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내는 믿음

살아내는 믿음

몇주전 학생들과 함께 학과과정 중의 하나인 도시체험 과목에 참여하였다. 한인 타운에 있는 호텔에 3박4일을 머물면서 타문화와 노숙자 문화를 경험하고 교회가 어떻게 타문화권과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고려하여 사역할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과목이다. 이번 학기에는 각 그룹이 정한 문화를 경험하러 가는 것 외에 수강하는 전체 학생들이 함께 가이드를 받으며 두 곳을 방문하였다. 처음 함께 간 곳은 우리 한국어 프로그램 캠퍼스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한 Wilshire Blvd Temple이었다. 

윌셔 길에 위치한 유대인 회당은 차를 타거나 걸어서 수없이 지나다닌 곳이지만 막상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다. 회당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절차가 있었다. 파킹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security check office에서는 들어가는 차마다 운전자의 신분을 확인한 후에 들여보냈다. 걸어서 간 우리 그룹은 스무 명이 넘었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의 운전면허증을 다 걷어서 신분을 일일이 확인한 후에 건물에 들여보내는 철저한 보안을 하고 있었다. 마치 중요한 정부기관 건물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 모든 사람에게 문이 열려있는 교회와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그렇게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게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회당 자체가 엄청난 자산일 뿐 아니라 유대인을 혐오하는 테러에 대한 방지인 것 같았다. 

회당은 1929년에 건축했지만 2011년부터 2년 동안에 걸쳐 다시 벽화 등을 복구하고 리모델링을 하였다고 한다. 보수, 수리 공사에 들어간 비용만도 상당했을 것 같은데 우리를 안내한 분의 말에 의하면 그 회당 멤버 중 1/3이 변호사라고 하니 그 회당이 얼마나 경제적으로 풍부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성전 안의 천장이나 벽화 등 모든 것들은 압도될 정도로 아름다운 예술이었다. 천장 주위에 그려져 있는 벽화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부터 구약의 주요 인물들의 성경에 나오는 스토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성전 밖 복도에는 유대인들이 한인사회를 포함한 지역사회를 위해서 하고 있는 안과 봉사, 시민권시험 봉사 등이 열거되어 있었다. 

그 다음 날 아침에는 노숙자를 돕는 단체인 LA미션을 방문하였다. 지하철에서 내려 그곳을 향해 걸어가는 길 곳곳에도 노숙자들이 이미 눈에 많이 띄었다. LA미션에 도착해서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코를 찌르는 냄새에 갑자기 숨쉬기가 어려웠다. 여기 저기 앉아 있는 노숙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서서히 숨을 고르며 그 냄새에 적응하느라 한동안 힘들었다. 

LA미션은 기독교 단체여서 건물 안에는 예배실이 두 곳이나 있었다. 우리를 안내한 분은 친절하게 식당, 세탁실, 직업알선을 위한 사무실, 직업기술을 위한 컴퓨터실 등을 보여주었다. 특별히 식당에서는 노숙자들에게 하루에 1,600 그릇의 따뜻한 식사를 제공한다고 하였다. 주방을 담당하는 대표 요리사는 나이가 지긋한 흑인 할아버지였는데 본인이 알코올중독자로서 노숙자였다가 복음을 듣고 변화된 후 새 삶을 사는 분이었다. 

그래서 노숙자들을 위한 미션에서 음식을 제공하는 일에 오랜 기간 성실하게 앞장서신 것이다. 점심식사를 준비 중이었는데 음식이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예배당 안에 들어가 보니 그 전날 방문했던 유대인회당의 성전처럼 그곳 천장도 둥근 형태의 돔이었지만 화려하고 아름다운 유대인 회당의 성전과는 정말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LA미션의 예배당 안 강단 옆에는 성경말씀 두 구절이 쓰여 있었다. 마태복음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라는 초청의 말씀과 요한일서의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이라는 회개에 따른 사죄를 약속하는 말씀이었다. 대부분 술과 마약에 찌든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도전일 노숙자들에게 정말 알맞는 말씀이었다. 

LA미션을 돌아보며 내 마음에 가장 닿아온 것은 우리를 안내하는 분이 노숙자들을 향한 여러 시설, 서비스를 설명하면서 노숙자들을 게스트(손님)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요즈음처럼 기독교가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을 많이 받아도 이렇게 조용히 예수님의 마음으로 연약한 사람들을 섬기는 진실한 크리스천들이 있다는 것이 마음에 도전으로, 또 기쁨으로 느껴졌다. 

너무나 대조적인 두 장소를 연이어 방문하면서 엄청난 부를 갖춘 유대인들의 봉사도 좋은 일이지만 예수님이 빠진 봉사는 결국 가진 자가 없는 자를 불쌍하게 여기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유대인으로서의 자부심에서 나오는 봉사와 예수님의 긍휼의 마음을 품은 삶으로 살아내는 믿음의 봉사는 근본이 다르기 때문이다.     

  lpyun@apu.edu

 

04.06.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