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과 이단
1000년의 중세를 지내는 동안 교회는 큰 힘을 지니고 있었다. 유럽 전역에서 교회가 국가를 지배하기도 하였다. 하물며 교회 안에서 일어나던 일들에 대하여 강력한 정치 체제를 바탕으로 감시하고 조치를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교회가 이단으로 판단하고 정죄하면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었다.
중세 로마가톨릭교회는 새로운 도전을 맞게 되었다. 이미 카타리파를 이원론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그들의 교리가 확산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조치를 취하였다. 가난한 삶을 강조하면서 단일성을 파괴하는 새로운 분파가 출연하였다. 교회는 카타리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들이 교회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교회의 질서를 도전하는 위험한 이단으로 판단한 것이다.
중세 가톨릭교회가 상대를 정죄할 수 있던 것은 자신들이 정통이라는 확신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왈도파의 기본사상이 정통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았다. 그들이 교회의 질서에 순종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기 때문에 이단으로 낙인찍힌 것이다.
정통을 결정하는 절대적 규범은 성경말씀이다. 교회 역사 안에서 벌어진 수많은 사건들은 교회로 하여금 성경에 기록된 진리를 면밀하게 해석하게 하였다. 초대교회부터 시작된 신학논쟁은 잠시 교회로 하여금 어려움을 겪게 한 것이 사실이다.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중심으로 전개된 기독론 논쟁은 일찌감치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어떤 분인지에 대하여 교회가 올바로 고백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 주었다. 특히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역사적 교회 회의를 개최하여 확립된 진리는 정통과 이단을 구분하는 시금석이 되었다.
이단의 출현으로 인해 교회의 정통이 세워졌지만 그 후로 정통은 이단의 출현을 억제하는 도구가 되었다. 이단은 정통을 거부한다. 교회의 정체성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하나의 믿음을 지켜야 할 항목에서 교회는 정통은 이단을 수용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에서 중세교회가 왈도파를 완강하게 거부하였을까?
피터 왈도와 왈도파
중세시대에 등장한 왈도파(the Waldensians)는 피터 왈도(Peter Waldo, 1140-1205)라는 인물과 연관을 맺고 있다. 왈도는 프랑스 리용에서 성공한 상인이었다. 그가 30살이 되던 해인 1170년에게 큰 변화가 찾아왔다. 부유한 삶을 살던 그가 모든 재산을 정리한 뒤 청빈의 삶을 살기로 작정한 것이다.
역사가들은 왈도의 마음에 이런 변화가 찾아온 몇 가지 이유를 제안한다. 그 당시 유력한 시민의 죽음을 목격하였다. 4세기에 거지의 삶을 살았던 알렉시우스(Alexius)의 전설과 관계된 방랑시인의 노래를 들은 후 감동을 받았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자신의 구원에 대한 고민에 빠져있던 상황에서 복음서에 기록된 부자 청년에 관한 내용을 통해 회심을 경험한 것이었다.
왈도는 즉각 청빈의 삶을 실천하였다. 자신의 재산 중에 일부만 아내에게 나눠주고 나머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주었다. 딸 두 명은 수녀원에 보냈다. 이런 결단을 내린 중심에는 그가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그의 변화된 삶은 주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도 남았다. 1173년경부터 그와 마음을 같이하던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왈도는 주로 신약 본문을 중심으로 설교하였다. 청빈의 삶은 왈도파에 속한 자들의 기준이 되었다. 이들 역시 자신들에게 주어진 영적 임무를 다하다보니 방랑설교를 행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회개운동을 전개하게 된 것이다.
개혁 사상
왈도파는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의 입장에서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들이 주장하는 새로운 사상이 교회의 정통을 거부하고 분열을 조장한다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교회의 입장에서 왈도파를 위험한 대상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던 것은 그들이 성경과 교부들의 글을 자국어로 번역하였다는 것이다.
왈도파의 입장에서 번역된 성경이 필요했던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자신들의 신앙 때문이었다. 그리스도를 닮기 원하던 그들은 성경을 이해하고 암송하길 원했던 것이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로마교회를 대항하여 자국어로 성경을 번역해야 한다고 외쳤다. 성경말씀을 통해 삶이 변화되고 신앙이 지속되는 원동력이 되기를 소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세 로마가톨릭교회가 이단으로 정죄한 왈도파는 종교개혁의 선구자였음에 틀림이 없다.
1179년에 제3차 라테란 종교회의가 소집되었다. 그 당시 가톨릭교회가 카타르파의 출현에 대하여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그들을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왈도파도 이 회의에 참석하여 자신들이 프랑스어로 번역한 성경을 교황에게 헌정했다. 그 당시 성경을 교회의 전유물이라고 확신하고 있던 교황 알렉산더 3세는 그들을 받아들일 마음이 전혀 없었다.
