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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그런 뜻이었어?

성경에서는 아가페와 에로스, 필레오의 구별이 없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씩 물으셨다. 이에 베드로는 세 번 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본문(요21:15-17)의 헬라어를 살펴보면 여기에서 사용된 사랑이라는 단어가 같은 단어가 아닌 것을 발견하게 된다.

첫 번째 질문과 대답: “네가 나를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사랑하느냐?” “저는 주님을 필레오적인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두 번째 질문과 대답: “네가 나를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사랑하느냐?” “저는 주님을 필레오적인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세 번째 질문과 대답: “네가 나를 필레오적인 사랑으로 사랑하느냐?” “저는 주님을 필레오적인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 하나님의 영원무궁한 사랑, 하나님의 다함이 없는 사랑, 그것을 히브리어로 헤세드라고 하고, 헬라어로 아가페라고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이 바로 이러한 사랑이다.

필레오는 친구간의 사랑이나 이웃 간의 사랑을 말한다. 그것은 절대적인 사랑이 아니다. 무조건적인 사랑도 아니다. 변함없는 사랑도 아니다. 영원한 사랑도 아니다.

예수님과 베드로가 주고받은 질문과 대답 속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원하신 사랑은 아가페적인 사랑이었는데 베드로는 예수님을 필레오적인 사랑으로밖에 사랑하지 못한다고 고백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말 성경으로만 봐서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에 베드로가 “예,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상 베드로는 “아닙니다. 저는 주님이 저에게 바라시는 만큼의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대답한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서 가끔 설교를 하면서 아가페와 필레오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 헬라 철학에서는 사랑을 아가페, 필레오, 에로스(이성간의 사랑), 스톨게(자연적인 사랑, 가족 간의 사랑) 등으로 구분하지만, 이러한 사랑에 대한 철학적 구분이 예수님 당시에는 없었다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 전후 200-300년 동안은 아가페와 에로스, 필레오 같은 단어들이 서로 혼용되어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간음이라 음란한 관계, 통간 같은 것을 지칭할 때도 아가페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성경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필레오)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요5:20).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필레오) 또 나를 하나님께로서 온줄 믿은 고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필레오)”(요16:27).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필레오)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요20:2).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아가페)”(마22:39).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아가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아가페) 아버지의 사랑이(아가페)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2:15).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아가페)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딤후4:10).

하나님이 예수님을, 그리고 예수님이 제자들을 아가페적인 사랑이 아니라 필레오적인 사랑으로 사랑하셨다고 되어 있다. 반면 우리는 이웃을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사랑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데마는 세상을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사랑했다고 했다. 세상적인 사랑, 육체적인 사랑, 탐욕을 쫓는 사랑, 세속적인 사랑을 아가페라는 단어로 표현하였다. 우리는 여기에서 성경이 아가페와 필레오를 특별한 구별 없이 서로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남녀 간의 사랑을 의미하는 에로스라는 단어를 신약성경에서는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 성경에서도 에로스라는 단어는 세 번밖에 사용되지 않았다).

예수님과 베드로가 주고받은 대화 속에서도 아가페와 필레오는 특별한 구분 없이 그냥 사용된 단어였던 것이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사랑할 것을 요구했으나, 베드로는 필레오적인 사랑으로밖에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했다는 식의 해석은 곤란하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그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질문하셨던 것이고,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그의 사랑을 확인시켜 드린 것으로 이해해야지, 헬라어의 차이를 가지고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 것은 넌센스이다.

한 가지만 더 언급하면, 예수님은 헬라어로 말씀하시지 않고 아람어를 사용하셨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아람어를 복음서 기록 과정에서 헬라어로 옮긴 것이다. 아람어에는 아가페나 필레오 같은 구분이 없다. 예수님은 헤세드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을 것이고 복음서 기록과정에서 별 뜻 없이 아가페나 필레오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jinhlee1004@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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