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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향기

지난 연말에 며칠 간 조용한 시간을 가지러 타주에 다녀왔다. 집을 떠나면 음식이 바뀌어서 그런지 한 번씩 소화가 안 되고 배가 답답할 때가 있다. 체한 것도 아니고 배탈이 난 것도 아닌데 아무튼 배가 불편한 그럴 때는 정로환이라는 한국 약이 제일 효과가 있다. 옛날에는 냄새가 강한 까만 환으로 나오던 약이 어느 때 부터인가 핑크 빛 당의정으로 나와서 먹기에 훨씬 부담이 덜해졌다. 마침 여행을 떠나기 바로 전에 한국 약국을 지나갈 일이 있기에 정로환을 하나 달라고 했다. 집에 와서 열어보니 당의정이 아니고 까만 환약이 들어 있었다. 당의정으로 달라고 말해야 했던 것을 몰랐던 것이다. 

한 병 다 가져갈 일은 없는 것 같아서 몇 알만 샌드위치 백에 챙겨 넣었다. 그런데 문제는 공항으로 가는 길부터 시작되었다. 공항에 데려다 주러 같이 간 딸이 엄마 가방에서 너무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토할 것 같다고 난리를 하는 것이었다. 정로환 냄새가 원래 강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구역질나는 냄새는 아닌데 아마 우리 딸에게는 그 냄새가 생소하고 강해서 역겨운 것 같았다. 비행기 옆 자리 손님에게 폐가 될까봐 공항에 내리기 전에 손가방에 있던 정로환을 꺼내서 러기지 백으로 옮겼다. 공항 검색대에서 러기지 백 안에 넣은 보온주머니가 걸리는 바람에 가방검사를 해야 했다. 가방을 여니 역시 정로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직원에게 미안해서 한국 약인데 냄새가 좀 강하다고 묻지도 않는 설명을 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가방을 풀어보니 정로환이 들어 있던 가방 주머니에도 냄새가 배어 있었다. 방에서 냄새가 날까봐 버리고 싶었지만 혹시 배가 아플지도 모르는 일이어서 조금이라도 냄새를 막아 보려고 칫솔을 넣는 플라스틱 통에 넣어서 옷장 제일 구석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플라스틱 통도 별 도움이 안 되어서 결국은 머물던 집 차고 한 쪽에 갖다 놓았다. 며칠 지내는 동안 정로환을 먹을 일이 없이 잘 지냈다. 집으로 돌아오던 날 아침에 집 주인 권사님이 밖에 쓰레기통에 버려줄 테니 놓고 가라고 해서 드디어 그 골칫거리 정로환과 작별을 했다. 집에 와보니 같은 가방에 있던 수면용 안대에도 정로환 냄새가 배어 있었다. 세탁기에 빨았는데도 그 냄새는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정로환은 아마 약이 담겨 있는 까만색 유리병 안에 있어야만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는 것 같았다.  

재미있게도 그곳에서 조용한 시간을 갖는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고린도후서 2장 14절,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라는 구절이었다. 정로환 냄새로 시달리고 있는 동안 유머가 가득한 하나님은 내게 냄새에 관한 말씀을 주셨다.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는 정로환처럼 안 좋은 냄새가 아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변화된 우리의 냄새는 향기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수질이 좋지 않아서 샤워를 자주 안했기 때문에 유럽에서 향수가 많이 발달했다는 말도 있지만 사람들은 향수를 뿌림으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유명한 향수도 시간이 지나면 그 냄새가 날아간다. 반면에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는 시간이 갈수록 더 주님을 닮아가는 우리의 삶에서 풍기는 아름다운 향기이다. 

작은 몇 알의 정로환이 그렇게도 강한 냄새를 풍기는 소동을 겪으면서 나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디를 가든지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낸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주님을 알고 사랑하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다른 사람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생명의 냄새가 되어야 할 텐데 정로환처럼 인상을 쓰게 만드는 냄새가 되면 하나님의 이름까지 훼방을 받을 것이다. 감출래야 감출수도 없고 꽁꽁 묶어서 구석지에 숨겨 놓아도 퍼지던 정로환 냄새처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향기가 되어 우리가 가는 곳마다 전해진다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가. 샤넬 넘버5에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이 주시는 향기로서 오늘도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lpyun@ap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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