§€ë¼ í•  수 있다.

“orthopathy”는 다양한 ì •ì˜ê°€ 있는 ìš©ì–´ì¸ë°, ë³µìŒì£¼ì˜ 맥ë½ì—서는 보통 올바른 마ìŒê³¼ ìžì„¸ë¥¼ 가리킨다. 그리고 “orthopraxis”는 바른 ì‹¤ì²œì„ ê°€ë¦¬í‚¨ë‹¤. ë§í•  í•„ìš”ë„ ì—†ì´, 우리는 ê¸íœ¼í•œ 마ìŒì„ 가져야하며 윤리ì ìœ¼ë¡œ 올바르게 í–‰ë™í•´ì•¼ 한다. “아름다운 정통”ì´ë¼ëŠ” ìš°ë¦¬ì˜ í‘œì–´ë„ ì´ê²ƒì„ 분명하게 표명한다. ê·¸ëŸ°ë° ë°”ìš¸ì´ ëª©íšŒì„œì‹ ì—ì„œ 윤리ì ì¸ 권고로 넘어가기 ì „ì— ë§Žì€ ì§€ë©´ì„ í• ì• í•´ ì‹ í•™ì„ í™•ì‹¤í•˜ê²Œ 정리하는 ë°ëŠ” ì´ìœ ê°€ 있다: ìš°ë¦¬ì˜ ì¡´ìž¬ì™€ í•˜ë‚˜ë‹˜ì— ëŒ€í•œ ì§„ì‹¤ì„ ìš°ë¦¬ê°€ 모른다면, 우리는 ì´ì›ƒì„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기 때문ì´ë‹¤.

성(sexuality) ì •ì²´ì„±ì€ ìš°ë¦¬ 시대를 ê°ˆë¼ë†“ì€ ê°€ìž¥ 대표ì ì¸ ìŸì ì´ë‹¤. ì´ ë¬¸ì œì— ëŒ€í•œ ëˆ„êµ°ê°€ì˜ ì´í•´ ë°©ì‹ì€ 그가 가지고 있는 í•˜ë‚˜ë‹˜ì— ëŒ€í•œ, ì°½ì¡°ì— ëŒ€í•œ, ê³„ì‹œì— ëŒ€í•œ, 그리고 ì‹ í•™ì  ì¸ê°„í•™ì— ëŒ€í•œ êµë¦¬ì— ë”°ë¼ ë‹¬ë¼ì§„다. ì´ì— 대한 ê³ ì „ì ì´ê³  정통ì ì¸ ìš”ì•½ì€ CT 내부 ë¬¸ì„œì— ìž˜ í‘œí˜„ë¼ ìžˆìœ¼ë©°, 우리는 ì´ê²ƒì„ ìš°ë¦¬ì˜ ì§€ì¹¨ìœ¼ë¡œ 삼고 있다.

ì„±ê²½ì— ê°€ë¥´ì¹¨ì— ê¸°ì´ˆí•´ 그리고 특별히 예수님과 사ë„ë“¤ì´ ì‹ ì•½ì—ì„œ 확ì¸í•˜ê³  ê°•ì¡°í•œ êµ¬ì•½ì˜ ê°€ë¥´ì¹¨ì— ê¸°ì´ˆí•´, CT는 ì‚¬ëžŒì€ í•˜ë‚˜ë‹˜ì˜ í˜•ìƒìœ¼ë¡œ 남ìžì™€ ì—¬ìžë¡œ 창조ëìŒì„ 믿으며, 그리고 ì„±ì  í‘œí˜„ì€ ì¸ë¥˜ì˜ 번ì˜ì— 기여하ë„ë¡ ë‚¨ìžì™€ ì—¬ìžì˜ 언약관계 안ì—ì„œ ì´ë¤„져야 í•¨ì„ ë¯¿ëŠ”ë‹¤.

ì´ê²ƒì´ í•˜ë‚˜ë‹˜ì´ ì°½ì¡°í•˜ì‹  ì„±ì  ì¡´ìž¬ë¡œì„œì˜ ìš°ë¦¬ ì¡´ìž¬ì˜ í˜„ì‹¤ì„ í‘œí˜„í•˜ëŠ” 것ì´ë¼ë©´, 우리는 ì´ í˜„ì‹¤ 안ì—ì„œ 살아야 하며(바꿔 ë§í•˜ë©´, 남ìžì™€ ì—¬ìž ì‚¬ì´ì˜ 결혼ìƒí™œ ë°–ì—ì„œ ì´ë¤„지는 모든 ì„±ì  í‘œí˜„ì„ ê±°ë¶€í•´ì•¼ 하며), 다른 사람들ì—ê²Œë„ ê·¸ë ‡ê²Œ ì‚´ë¼ê³  장려하고 권고해야 한다. 성ì ì¸ ìƒí™œì€ 사ì ì¸ ì„ íƒì˜ 문제ë¼ëŠ” ì£¼ìž¥ì„ ë°›ì•„ë“¤ì¸ë‹¤ë©´, ê·¸ê²ƒì€ ê²°êµ­ 그렇게 ë§í•˜ëŠ” ì‚¬ëžŒì´ í•˜ë‚˜ë‹˜ê»˜ì„œ 계íší•˜ì‹  í’성한 ì‚¶ì„ ì‚´ 수 ì—†ë„ë¡ ë‚´ë²„ë ¤ë‘는 것ì´ë‹¤. ê·¸ëŸ°ë° ì˜ˆìˆ˜ë‹˜ì€, 요한계시ë¡ì˜ 마지막 장ì—ì„œ 우리보다 ë” ê°•ë ¥í•˜ê²Œ ë§ì”€í•˜ì‹ ë‹¤.

