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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먹기

눈물먹기

7월은 마음 아픈 달이었다. 매년 7월 첫 주에 시카고 위튼칼리지에서 열리는 코스타에 참석한지가 8, 9년은 된 것 같다. 코스타는 올해로 31년의 역사를 지녔다. 처음 시작은 그 당시만 해도 초이스 학생들이었던 유학생들을 복음화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유학생 중심의 복음운동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세계 곳곳으로 확산도 되었고 또 구성인원에도 변화가 있어서 이제는 대학원생들 뿐 아닌 나이 든 부모들이 중, 고등부 코스타가 좋다는 말에 자녀들을 데리고 참석하기도 한다. 그동안 자녀양육에 관한 세미나를 인도하는 일이 주된 일이었지만 때로는 스몰그룹을 인도하는 조장들의 멘토 역할을 감당하기도 하고 전문 상담가의 숫자가 모자라면 진로, 가정문제 등을 상담하기도 했다. 코스타의 특징 중 하나는 강사들에게 숙식은 제공하지만 강사료가 없고 항공료도 강사들이 자비로 부담을 한다. 사박오일동안 40년 전 대학시절 기숙사 생활을 연상하게 하는 기숙사에 머물면서 제대로 잠도 못자고 강의로, 상담으로 종종거리고 다니는 것에 체력의 한계를 느끼면서도 또 다시 가게 되는 것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섬기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때때로 내가 전혀 계획하지 않았던 만남을 통해 하나님께서 다른 영혼을 권면하시고 치유하시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가슴 가득한 감사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이도 있고 올해를 마지막으로 코스타에 그만 참석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시카고로 향했다. 조장 훈련이 끝나고 참석자들이 도착한 첫날, 멘토 카톡방에 한 청년이 암 4기인데 누가 만나주겠느냐고 묻는 글이 올라왔다. 그 다음 날 아침 멘토 모임에서는 4년반을 암으로 투병하면서도 매년 코스타에 참석했던 한 자매가 작년 겨울 소천했는데 남편이 아이들 둘을 데리고 와서 힘들어한다고 보고가 들어왔다. 나는 암 전문가도 아닌데 암으로 오래 전 남편을 보낸 경험, 또 2년 전에 조카같이 돌보던 한 청년을 보낸 경험 때문인지 그 두 사람을 만나는 것이 당연히 내 몫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막상 내가 그 두 사람을 만나서 할 수 있었던 것은 별로 없었다. 아내를 보내고 어린 두 아이들을 돌보며 눈물 흘리는 아빠에게 할 말이라고는 하나님께서 암흑의 시기에 내게 보여주셨던 그 분의 나라에 대한 확실한 소망과 아직까지 우리 가족의 삶을 인도해 오신 그 분의 신실함뿐이었다. 췌장암이 전이된 우리 막내보다 한 살 많은 서른도 안 된 청년에게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를 함께 드린 것뿐이었다.

성경은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하셨다. 필립 얀시는 사역에서 다른 사람에게 민감하다는 것은 누군가의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고 고통당하는 사람의 눈물을 함께 먹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고통 앞에서 한없는 무력감을 느낄 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는 것뿐이라고 해도 그것이 고통을 당하는 우리의 이웃에게 힘이 된다면 우리는 아프더라도 다른 사람의 고통에 노출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들의 풀같이 바람이 불면 시들고 그 자취도 없을 지나가는 인생, 그러나 짧은 땅위에서의 삶 동안 주님을 만나게 하시고 그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찬양과 경배의 삶을 살게 하신 하나님이다. 죄의 값으로 찾아온 죽음과 고통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서 아픔을 당하는 지체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한 모습으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만 바라본다하여도 우리의 형제, 자매들이 우리가 그들과 함께 먹은 눈물로 힘을 얻고 믿음의 여정을 걸을 수 있다면 마음이 힘들고 아프다 해도 우리는 함께 눈물을 먹는 일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lpyun@ap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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