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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라이프 (5)

석은옥 (고 강영우 박사 부인)

스스로 꿈을 발견하길 바라며

우리는 두 아이가 어릴 때 유아세례를 받도록 했다. 우리 부부가 기독교인이니 두 아들 역시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가짐과 동시에 그로써 축복받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대학에 보내기 전에는 나는 두 아들을 모두 Confirmation Class(미국 장로교회에서 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추상적인 존재인 하나님을 믿고 본인의 의지로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들인다는 서약을 하기 위한 준비과정)에 보냈다. 우리가 다녔던 미국 교회에서는 고등학교 9학년 즉 열다섯 살이 되면 이성적으로 또 지적 능력으로 추상적인 존재인 하나님, 예수님을 스스로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1주일에 한번 씩 담임목사님이 신약4복음서를 가르치고 숙제를 주는 과정을 9주간 거친 후 성인예배 때 모든 성도들 앞에서 선서하는 예식을 치르게 했다. 그때 새 성경책을 선물로 주고 큰못으로 만든 십자가를 가죽 띠로 묶어 목에 걸어주는데, 아이들은 지금도 그것을 차와 집에 걸어두고 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강조하는 한편, 아이들이 더 구체적으로 자신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게 하려고 애썼다. 때문에 아이들에게 독서를 통해 위대한 인물들을 만나게 하는 한편, 도서관에서 발견한 ‘직업참고서’(Dictionary of Occupation)라는 책도 활용했다. 그 책에는 각 직업별로 대학에서 전공해야 하는 학문, 취업한 이후의 보수, 앞으로서의 전망 등 직업을 선택하고 준비하는데 필요한 정보가 매우 상세히 적혀 있어서 자신의 흥미와 능력에 맞추어 직업을 선택하는데 아주 유용했다. 그 책을 참고로 아이들의 적성이 어떤 직업과 잘 맞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들에게도 직간접적인 체험을 통해 자신의 달란트가 어디에 있는지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한 “기독교인들은 한 생명, 한 생명이 모두 존귀한 존재이며 각자 다른 재능과 능력을 받고 태어났으니 그 은혜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더불어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너의 꿈이 무엇인지, 너의 적성과 능력이 무엇인지를 고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 네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네가 가장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잘 찾아보고 그것을 통해 어디에 속해 있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꾼이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단다”라고 지속적으로 이야기해주었다.

그 엄마에 그 아들

두 아들이 중고등학생일 때 당시 내가 지도하던 시각장애학생들의 여름캠프에 아이들을 매번 데리고 가 자원봉사를 하게 했다. 자기 또래의 장애아들을 직접 돌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시력이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그러한 감사뿐 아니라 엄마가 열성을 다해 학생들을 지도하는 모습에서도 감명을 느꼈던 것 같다. 진영이는 그것을 글로 쓰기도 해 그 일이 여러 면에서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학교를 잘 마친 진영이는 그 무렵 진석이가 다니던 동부의 명문고 필립스 아카데미에 진학하고 싶다는 뜻을 보였다. 어릴 때부터 형을 잘 따랐고 늘 형을 영웅처럼 생각하는 등 진석이를 자신의 롤 모델로 삼았던 진영이었기에 고등학교 또한 필립스 아카데미로 정했다.대신 진석이가 다니는 필립스 엑서터가 아닌 필립스 앤도버로 가고 싶다고 했다. 필립스 아카데미는 뉴햄프셔의 액서터와 보스턴의 앤도버 두 곳에 있다. 진영이는 각기 다른 전통을 가진 다른 지역에 다니는 것이 인맥을 넓히는데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영이는 앤도버 입학과 동시에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초기에는 예상보다 학교생활에 적응이 어려웠으나 다음해부터는 잘 따라해 하버드 대학 조기입학도 허락받았다. 단 마지막 학기까지 계속 우수한 성적을 유지해야한다는 조건이었다.

그 무렵 진영이는 친구들과 이웃 양로원에 큰 텔레비전을 들여놓겠다는 사명에 푹 빠져있었다. 그 프로젝트 추진과 후원금 모금을 위해 포스터를 만들고 준비하느라 마지막 학기 성적을 잘 관리하지 못했고 애석하게도 하버드대학 조기입학은 취소되고 말았다. 이에 누구보다도 가장 마음 아파한 사람은 남편이었다. 아버지의 큰 꾸지람에도 진영이는 담담히 대답했다. “그 노인들이 작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지금 그분들은 편안하게 텔레비전을 보고 계실 거예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나의 고3 시절이 떠올랐다. 서울대 사범대 진학을 위해 아버지는 나를 서울사대부속고등학교에 보내주셨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무렵 집안형편이 조금 어려워져 나는 초등학생 가정교사를 하면서 돈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천호동 감리교회 개척에 발벗고나서 직접 벽돌을 나르는 가 하면 유년주일학교 선생으로 활동하는 등 지역봉사를 위해 모든 열성을 바쳤다. 그리고 진영이와 마찬가지로 결과적으로 대학 입시에 낙방하고 말았다.

“그 엄마에 그 아들이로구나. 피는 못 속인다더니...” 결국 진영이는 노벨상 수상자가 많기로 유명한 시카고대학에 진학해 경제학과 정치학을 복수 전공했다. 하버드대학 조기입학에 낙방한 것은 좌절할만한 일이었으나 시간이 지나자 그것은 아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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