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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핵심 성과 지표를 달성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BBC, '조용한 퇴직'의 유행은 코로나19로 달라진, 더 전반적인 변화

주어진 일 이상으로 일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조용한 퇴직(quiet quitting)'이 널리 퍼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수십 년간 낯설지 않은 현상이지만 왜 요즘 들어 새롭게 주목받는 것일까. 현 상황을 통해 직장과 근무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는지 살펴본다.

영국 런던에서 PR 전문가로 활동하는 젬마(25)는 어느 월요일 아침 자신의 직장 생활을 전면적으로 검토해보기로 했다.

"당시 마감일이 빠듯한 상황에서도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었지만 메일함을 열어보니 상사로부터 여러 부정적인 이메일이 와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젬마는 퇴사하지 않았다. 자신의 현재 맡은 업무를 계속하되, 더 애쓰지 않기로 했다. "내 안의 불꽃이 사라졌다고 느꼈다. 최소한만 일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전엔 업무 시작 몇 시간 전에 온라인에 접속해 있었지만 이젠 아침 9시가 돼야 접속합니다. 또한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저 자신을 위한 시간이 없었지만 이젠 오후 6시가 되면 칼같이 모든 업무를 종료합니다."

이른바 '조용히 퇴직'한 것이다.

'조용한 퇴직'은 처음 틱톡에서 퍼지기 시작한 신조어로 'zkchillin'이라는 이름의 사용자가 올해 7월 어느 영상을 올리며 퍼지기 시작했다. 현재 해당 영상은 조회수 350만을 기록 중이다.

이 영상에 따르면 '조용한 퇴직'은 "직장을 완전히 그만두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이상의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그만두는 것"이다.

즉 "여전히 맡은 일을 하지만, 업무가 삶의 전부이며 개인 생활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사람의 가치는 노동으로 정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젬마는 이 '조용한 퇴직'이 시대상을 잘 포착한다고 느낀다. 현재 코로나19의 여파로 물가는 상승하는 가운데 직원들은 많이 일하지만 적게 번다고 느끼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제 질린 것 같다"는 젬마는 "이제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껏 버는 돈보다 많이 일해왔다는 걸 느낀 것 같다. 그 누구도 자신을 번아웃(무기력증) 상태까지 몰아부쳐선 안된다. 걱정되는 수준의 월급을 위해 말이다"고 언급했다.

이렇듯 '조용한 퇴직'은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으며 직장 문화에 대한 탐사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조용한 퇴직'이라는 용어 자체는 새로울지 모르지만, 이 용어 이면의 개념은 사실 오랫동안 존재했다는 게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앤서니 클로츠 경영대학원 부교수의 설명이다.

"젊은 세대의 것이나 새로운 용어로 포장됐으나 일탈, 근무 태만, 부실 업무 등 여러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수십 년간 존재한 트렌드"라는 것이다.

근로자들은 여러 이유로 항상 직장에서 그저 그럭저럭 일하며 버티려고 했다는 게 클로츠 교수의 설명이다.

"당장 퇴사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다른 곳에서도 쓸 수 있는 기술을 지닌 사람들은 많지 않으며, 다른 곳에선 누릴 수 없는 업무 유연성이나 혜택을 쌓았거나, 다른 기회가 부족할 정도로 집단 규모가 작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경제 또한 퇴사하지 않고 그럭저럭 남아 있는 이유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경제가 둔화하면 고용 시장이 악화하면서 퇴사에 따른 위험과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 발전이나 커리어를 우선시하지 않는 근로자라면 대충 적당히 일하는 쪽으로 기울 수 있다.

클로츠 교수는 "주어진 업무 이상의 일을 하는 건 정신 소모도 있고 스트레스도 받는다"면서 "그리고 자신이 회사에 갇혀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보상받지 못하고 느끼게 된다. 그래서 '조용한 퇴직'은 젊은 세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현 직장에서 오도 가도 못한다고 느끼지만 그렇다고 퇴사할 이유는 거의 없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대충 적당히 일하는 방식과 달리 '조용한 퇴직'을 선택했다고 해서 반드시 직장에서 매일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아니다.

대신 정시 근무라는 기본에 충실히 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클로츠 교수의 설명이다.

"출근 시간보다 일찍 나와 늦게까지 일하고, 자신의 업무를 희생해가며 다른 동료의 업무를 돕고, 최대한 맡은 바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이면 조직엔 발전의 기회가 되지만 직원 개인에게는 손실이 될 수 있는 행동입니다."

클로츠 교수는 특히 현재 '조용한 퇴직'이 유행하는 이유로 코로나19 팬데믹과 정신 건강에 대해 늘어난 대중의 관심을 꼽았다.

클로츠 교수에 따르면 많은 직원들이 번아웃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조용한 퇴직'은 해야할 일만 하겠다는, 경계선을 다시 긋는 행동입니다. 24시간 내내 일에만 몰두하는 대신 삶의 다른 부분에도 시간과 에너지를 쏟겠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의미 있고, 그래서 삶의 질을 증진할 수 있는 부분에 말입니다."

업무에 지나치게 몰두하지 말자는 개념 자체는 새롭지 않지만, 클로츠 교수에 따르면 현재의 '조용한 퇴직' 유행은 코로나 19 이후 근로자들의 커리어에 대한 태도 변화를 보여준다.

노동 자체에 대한 반항이라기보다는 긴 근무 일수, 무보수 초과근무, 조직에 봉사하기 위해 언제나 출근해야 한다는 기존 관념에 대한 거부라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일과 개인적인 삶 간의 경계를 재정립해 삶을 개선할 수 있을지 노력하는 이들이 많다.

클로츠 교수는 "지금의 '조용한 퇴직' 현상을 통해 사람들이 삶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는 순간을 엿볼 수 있다. 가족, 친구, 취미를 위해 시간을 쏟기 위해 일이 차지하는 규모를 줄이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커리어를 쌓아 나가길 원하지만, 동시에 일 외적인 부분에서도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누리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젬마는 '조용한 퇴직'을 시작한 후 심리적으로 안정을 되찾았으며, 다른 활동에도 열정을 쏟을 수 있게 됐다. 최근 몇 달간 코바늘 뜨개질을 배워 이제 온라인에서 판매하기까지 한다.

 

"언제나 직장에서 곤란해지면 어떡할지, 내가 과업하지 않으면 동료들이 날 싫어하진 않을지 걱정했다"는 젬마는 "그러나 이젠 9시부터 6시까지 시간을 보냈던 직장에서보다 훨씬 더 보람찬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일에 대한 스트레스와 불안감도 이전보다 훨씬 덜하다"면서 새로운 관심사를 찾게 돼 만족스럽다고 전했다.

이렇듯 '조용한 퇴직'의 유행은 코로나19로 달라진, 더 전반적인 변화를 반영한다.

즉, 많은 근로자들이 삶에서 일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일과 개인적인 삶의 비율은 어떻게 돼야 하는지 재정의하게 됐다는 것이다.

"언제나 '근무 태세'를 갖춰야만 했던 기존 관습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젬마의 설명이다.

"직장에서 핵심 성과 지표를 달성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는 아닙니다."

 

09.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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