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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교회 1000년 - 어둠에 잠긴 구속역사의 현장 (29)

하나님께 더 가까이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다. 그가 자신을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일반 계시, 즉 창조된 세계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나타내신다. 그리고 특별 계시, 즉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 말씀을 통해 분명하게 자신을 알게 하셨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구원을 베푸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기도란 무엇인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일이다. 기도는 성도들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게 된다. 하나님을 향한 길이 열려진 것을 인식하고, 수시로 그에게 나아간다. 하나님은 전심으로 자신을 찾으며 다가오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그러므로 초대교회가 세워진 이후, 기도는 공적 예배와 개인 신앙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

교회 역사의 흐름 속에 다양한 전통이 세워졌다. 그 중에 하나가 기도에 관한 것이다. 즉, 기도의 내용과 실천 방법에 대한 다른 견해들이 교회 안에 있었다는 것이다. 현대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대표적인 예를 한 가지 들자면, 큰 소리를 내는 통성기도와 입술을 열지 않는 침묵기도 사이의 갈등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기도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려하는 의도는 동일하지만 자신의 기도 형식이 옳다고 확신하는 만큼 다른 방법에 대하여 쉽게 정죄하는 형편이다.  

초대교회에 시작된 공동 수도생활은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을 중시하며 출발되었다. 특히 수도회를 창건하고 규칙을 만들어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누르시아의 베네딕트 (Benedict of Nursia, 480-543)는 수도사들의 경건생활을 위해 렉치오 디비나(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를 정착시켰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그들은 먼저 성경을 주의 깊게 읽었는데, 눈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온 마음을 집중하여 소리 내어 읽었으며 마음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였다. 그 다음에는, 자신이 마음에 담은 말씀을 묵상하였다. 따로 시간을 정하여 읽었던 말씀을 기억하면서 그 의미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으로, 성찰로 얻어진 말씀의 내용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었다. 

이미 우리가 앞서 살펴본 대로, 중세교회 수도원의 역사는 부의 축적 및 로마교황청과의 정치적 관계 속에서 생겨난 타락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룬다. 시토회가 출현하여 무너진 전통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였지만, 이전의 형태로서의 경건생활을 회복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더욱이 탁발수도회의 출현으로 인하여 성경을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가 변화가 되었다. 마음으로 읽는 것을 강조하던 과거의 수도원 전통이 서서히 사라졌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던 전통을 대신하여 이성과 철학을 중시하는 학문적인 접근방법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중세교회 안에서 스콜라신학이 발전되고 그 영역이 넓혀지면서 교회의 전통과 의식이 더욱 강조되는 상황 속에서 영적으로 목말라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차갑고 메마른 신학에 대한 반작용은 어느 시대에서나 있었지만 워낙 막강한 힘을 지녔던 중세교회를 향해 어떤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었다. 그 결과 기도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를 원하던 자들 중에 신비주의적인 신앙에 마음을 쏟는 자들이 생겨났다. 영적 갈증에서 시작된 신비주의에 입각한 기도가, 후대 교회에 끼친 부정적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부분의 역사를 비평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관상 기도-아빌라의 테레사  

 

중세교회 말기에 신비주의적 체험을 중시하였던 아빌리의 테레사(Teraera of Avila, 1515-1582)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녀는 14세에 어거스틴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은 신앙인이었다. 19세가 되는 해에 수녀가 된 후 정성을 다해 환자를 돌보다가 자신이 병에 걸리게 되었는데, 병중에 영적 황홀감을 경험하게 되었다. 병에서 회복된 뒤 그녀는 성경과 교부의 글을 읽는 일에 집중하였으며, 신비한 체험과 환상을 경험한 뒤 과거와 같은 엄격한 수도생활의 규율에 입각하여 운영되는 수도원을 세우려는 계획을 세웠다. 결국 로마교황청의 허락을 받아 성 요셉 수녀원을 시작으로 다수의 남, 녀 수도원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테레사의 주된 관심은 기도의 체험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었다. 결국 그녀가 찾은 답은 이전의 묵상기도와 다른 관상기도였다. 묵상기도는 우리의 생각을 사용한다. 성경을 읽고 암송하면서 사고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생각에 집중하며 그에게 나아가는 방법이다.

관상기도는 묵상과 달리 자신의 생각을 넘어 자신을 철저히 비우는 것을 중요시 한다. 관상기도는 관상에 이르는 길이며, 관상이 최종 목표이다. 그렇다면 관상이란 무엇인가? 성경에는 관상이란 용어가 없다. 그러나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초대교회 교부들 중에 창조물에서 하나님의 흔적을 찾는 행위에 대해 ‘자연 관상’이란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자신을 드러내신 자연 안에 계신 하나님을 관상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이 신비한 일을 통해 기도자의 마음이 정화되고 금욕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그들의 주된 관심은 어떻게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고 그와 하나가 되느냐에 있었다.  