“나는 알파며 오메가, 곧 처ìŒì´ë©° 마지막ì´ìš”, 시작ì´ë©° ëì´ë‹¤.” ì´ë ‡ê²Œ ë§ì”€í•˜ì‹  ì˜ˆìˆ˜ë‹˜ì€ ì²œêµ­ ë„ì„±ì— ì‚´ê²Œ ëœ ì‚¬ëžŒë“¤ì—게 ë³µì„ ë‚´ë¦¬ì‹ ë‹¤(“ìƒëª…ë‚˜ë¬´ì— ì´ë¥´ëŠ” 권리를 차지하려고, 그리고 성문으로 í•´ì„œ ë„ì„±ì— ë“¤ì–´ê°€ë ¤ê³  ìžê¸° ê²‰ì˜·ì„ ê¹¨ë—ì´ ë¹ ëŠ” ì‚¬ëžŒì€ ë³µì´ ìžˆë‹¤”). 

바로 ì´ì–´ì„œ ì˜ˆìˆ˜ë‹˜ì€ ê·¸ ë„성 ë°”ê¹¥ì— ì–´ë–¤ ì‚¬ëžŒë“¤ì´ ë‚¨ì•„ 있는지 ë§ì”€í•˜ì‹ ë‹¤. “개들과 마술ìŸì´ë“¤ê³¼ ìŒí–‰í•˜ëŠ” ìžë“¤ê³¼ ì‚´ì¸ìžë“¤ê³¼ ìš°ìƒ ìˆ­ë°°ìžë“¤ê³¼ ê±°ì§“ì„ ì‚¬ëž‘í•˜ê³  행하는 ìžëŠ” 다 ë°”ê¹¥ì— ë‚¨ì•„ 있게 ë  ê²ƒì´ë‹¤”(계

ì´ ë§ì”€ì˜ í•µì‹¬ì€ ì£„ì˜ ëª©ë¡ì´ 아니다. ì£„ì˜ ìŠµê´€ì— ë¹ ì ¸ 있으면,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ê·¸ ì˜í˜¼ì´ ìœ„í—˜ì— ë¹ ì§„ë‹¤ê³  분명하게 경고하시는 것ì´ë‹¤. 하나님께서 ë‹¹ì‹ ì´ ì–´ë–¤ 분ì´ì‹ ì§€ 실제로 어떻게 보여주셨는지, 하나님께서 무슨 ì¼ì„ 하고 계시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ì—게 믿고 복종하ë¼ê³  하신 ê²ƒì´ ë¬´ì—‡ì¸ì§€, ì´ ì§„ì‹¤ì„ ìš°ë¦¬ê°€ ë§í•˜ì§€ 못한다면, 우리는 ê·¸ë§Œí¼ ìš°ë¦¬ ì´ì›ƒì„ 우리 ìžì‹ ì„ ì‚¬ëž‘í•˜ë“¯ì´ ì‚¬ëž‘í•˜ì§€ 않는 것ì´ë‹¤.

그렇다고, 우리가 곧장 달려 나가서 í•˜ë‚˜ë‹˜ì˜ ì‹¬íŒì´ ìž„í•  것ì´ë¼ê³  ìžê¸° ì˜ì— 사로잡혀 외ì³ì•¼ 한다는 ëœ»ì€ ì•„ë‹ˆë‹¤. 그렇게 해서는 안 ëœë‹¤. 우리는 민ê°í•˜ê²Œ, 지혜롭게, ì¸ë‚´ì‹¬ì„ ê°–ê³  ì´ì›ƒë“¤ê³¼ ê³„ì† ë§Œë‚˜ì•¼ 한다. 우리는 ê·¸ë“¤ì„ í•˜ë‚˜ë‹˜ì˜ í˜•ìƒìœ¼ë¡œ ì§€ìŒ ë°›ì€ ë‚¨ë…€ë¡œ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ê·¸ë“¤ì„ ì¡´ì¤‘í•œë‹¤ëŠ” 바로 ì´ ì‚¬ì‹¤ 때문ì—, 우리는 ì„±ë ¹ì´ ì¸ë„하시는 대로 기회 ìžˆì„ ë•Œë§ˆë‹¤ 우리 ì•ˆì— ìžˆëŠ” í¬ë§, 곧 하나님께서 êµíšŒì— 보여주신 길과 진리와 ìƒëª…ì˜ í˜„ì‹¤ì„ ê·¸ë“¤ì—게 설명해줘야 한다.

ê²°êµ­, 바른 실천(orthopraxis)ì„ ê°•ì¡°í•˜ë©´ì„œ 바른 정통êµë¦¬(Orthodoxy)를 재껴ë‘어서는 안 ëœë‹¤. ì •í†µì€ ìš°ë¦¬ê°€ ë¬´ì—‡ì„ ë¯¿ì–´ì•¼ 하는지를 가르ì³ì£¼ëŠ” ê¸°ì´ˆì¼ ë¿ë§Œ 아니ë¼, ë˜í•œ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가장 확고한 기초다.

 

07.27.2019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