처음 알도파에 속한 평신도들이 방랑설교를 실시할 때에는 방관하였지만 사람들의 호응을 얻어내자 그들의 활동을 중단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에 그들은 교황에게 설교 허락을 요청하였다. 이에 대하여 성직자의 승인을 받는 것을 조건으로 계속 설교할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상황이 바뀌었다. 대주교가 적극적으로 나서 설교를 금지시킨 것이다. 결국 가톨릭교회는 1184년에 개최된 베로나공의회에서 왈도파를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그 후 그들은 유럽 전역에서 핍박을 받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순교의 피를 흘리는 자들의 수가 많아졌고, 깊은 골자기와 높은 계곡을 찾는 고통을 감수하여야 했다. 정통을 주장하는 가톨릭교회는 왈도파를 교회로부터 분리되어 나간 이단으로 간주하고, 그들을 박멸하기로 작정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12세기에 시작된 왈도파 운동의 개혁정신이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의 사상과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랄 뿐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신앙을 위해 성경을 교회로부터 성도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확신하였다. 그들은 알도파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부와 절대적인 세력을 지닌 체제를 대범하게 도전하였다. 또한 교회로부터 떨어져나갈 의도가 없었음에도 이단으로 정죄하고 핍박을 가하였다.
이단 정죄된 왈도파는 종교개혁과 일치된 사상 가져...위그노와 연합
청빈의 삶, 자국어성경번역 주장, 고백서는 중세교회 중심교리에 도전
왈도파 고백서
역사적 관점에서 왈도파의 영향력은 지대하였다. 무엇보다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도미니크와 프란시스 탁발수도회를 공식으로 인정한 배경이 되었다. 교회가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각성하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재차 확인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나아가서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칼빈의 개혁신학을 따르던 프랑스의 위그노와 연합하였다. 이와 같이 왈도파는 초대교회 교부와 칼빈의 종교개혁 사이를 잇는 교량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우리는 1120년에 작성한 왈도파 신앙고백서(The Waldensian Confession of Faith)를 통해 그들의 사상을 요약한 명확하게 접할 수 있다. 모두 14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 1-8은 왈도파가 초대교회에서 영지주의, 양태론, 양자론 등의 이단의 출연으로 인해 니케아 신조를 통해 확립된 기독론과 갑바도기안 신학자들에 의해서 형성된 삼위일체 교리를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후반부 9-13은 중세교회의 중심교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개혁정신을 분명히 담고 있고, 14는 그들이 국가에 대한 건전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이 귀한 자료를 소개한다.
1. 우리는 사도신경에 나오는 12조항의 모든 내용을 믿으며, 이와 모순되는 것을 이단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2. 우리는 하나님, 곧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을 믿는다. 3. 성경은 거룩한 정경이다. 4. 성경은 전능하시고, 지혜와 선이 무한하며, 선으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유일신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과 모양으로 아담을 창조하셨다. 그러나 그는 사탄의 유혹에 의해 불순종함으로 타락하게 되어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 우리는 아담 안에서 범죄자가 된 것이다. 5. 하나님은 옛 선조들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들은 율법, 불의, 연약함을 통하여 죄의 심각성을 깨달았고, 그리스도의 도래를 기다렸으며, 그리스도가 오시어 율법을 완성하셨다. 6. 성부께서 정하신 때가 되어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탄생하셨다. 그는 우리가 어떤 선함도 없는 죄인임을 밝히 보여주셨다. 그는 진실하신 분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보여주셨다. 7.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 진리, 평화, 우리의 목자, 변호인, 희생제물, 제사장이 되신다. 그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죽으시고, 의를 위해 다시 부활하셨다. 8.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우리와 성부 사이에 아무 중보자나 변호인가 없다. 동정녀 마리아는 거룩하고, 겸손하고, 은혜로운 분이다. 모든 성도들의 영혼은 하늘에서 자신들의 육체가 부활할 심판 날을 기다리고 있다.
9. 이후 세상에는 두 장소가 있다. 하나는 구원받는 자들을 위한 장소이고, 다른 한 곳은 멸망 받을 자들을 위해 예비한 장소이다. 전자를 낙원, 후자를 지옥이라 한다. 우리는 거짓된 적그리스도가 지어낸 낸 연옥을 부인한다. 10. 인간이 지은 모든 고안물들은 하나님 앞에 가증하다. 우리는 축일, 축일 전야, 성수, 특정한 날에 육체를 학대하는 일 등과 미사를 혐오한다. 11. 적그리스도에게서 온 모든 인간의 고안물들을 미워한다. 그것들은 인간의 마음을 빼앗는다. 12. 성례는 성물을 상징하며, 불가시적 축복의 전형이다. 이러한 상징이나 형식이 신자들에게 필요하지만, 이런 상징을 소유하지 않은 신자도 구원을 받는다. 13. 세례와 성찬 외에는 성례가 없다. 14. 세속적 권력을 존중하고 복종하며 법을 엄수하고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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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