어원적으로 관상이란 실체의 내면을 바라본다는 의미이다. 즉 관상은 기도의 과정을 걸쳐 하나님을 만나 그와 함께 머무르는 신비한 체험이다. 테레사가 강조하였던 관상기도의 여정이, 그녀가 저술한 ‘영혼의 성’에 잘 밝혀져 있다.

가장 처음에는 입술로 기도한다. 이 기도를 통해 자신 마음에 담겨져 있는 소원을 하나님께 드린다. 그 다음 이성을 사용하는 묵상인데, 곧 이어서 자발적으로 사랑이 우러나도록 하게하는 정감의 기도가 따른다. 그 후에 자신을 비우는 기도가 시작된다. 

먼저 능동적으로 사랑으로 채워진 단순한 마음을 갖는 기도를 하게 되면 그 다음 초자연적인 주부적(infused) 관상 기도가 가능하게 된다. 이 정도가 되면 인간의 인식 세계를 넘은 신비한 경지에서 기도를 드리게 된다. 이때 정적의 기도로 전적으로 수동적 자세를 취하게 되는데, 그 다음 단계가 하나님과 일치가 되는 것이다. 이때 성도는 하나님이 전적으로 믿음의 주가 되심의 신비한 변화를 체험하게 된다. 

자아를 잃어버리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존하는 상태에 이르러 침묵하며 머무르는 경험은 곧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신비한 경험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고 있다.  테레사의 관상기도는 신비주의의 극치를 이룬다.   

 

관상주의 전통-동방과 서방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아빌라의 테레사의 관상기도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중세교회의 역사를 뒤돌아 볼 때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이미 14세기에 관상주의 논쟁이 동방교회에서 벌어진 바 있다. 그 중심에 두 사람, 즉 세미나라 사람 발람(Barlaam of Seminara, 1290-1349)과 관상주의자들의 기도법과 친숙했던 그레고리우스 팔라마스(Gregory Palamas, 1296-1359)가 있었다. 

두 사람간의 논쟁은 약 20년 동안 지속되었다. 발람이 지적하는 관상주의자들의 치명적인 오류는 그들이 신성한 빛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는 빛이 곧 하나님 자체라고 간주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빛으로 경험하는 것과, 나아가서 그들이 주장하는 몸의 자세와 호흡법이 매우 신비주의적이라는 것이었다. 이미 주어진 성경과 교회의 성례전을 통해 하나님을 분명하게 경험할 수 있으며, 교회가 중추적으로 이 역할을 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팔라마스는 발람의 지적에 대해 신성한 빛을 경험하는 것은 능동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하였다. 아무리 하나님과 교제를 원하여도 오직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여주시는 방법과 한계 안에서 경험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관상을 통해 경험하는 신령한 빛은 발람이 언급하듯 하나님의 창조물이 아니라 그 자체가 창조되지 않은 하나님의 본성이다. 즉, 빛을 경험하는 것은 분명 신비 속에 하나님 자신을 경험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존재 자체 보다는 그의 생명력과 만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본성과 속성을 공유하고 참여하는 신비한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아무쪼록 14세기 중반 이후 그리스정교회는 발람이 아닌 팔라마스의 견해를 수용하였다. 이후로 동방교회는 서방교회와 매우 다른 신앙의 길을 선택하여 신령한 빛에 대한 경험을 중심으로 신비주의적 신앙이 발전하게 되었다.  

서방교회에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1260-1328)의 신비주의를 이단으로 정죄하였지만, 그 후로도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자들이 그의 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켰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니콜라우스 쿠자누스(Nicholas of Cusanus, 1401-1464)이다. 그는 ‘하나님을 바라봄에 대하여’라는 작품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는 길은 먼저 자신에 대한 자각을 포기하고 자신을 무지한 자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에크하르트로부터 영향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이성적인 수고를 초월한 순수한 신비적인 연합을 가능하게 한다. 

쿠자누스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형된다”는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 전통을 따랐다. 그러나 그가 교회로부터 이단 혐의를 받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용어 사용에 주의를 기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라봄, 즉 관상을 통해 기도자가 최고의 영적 경험인 “하나님을 닮는다”라고 표현하였다. 

중세교회에 나타난 신비주의의 역사는 지금도 우리 주위에 영적 유혹거리가 널려 있다는 경각심을 갖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관상주의자들의 주장과 같이 직접 하나님을 경험하는 길을 열어놓은 적이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을 간구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라.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과 교제를 우선순위를 삼고 지속하도록 하라.                           

covenantch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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