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신앙이란 어떤 것일까? 무엇보다 객관성과 주관성이 조화를 이루는 신앙이어야 한다. 객관적 신앙인은 성경이 가르치는 보편적인 신앙의 내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주관적 신앙인은 진리를 아는 일보다 개인의 신앙적 체험에 중점을 둔다. 만일 둘 사이의 조화가 깨지면 기형적인 신앙인이 된다. 주관성을 상실하면 형식주의자가 되고, 객관성을 경시하면 신비주의자가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경건한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훈련을 받아야 한다.
질문: 성도는 영적 공동체인 교회와 어떤 관계 속에서 개인의 경건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까?
1) 교회 역사를 보면...
■ 교회 공동체와 성도의 경건
신약 교회는 오순절 성령의 강림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렇다 할 정착기도 없이 성령의 강한 역사를 통하여 복음이 영적 황무지를 향해 퍼져나갔다. 여기에서 영적 황무지라 함은 단순히 복음을 들어본 적이 없는 자들이 있는 땅을 말하는 것 이상이다. 이방 종교에 대한 일반적인 배타적 상황이나 세속화된 문화로 인하여 도저히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 그리고 기독교를 의도적으로 핍박하거나 대적하는 경우를 꼬집어 말한다.
313년에 종교의 자유가 도래하기 전,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경건한 삶을 위해 교회 공동체에 크게 의존하였다. 교회는 신앙의 훈련장이었다. 사도들의 신앙을 전수받은 교부들과 지 교회 지도자들은 "신앙의 내용"을 "신앙의 실천"을 교육시키는 일에 몰두하였다. 내적으로는 거짓 교사와 이단의 출현으로 인해 성도들이 현혹되지 않고 신앙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힘써 도왔다. 외적으로는 기독교 신앙을 적극적으로 변증하였다. 신약 성경의 정경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 속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교회 공동체를 통해 경건한 삶을 훈련받았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이 세상을 향한 '증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확신을 잃지 않았다. 증인의 삶이란 단순히 불신자들에게 입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명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삶 자체를 가리켰다. 그들이 붙잡은 믿음의 도리가 세상의 어떠한 가치와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것임을 드러내야 했다. 개인과 공동체가 핍박과 순교를 피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경건의 삶이란 '증인'으로 사는 것이었다.
초대교회는 사도 시대부터 충실한 '증인'이 되기 위하여 반드시 성령을 의지할 것을 가르쳤다. 성령은 죄인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을 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성도들은 경건한 삶을 위하여 반드시 성령을 의지하여야 했다. 내주하시는 성령의 능력과 은사를 통하여 그들을 향해 영적 횡포를 부리던 세상의 적들을 이겨낼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성도들은 교회를 절대적으로 의지하였지만, 동시에 각 성도는 교회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각종 신령한 은사를 폭 넓게 활용하기도 하였다.
필립 샤프는 신령한 은사를 세 종류로 구분하여 소개하고 있다. "첫째, 지적 은사들로서 성격상 주로 이론적이고, 교리와 신학에 관련된다. 둘째, 정서적 은사들로서 주로 예배와 직접적인 건덕에서 나타난다. 셋째, 의지의 실제적인 은사들로서 교회, 조직, 정치, 권징에 관련된다. 그러나 은사들은 추상적으로 구분되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공동의 목적을 위해서 조화롭게 함께 작용한다"(교회사 전집 I, p. 350).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나타난 성령의 역사는 개인의 경건한 삶을 위해 필수적이었고, 나아가서 경건한 개인들은 신앙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 성도의 경건과 하나님의 개입
초대교회 교부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본받아 초대교회의 전통을 유지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교부들은 성도들이 신앙 공동체라는 울타리의 보호를 받으며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하였으며, 나아가서 공동체를 이루는 다른 성도들을 위해 자신의 은사를 사용하도록 가르쳤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일반적인 교부들의 가르침과 달리 교회 공동체의 삶보다 유별나게 개인의 경건을 강조한 교부들도 있었다. 공동체의 가치와 중요성을 경시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신앙적 경험을 더욱 강조하였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알렉산드리아 학파를 대표하는 오리겐(Origen, 185-254)이다. 알레고리적 성경해석으로 잘 알려진 그의 신학은 신비주의적 성향이 두드러진 동방기독교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오리겐은 알렉산드리아에서 거주했던 유대인 종교철학자 필로(Philo, 25BC-25AD)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필로는 히브리 사상과 헬라 사상을 접목시키는 일에 집중한 인물로서, 플라톤의 사상으로 창조자 하나님과 성도의 신앙을 해석하였다. 특별히 그는 세상에 사는 일반적인 사람들과 구분되는 특별한 부류의 극소수가 있다고 보았다. 이들은 없어지고 썩어질 몸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마음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하나님의 영(Divine Spirit)이 가득 차있다고 설명하였다. 이들은 구약에 나오는 모세와 수태고지를 받았던 마리아와 같은 신비한 경험을 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진정한 순결과 거룩한 모습을 지닌 경건한 성도들이다. 하나님의 영은 자신을 비우고 꾸밈이 없는 마음을 가진 자에게 항상 같이 계시며 그들의 삶을 인도하신다고 가르쳤다.
