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덕 목사 (복음장로교회)
시편 64편 3-4절을 보면 ‘사람의 말이 마음에 화살같이 꽂힌다. 독한 말로 겨누어서 마음에 사망의 말을 쏜다’고 표현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강해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갈 수 있고 믿음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경주 장에서 달리는 선수와 같아서 열심히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쉬고, 걱정거리가 오면 걱정이나 하고, 그렇게 살도록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원하신 하나님, 우리를 지으신 주인이신 그분의 말씀을 항상 들어야 합니다. 그 말씀을 듣지 않으면 이 세상에 깔려 있는 말, 사고방식, 사망의 소리에 짓눌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듣고 내 심령에서 솟아나는 음성을 들을 줄 아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를 보십시오(창6장). 그는 120년 후에 올 하나님의 심판을 철저하게 믿고 살았습니다. 방주를 만들었다는 그것이 곧 말씀하신 아버지를 그대로 믿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의 삶은 그저 태어났으니까 사는 것이 아니고 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 안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주어진 각자의 생활에서 나라는 존재 속에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고, 하나님을 나타내며 사는 것입니다.
나의 삶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겉으로 보기에는 초라한 존재인 것 같을지라도 나의 삶이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살고, 하나님의 그 거룩하신 이름을 전하면서 살고, 아버지를 높이면서 살고, 평범한 일상에서 하나님의 인격을 나타내고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10, 12, 18, 21, 25, 31)고 할 수 있는 삶입니다.
우리의 생활이 어려울 때야말로 하나님께 가까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세상의 것을 많이 맡기실 때 그 마음이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는 것, 그것도 또한 좋은 기회입니다. 언젠가 아버지 앞에 섰을 때 “주인의 즐거움이 되었구나” 하는 것은 나 자신과 이웃에게 유익하고 덕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은 주인이신 하나님 기준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자기 자신을 강건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여기 1절을 보면 “나의 근심”이라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늘 근심이 일어나고 두려움, 사망의 생각들이 일어납니다. 2절에 보면 “요란에서 벗어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내 생각이 거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을 자유케 할 수 있도록 자유함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큰 복입니다.
환난 가운데 근심과 두려움이 있을지라도 내 생각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자유함을 받아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생명 쪽으로 얼마든지 날아다닐 수 있도록 자유케 해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됩니다.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는 자유, 하나님의 복을 생각할 수 있는 자유, 소망을 바라볼 수 있는 자유, 기뻐할 수 있는 자유, 감사할 수 있는 자유! 그것이 자유인데, 왜 마음대로 안 되는 것, 불행한 것만 생각하고 미운 것과 독한 것만 생각합니까? 그것은 그의 생각이 죄의 종에게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역경 가운데서 생각의 자유함을 누립니다. 10절에 말씀하신 것같이 “의인은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이것이 생각의 자유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케 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