오리겐은 필로의 경건 사상을 크게 발전시켰다. 그는 성도의 경건은 반드시 하나님 중심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나님 중심이란 교회의 전통 속에서 내려온 사상을 수용하고 실천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하나님이 직접적인 개입이 없는 상황에서 이뤄지는 일이라면 절대적으로 부적절하다고 주장하였다. 전통을 경건의 모범으로 삼을 수 없는 것은 부패한 인간에게 스스로 진리를 분명하게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성도가 경건한 삶을 살 수 있는가? 오리겐은 분명히 가능하다고 답한다. 그러나 진정한 경건을 위하여 하나님의 신적 도움이 절대적이다. 인간은 사물을 분명하게 볼 수 있는 두 눈으로 영적인 세계도 볼 수 있을까? 오리겐은 불가능하다고 답한다. 문제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의 여부이다. 영적 눈이 떠지지 않는 채 살아가는 이들은 모두 불경건한 삶을 사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만민에게 존재를 주시는 성부의 사역은 각 사람이 지혜요 지식이요 성화인 그리스도 안에 참여함으로써 발전하여 더 높은 단계로 오를 때 더 찬란하고 감동적인 것으로 입증된다. 그리고 사람은 성령에 참여함으로써 점점 더 순결하고 정결해질수록 지혜와 지식의 은사를 받을 자격을 얻게 된다. 그런 뒤 모든 오염과 무지의 흔적이 제거되고 도말될 때 그는 순결하고 정결한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정결과 완전을 얻도록, 그로서 그 존재가 자신을 존재케 하신 분만큼 가치있게 되도록 베푸신 존재가 하나님에 걸맞게 될 정도의 진보를 이룩한다"(“원리에 대하여”, 1.3.8).
개인의 삶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가르침을 강조한 동방교회는 시간이 흐르면서 독특한 신앙의 형태를 지니게 되었다. 교회 공동체가 함께 수호하는 진리와 전통보다 성도의 주관적인 신앙, 즉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를 통한 경험이 강조된 것이다. 성도의 경건에 있어서 신학적이거나 교리적인 객관적 내용이 차지하는 부분이 약하여지고, 반대로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신비한 경험이 그 중심에 자리 잡게 되었다.
■ 313년 이후
313년에 종교의 자유가 주어진 이후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중시하는 성도들이 더욱 많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일부에서는 교회가 세속적 힘과 결탁하여 영적인 순결성을 상실하였다고 보았다. 핍박과 환란 속에서 경건한 모습을 지키던 성도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다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일부 역사가들의 주장과 같이 교회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총체적으로 타락한 것은 결코 아니다.
교회를 책임지고 있던 신실한 지도자들은 사도들로부터 내려온 신앙의 전통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였다. 단지 그들의 영향력이 많이 약해졌다. 또한 성직이 특권층으로 여겨지면서, 소명이 없는 자들이 지도자의 위치에 세워지면서, 성도들의 경건에 대한 애타는 마음이 이전 같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종교의 자유보다 오래전에 소개된 주관적인 신앙의 형태, 즉 하나님의 개입과 임재에 근거하여 개인적 체험적 신앙에 대한 관심을 갖는 성도들의 수가 많아졌다.
결과적으로,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개인의 경건한 삶을 위해 노력하던 성도들의 모습이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개인의 경건이 신앙 공동체에 끼치는 영향력을 전제하던 신앙에서, 기존 교회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 신적 임재를 개인적으로 체험하는 신앙의 형태가 교회의 역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결국 이런 상황이 수도원 운동의 기초가 된 것이다.
2) 성경이 보인다 - 고전 12:27; 롬 12:4-5; 요 9:31; 딤전 3:16; 딤후 3:12
세상은 끊임없이 세속화의 길을 걷고 있다. 현재 개신교가 경험하고 있는 신앙적 위기도 이와 맞물려있다. 깊은 영적수렁으로부터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과연 무엇일까? 교회와 성도의 경건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교회가 지닌 다양한 문제는 결국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가에 대한 문제로 집약된다. 교회와 성도에게 이 세상 안에서 존재하는 동시에 구별된 모습을 지녀야 한다는 커다란 영적 부담이 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삶과 신앙의 원리로 삼고 실천하는 것을 모두 포함한다. 교회의 책임이 막중하다. 성도들이 신앙이 지식을 강조하는 객관적 신앙과 신앙 체험을 강조하는 주관적 신앙은 항상 동반되도록 훈련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성도들은 교회의 가르침을 개인의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한다. 신앙 공동체와 각 성도의 경건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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